난이도 설정 : N/F
1936년.
단 3개월 만에 2번씩이나 중앙정부가 무너지자 곳곳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비록 브랑겔 원수의 오흐라나 조직과 군대가 러시아 전역을 꽉 잡고 있었으나, 러시아의 대부분을을 차지하는 농촌지역만은 예외였다.
1921년의 결정적 승리로 소비에트가 멸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재야에 남아 브랑겔 정부를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독일의 경제상황이 나빠짐에 따라 많은 독일계 자본이 철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독일로 수출되던 농산물 가격은 급락. 거기에 러시아 루블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렸다. 결국 그 동안 브랑겔 원수의 공포정치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노동자, 농민, 자본가 모두가 브랑겔 정부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1936년 3월부터 시작되어 4개월을 지속한 대혼란기는 브랑겔 정부의 최대 위기였고, 이 기간동안 브랑겔 정부를 지지하고, 또 지탱해준 것은 오직 군과 그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방송 뿐이었다.
이 기간 동안, 공산당의 운동을 감시하던 몇몇 오흐라나 요원들은 농민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에대한 기록은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브랑겔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흐라나 요원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 농촌에서 대대적인 공산당원 색출 작업이 벌어졌고
또 공산당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공산당원들은 농촌에서의 반정부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고,
이에 대한 회답으로 브랑겔 정부에서는 농촌운동가들을 처형해버리는 등, 보복에 보복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혼란기동안 브랑겔 원수 대신 오흐라나의 실권을 장악했던 니콜라이 예조프(Nikolai Yezhov)는 항상 브랑겔의 눈에 들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대혼란기가 끝나자, 예조프의 잔혹한 탄압때문에 혼란이 장기화 되었다는 분석이 뒤따랐고, 러시아가 안정을 되찾은 후에 예조프는 한직에 머무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니콜라이 예조프
대혼란기를 빌미로 브랑겔 정부 권력의 중심에 서려 하였으나,
그 때문에 혼란기 이후, 그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끝이 나버렸다.
1936년 4월 5일.

곳곳에서 상경한 농민들은 페테르부르크 정부청사 앞에서 밀값 안정과 농민운동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브랑겔 정부에서는 더 이상 오르하나 조직만으로는 이들의 저항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4월 5일, 농민들에게 몇가지 약속을 하여 그들을 해산시키는데 성공하였으나...
이내 브랑겔 정부에선 역사를 경비하던 군병력들까지 동원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이들을 모조리 체포한다.
그 후, 4월 7일. 약 6만여명에 달하는 군병력이 헌병조직으로 전환되어 국내 치안유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근보다는 채찍. 그것이 브랑겔 정부의 방침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브랑겔의 철권정치는 점점 강화되었고, 상대적으로 이에 대항하려 했던 세력들은 투옥, 의문사 등에 의해 지도자들을 차례차례 잃어가며 약화되었다.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어느덧 정권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한 브랑겔은 수도를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권력기반이 되주었던 모스크바로 옮긴다. 이젠 그 누구도 브랑겔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Extending Power이벤트에서 스토리상 2번 옵션(디센트 +15)를 골라야만 했는데, 순간 디센트 35되면서 러시아 내전뜰까봐 조마조마... (디센트 30 이상이면 내전 확률 적용)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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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첝 작성시간 12.08.16 근데 여기 브랑겔이 스탈린 포지션인가요?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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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정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8.16 수꼴 스탈린이라고 보셔도 무방할덧. 극과 극은 통하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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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ㅋ파ㅋ 작성시간 12.08.16 카라는 공산주의가 망함요... 생디칼리즘이랑 전체주의만 살아남았긔 끨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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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집앞바다 작성시간 12.08.16 카라 변수 엄청나게 많군요.. 근데 군대 인공지능만 좀 어떻게좀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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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정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8.16 DHR은 DA에 비해 자체 인공지능이 좀 더 괜찮아서 할만합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