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중일전쟁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로 인해 내부 상황이 극히 악화되었다.
일본 인민들은 히로히토 천황과 그 내각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그 어지러운 상황에서 일본에선 노사카 산조가 이끄는 일본 공산당과 인민들이 소련의 도움을 받아 공산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일본의 혁명정부는 친소반미 노선과 계획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일본인민공화국을 창설하였다.
한편 중국은 중일전쟁에서의 큰 승리로 제2의 번영기를 누리고 있었다.
중일전쟁에서의 값진 승리로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장개석 총통도 전후 상황을 수습하고 민생안정에 힘을 썼다.
한 달 뒤 전란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자 장개석 총통은 "피부병(일본)을 완전히 치료했으므로 이제는 심장병(공산당)을 치료해야할 차례다!" 라는 말을 하면서 공산당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1차 국공내전과는 다르게 질적, 양적 모두 공산당이 국민당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장개석 총통은 100여개가 넘는 사단으로 공산당의 거점기지를 총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공산당은 2달도 채 못가서 국민당 정부에 편입되었다.
중국 남부의 광서성 군벌도 힘 없이 무너져 얼마 못 가 합병을 당했다.
중국 서부의 운남 군벌도 3달을 못 버티고 국민당 정부에 합병당했다.
국민당 정부는 신강 티벳 서북 군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통일하게 되었다.
때는 1941년 11월 초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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