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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s of Iron

[연대기]당신들의 조국 -7-

작성자paul1117|작성시간15.09.12|조회수656 목록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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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대기는 그냥 단순한 게임 플레이 연재글일 뿐이며,작성자인 본인의 정치관,가치관,역사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전 나치와 군국주의를 혐오하며,네오나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정말 미친놈입니다.나치는 나쁩니다.





전쟁이 끝난후.미국은 연합국 정상들과의 회담을 개시했다.



물론 회의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샤르 드골 자유 프랑스 지도자



"...면목이 없습니다...제가 도발한 결과가 이런 참극으로 끝나리라곤..."



그러자 영국 수상이 말을 꺼냈다.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수상



"지금 그말 만으로 넘어갈 생각은 아니시길 바랍니다...당신 때문에 독일의 세력권이 이제 중동과 이집트까지 확장돼 이제 수에즈 운하가 그쪽것이 됐단 말입니다!!



이번이 나치를(얘들은 국가사회당을 나치라고 불렀다) 끝낼수 있는 기회였는데!!어째서!!"



그러자 듀이는 격분했다.






토마스 듀이 미국 대통령



"귀국은 우리보다 더많은 피를 흘리고 그딴 소리를 하는겁니까!!!



우리야말로 이번에 확실히 끝낼수 있다 믿었기에 네덜란드,프랑스,동유럽,그리스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는데,그리스를 제외한 전역에 병력이 전멸해 130만명의 피해가 발생했단 말입니다!!



병력도 일단 그리스 방면 병력을 봐야 알겠지만.순식각에 6,70개 사단으로 감소했고!



당신들도 정건이 위험하다 하겠지만,우리는 일단 지지율이 30%까지 폭락했단 말이오!!"



"너무 과격하게 나오자 영국 수상이 



"아아...그럴 의도로 한말은 아니었습니다.죄송합니다...



근데 그러면 우리가 얻은건 없단 말입니까?"


"...굳이 따지자면,유럽 대륙에 상륙해 꽤 많은 시민들을 데려올수 있었다는것 정도 같습니디만..."



드골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듀이는 가까스로 진정해서.



"...그리고 독일 정국에도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



다른 정상들이 지켜보게 했고...



"...괴링이 아무래도 후계자 구도에서 불리해진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연합군이 이번에 거둔 최대의 성과라고 볼수 있었다...



모두가 술렁였다.



그런데,사실 이게 좋은일이라고 볼수는 없었다.



괴링이 무능한건 다들 알고 있었는데,그가 밀려난다?


그러면 괴벨스,히믈러(물론 연합군은 아직 히틀러가 제외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하이드리히,보어만,슈페어중 하나인데...



이러면 그들은 보어만이 총통이 돼길 바래야 했다...



연합군 회의는 별 소득없이 끝났다.





그나마 18일.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 지역을 가져가는 조건하에 연합국에 가입했다.





그리고 독일은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까놓고 말해 독일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이건 이겼다고 봐도 무방한 충돌이었기에 국가사회당은 승전기념까지 덧붙인 화려한 규모였다.





27일.독일은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지휘권을 확보한다.



이들을 대채로 해안 또는 아프리카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1950년 1월.히틀러는 스웨덴 방면으로 군대를 보낼것을 지시했다.침공 준비였다.



사실,까놓고 말해 지난 충돌에서 수송선단이 노르웨이로 수송하던중 연합국에게 타격을 받은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히틀러는 옛정을 봐서 괴링이 갖고 있던 직책중 공군 총사령관을 제외한 모든 장관직을 내려놓게 햇다.



사실 히틀러는 맘만 같아선 공군 총사령관직도 끌어내리고 싶었다고 한다.



괴링의 서열은 급격히 떨어졌다.이제 괴링은 간섬도,개입도 힘들어진 처지가 됐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자업자득이라는 비아냥을 퍼부었다고...



그리고 슈페어에게 다시 게르마니아 공사를 재개할것을 지시했다.





15일.영국은 마침내 IRA배후에 독일이 있다는것을 알아챘다.



히틀러는 이번에도 세게 나오면 전쟁인데,지금은 다시 전쟁할 힘이 없다고 판단 이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22일.독일은 스웨덴을 침공한다.



스웨덴은 중립국이었던 만큼 병력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언제 패하냐의 문제였을뿐,패배는 확실했다.





2월 5일.스웨덴 정부는 스웨덴에 있는 모든 배를 총동원해서 영국(문제는 이미 독일해군이 해협을 차단해 힘든 상황이었다)과 핀란드로의 망명을 개시하도록 했다.



문제는 유대인,집시등 나치가 열등 종자로 분류하거나 말살대상으로 보는 자들이 있었던 덕분에...






선단 대부분이 유보트에 의해 침몰당했다.



국제법 위반이나 다름 없는 행위였으나,솔직히 그걸 지킨적이 몇번이나 있나?





11일.독일군은 스톡홀름에 진입했다.



스웨덴 왕실은 핀란드를 거쳐 영국으로(물론 영국으로 가는건 극비리에 행해졌다) 망명했다.





그리고 15일.스웨덴은 장악됐고.스웨덴에 있던 유대인들은 즉각 신원이 독일로 인도돼 수용소로 끌려갔다.



독일은 각지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16일.히틀러는 아랍국가로 군대를 파병한다.



중동 질서는 이제 독일에 의해 재편될것이다.





3월 24일.벨기에 망명정부에서 내전이 벌어졌다.



독일은 "저것이 민주 정부의 문제다!"라며 선전을 벌였다.





그리고 어떻게 됀건지 이라크는 갑자기 괴뢰정부에서 벗어났다.



다만 이라크 정부는 독일과의 관계를 우선시했다.



물론 히틀러는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다는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라크에 이어 이집트도 탈퇴했다.



당연히 히틀러는 이라크부터 철저하게 파괴할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각지에서 반체제 행위로 추가로 인근 지역 주민들을 학살했다.



덕분에 인구는 과거 전쟁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이라크는 짓밝혔고,본보길고 수십만명의 이라크인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8월에 이라크에서 쿠르드 반란이 일어났고.히틀러는 쿠르드 대학살을 지시했다.





그리고 9월 1일.이번엔 이집트 침공을 개시한다.



히틀러는 철저한 보복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시대로 따랐다.





19일.아잡트는 정복됐고 여기서 또 수십만의 학살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라크와 이집트에는 본보기를 위해 시신들을 매달아 놓는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독일은 공군과 해군 위주의 생산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허무하게 상륙을 허용하지는 못하게 하겠다고 독일은 각오하고 있었다.


1950년.영국은 고립됐고.연합국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독일은 그러한 진통과 전쟁을 거쳐도 건재해 보였고.독일은 공해군의 강화와 해안 경비 강화를 중심으로 정책을 변경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렇게 건재해 보이는 독일도 속으론 암투와 차기 총통자리를 건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각 점령지에선 반란이 터졌고,독일군이 지나가는 곳마다 학살과 범죄가 벌어져 대충 집계해도 이미 억단위가 학살당한 상황이었다...



이제 독재와 민주중 어떤것이 더 나은가를 알아낸 사람들은 늘어났으나,문제는 폭력은 더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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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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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paul11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9.12 생각보다 상당한 숫자입니다...저도 놀랍군요...
  • 답댓글 작성자덤덤덤 | 작성시간 15.09.12 paul1117 덴마크는 독립국인가요?
    발트해의 평화를 위해서 침공 하는것도 괜찮은거 같은데
  • 답댓글 작성자paul11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9.12 덤덤덤 저희편입니다.실제 역사에서도 점령당했으니...솔직히 덴마크 병력은 덴마크 해안만 잘 지켜주면 됍니다...아까 쓸때 까먹고 스샷 하나 빼먹었네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paul11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9.13 여러 불만도 상승 이벤트에 괴뢰국 수립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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