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 이래, 브라질의 경제는 커피 재배 및 생산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1929년의 세계 대공황으로 여파로, 커피 수출량은 급감하고 이는 브라질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져왔다.
1930년 군부 쿠데타와 함께 브라질 대통령의 권좌에 오른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경제 회복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니, 과잉 생산된 커피를 폐기처분하여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브라질 농민들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게 되었다.
브라질은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으나, 아직까지 국제 경제는 불안정하였고
커피 등 농산물 무역은 언제든 다시금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이에 바르가스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해왔던 브라질의 산업을
공업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그 첫번째 단계는 공업기술 및 경영관리기법 개발에 대한 투자를 통하여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브라질 산업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선진 건축공학기술의 도입이 완료되자,
공업 개발의 두번째 단계로서 브라질의 낙후된 교통망과 물류망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을 시작했다.
또한 해안선이 넓은 브라질 국토 방위를 위한 군부의 해군 전술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새로이 도입되고 있던 함종인 항공모함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 브라질 해군 인사들이 일본의 항공모함 '아카기'를 견학하기도 하였다.
브라질 국토 전역의 산업기반 확충이 빠르게 완료되면서,
드디어 공업개발 세번째 단계로서 1942년까지를 목표로 하는 대규모 공업단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1935년 3월,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안정화시키고자 '선린 정책'을 내세워 불가침조약을 제의하였고,
브라질 외무부는 이를 승인하였다.
1935년 10월,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함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자,
브라질 국내에서는 국민들의 대량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벌어진다.
이에 브라질 재무부는 특단의 조치로 전례없는 통화 정책을 실행하였다.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침략에 맞서 수개월을 버텨냈으나, 결국 1936년 4월 2일,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가 점령됨으로써 강제 합병당하고 말았다.
에티오피아 전쟁의 기억이 채 잊혀지지도 않은 동년 7월 17일,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하였다.
브라질 외무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1937년 새해가 밝자마자, 이번에는 일본 제국이 노구교 사건을 명분 삼아
거대한 중국 대륙으로의 진격을 개시했다.
일본군은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빠르게 점령하고, 중국 내륙 깊숙히 침투하여 국민당군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1937년 12월, 독일 제3 제국은 대독일주의에 의거하여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
1938년 여름,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은 독일에게 넘겨졌다.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습니다.
- 네빌 체임벌린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브라질 해군은 항공모함 전술 개발을 시작하였다.
또한 육군 전략 및 전술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종래 브라질 육군이 도입했던 방어전 교리는 서유럽의 평지에나 적합한 것이라는 지적 하에,
정글과 산악 등 험지가 많은 남미의 지형을 고려하여
새로운 교리를 채택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1939년 1월, 뮌헨 협정의 약속은 깡그리 무시되고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에 의해 강제병합되었다.
2월에는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한다.
2월 25일,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파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브라질 외무부는 이에 대해서도 어떠한 성명도 내놓지 않았으나,
바르가스 정권 인사들은 프랑코파의 승리를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속보입니다. 오늘 자정, 독일 제3 제국이 폴란드에 대하여 선전포고하였습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독일 제3 제국이 폴란드에 대하여 선전포고하였습니다.
이에 대영제국과 프랑스 공화국 또한 독일에 대하여 선전포고하였습니다...
...정확한 상세를 알 수는 없으나,
현재 독일군과 폴란드군은 포즈난 - 토룬 등지에서 전투상태에 진입했다는 소식이며,
이 전쟁은 독일의 무력시위로서 며칠 후에 종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입니다.
- 1939년 8월 22일, 브라질 공영 라디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