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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대기는 그냥 단순한 게임 플레이 연재글일 뿐이며,작성자인 본인의 정치관,가치관,역사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전 나치와 군국주의를 혐오하며,네오나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히틀러는 정말 미친놈입니다.나치는 나쁩니다.
10월 27일.노르겐(맞는건지...) 총독령의 오슬로에서 북유럽 회의가 시작됐다.
근데 사실 참가국 4개국중에 핀란드를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은 전부 독일의 괴뢰정부라 형식적인 행사나 다름없었다.
30일.연합군도 움직였다.
그리고...
11월 28일.히틀러는 건강 이상으로 쓰러졌다.
전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도 정식으로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던 탓에...
(아직도 착각중인)히믈러와 괴벨스,보어만,슈페어,하이드리히 이 5명의 대립은 격화됐다(사실 4명이라고 볼수 있지만)
12월 4일.히틀러는 대놓고 말했다.
"모렐은 꺼지라고 해!!그동안 나한테 마약까지 먹게했으면서,이것도 못막나!!이 돌팔이 자식!!!!"
그리고 전문의료진을 부르게 했다.그리고...
"그리고...히믈러는 역시 친위대에 남는게 더 좋지 않겠나?"
드디어 히틀러는 공식적으로 히믈러는 마음에도 없음을 밝혔다.
히믈러는 사실상 제외였다.
그런데...
12월.히틀러는 말을 남긴다.
"...난 독일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우리 독일은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국가임을 기억하라...
당과 정부는 명심하라...총통은...슈페어나 괴벨스,보어만중에 하나로...그리고...가능하다면...대통령과 수상으로 다시 나누..."
"털썩"

1950년 12월 29일.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세상을 떠났다...
일단 당에서 정식으로 총통을 선출할때까지는 보어만이 총통 대행으로 선포됐다.
전 독일 국민들은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또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총통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연합군 진영은 신문 1면에
"드디어 악마가 심판을 받으러 떠나다"
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그리고 즉각 발키리 작전이 시작됐다.일단은 우려했던 상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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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1일.보어만이 정식으로 2대 총통으로 선출됐다.
물론 반대 세력도 상당했다.
그런데,히틀러의 죽음으로 추축국이 붕괴됐다.
히틀러의 죽음은 동맹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히틀러라는 인물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히틀러의 죽음으로 불안한 정국과 동맹 회복은 보어만에게 있어서 중대 과제였다.
문제는 이시점에서도 불만을 품은 세력이 상당했다.
대표적으론 친위대가 있었다.
결국 보어만은 정부체제를 개편할수밖에 없었다.
일단 총통을 대통령과 수상으로 쪼개고,수상의 권한을 강화시켰다.(대통령으로 아무나 앉혀둬도 논란이 가급적 없겠금 하려는 의도였다)
다만 개편인사는 히틀러의 의사를 반하는 행위였다.
괴벨스는 이를 보고는
"저 총통 각하 밑에서 잘난체만 하던놈이 이제 그의 뜻을 거부하다니!!"
라며 분노했다.
물론 보어만은 반대파 불만을 잠재우려고 일부러 형식적 직책인 대통령을 임명한거지만(일단 괴링 본인은 드디어 권력을 잡았다고 좋아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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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국방군 최고사령관 카이텔이 처음으로 자기 소리를 냈다.
"머저리 괴링따위를 지지할 생각은 죽어도 없으며(평소 괴링이 툭하면 간섭한게 컸다),우리 국방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것이다!"
이건 보어만 정부에 좀 큰 타격이었다.
게다가 국방군은 발키리 작전을 끝내지 않았다.
정국이 불안한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방군은 "괴링이나 친위대 인사만 아니면 누가 독일을 통치하든 상관없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21일 프랑스 자치령이 다시 동맹에 가입했다.
그리고 24일.동맹은 재건돼고 있었다.
무솔리니가 다시 동맹에 가입한것이다.
히틀러가 없는 지금,무솔리니가 새로운 파시즘의 수장이 됀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3월 7일.이제 보어만은 끝을 낼때가 됐다고 판단한다.
괴링,괴벨스는 일단 무조건 몰아내야 했고.
슈페어는 권력욕이 비교적 심한편이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부추기기 전에 빨리 끝내야 했다.
9일.롬멜이 연설했다.
국방군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10일.보어만은 괴링을 실각시킨다.
모두가"넌 망해도 싸다"는 환영의 분위기였다.
이렇게 괴링은 떠난다...
그리고 보어만은 괴벨스에게 떠날것을 권유했고.
괴벨스는 "총통의 뜻을 어긴놈하고는 같이 있고 싶지 않다"라며 승낙했다.
그리고 애초에 슈페어는 언급만 됐을뿐,사실 별로 총통이 돼겠다는 마음도 없던데다 견제가 신경쓰여 알아서 물러났다.
이제 보어만에겐 히믈러,하이드리히만 남았지만,일단 본인이 제거할수 있는 정적들은 몰아낸 것이었다.
19일.보어만은 되니츠가 연설을 한후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했다.
이제 정식으로 보어만 내각이 출범했다.
그리고 드디어 공식석상의 첫 연설을 가졌다.
"국민 여러분,전 잘알고 있습니다.제가 히틀러 각하보다 모자라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린 이제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각하의 뜻을!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강력한 제국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독일에 영광이 있기를!!"
그러나 동부에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갈수도 있었다.
하이드리히...그가 동부에서 일을 꾸미는것 같았다...
문제는 정보원을 파견하자니 당장 게슈타포와 정보부를 하이드리히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22일.총통의 여자였던 에바 브라운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보어만은 "각하와 결혼을 안하셨을뿐이지 사실상 부인이나 다름 없었다"라며 장례식을 치뤄줬다.
그리고...
4월 6일.
마침내 하이드리히가 히믈러를 몰아내고 친위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베를린은 경악했다.
"이러다 설마 무슨일이?"
우려감이 고조됐다.
즉각 베를린 경비과 수비를 강화했다.
13일.독일 정부는 친위대에 대해 경계를 조금 완화했다.
설마 무슨일이 생기기야 하겠나?이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이드리히를 내치는게 낫지 않냐는 의견이 나왔지만.능력때문에 냅두기로 했다.
그리고.동부 동맹국들이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20일.헝가리와 루마니아가 서로 전쟁에 들어갔다.
그리고 독일은 이 전쟁에 중립을 유지했다.
그리고 독일 직할 통치 구역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 15일에는 갑자기 중화민국이 전쟁을 선포했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것일까?

9월 28일.드디어 슈페어의 역작인(이것이 그의 마지막 국책 사업이었다고...) 세계수도 게르마니아가 완성됐다.
이 도시의 최대 역작은 단연 국민회관이라 불릴 저 거대한 돔 건축물이었다.
보어만은 속으로.
"각하,드디어 각하께서 꿈꾸시던 세계의 수도,게르마니아가 완성됐습니다!!각하!!드디어 해냈습니다!!"
10월 15일.중공은 대만을 점령했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다 끝난 후에
"...왜그랬던거야?"
라며 의아해 했다.
12월 22일.총통 사후 첫 전당대회가 개최됐다.
보어만은 여기서도 총통의 유지 계승을 강조했다.
1952년 1월 6일.의회는 동유럽 국가들을 전부 괴뢰정부로 만들어 버린다.
1950년대는 히틀러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시기였다.
P.S:언제 끝내냐 물어보실까봐 말씀드립니다...가급적 영국은 한번만이라도 점령하고 끝내볼 생각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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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포항공대 국어국문학과 작성시간 15.09.13 전쟁보다는 국내 정치에 관한 이벤트 위주로 가는군요 ㅇㅅㅇ
연합국의 침공이 아닌 내부 분열로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
답댓글 작성자paul11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14 그냥 쓸게 없는데 저런 사건들이 터진겁니다...어떻게 될지는 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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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프리노프 작성시간 15.09.14 저거 잘하면 국방군vs친위대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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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paul11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14 지금 아무것도 안뜨던데,끝난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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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덤덤덤 작성시간 15.09.16 결국 일본은 해방되지 못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