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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투]페르시아 전쟁의 마지막. 이수스 전투

작성자장독대|작성시간08.07.12|조회수666 목록 댓글 3

이수스(Issus) 전투 - BC 333년

 

 

마케도니아 기병(Companion Cavalty)

 귀족들로 구성된 마케도니아 기병은 그리스 기병의 개별활동에 비하여 잘 훈련된 전술단위로 활약하였다. 기병은 중보병과 함께 전면을 담당하고, 경보병은 전면, 배후 및 측면에 배치되어 주력군을 엄호하는 한편 적을 정찰하고 습격하면서 정면을 담당한 중기병을 지원하였다.

 

포병의 도입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는 종래에 공성용으로 쓰였던 카타풀트(Catapult, 곡사병기)와 발리스타(Ballista, 평사병기)를 오늘날의 야포처럼 짐마차에 싣고 군대가 행군할 때 같이 이동할 수 있도록 개량하여 협로, 야전, 도하 및 돌발적인 위협사태 등에 사용하였다.

 

이수스 전투

 

개요

BC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22세의 약관으로 페르시아 정복에 착수하였다. 그는 보병 30,000명과 기병 5,000명을 대동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헬레스폰토스(Hellespontos)를 횡단하여 그라니코스(Granicos) 강에서 적을 격파하고 소아시아를 침략했다. BC 333년에는 이수스에서 압도적으로 다수인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여, 훈련이 잘 된 소수의 병력으로 기동성과 대담성을 살려 다수의 적을 격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작전 경과

 · BC 333년 10월 다리야바우시(داريوش,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가 시리아(Syria)를 향하여 남진해 간 것을 알자, 급히 마케도니아 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고, 알렉산드로스의 배후 알렉산드레타(Alexandretta) 부근에 10만 명 이상의 부대를 배치시켰다. 알렉산드로스는 3만 명과 함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돌아섰다.

 ·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군이 피나로스(Pinaros) 강 바로 북안의 좁은 해안 평원에 종심이 매우 깊은 전투대형으로 정렬된 것을 알았다.

 수적인 심한 불균형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레우크트라(Leuktra)에서 사용된 에파미논다스(Epaminondas)의 사선대형(斜線隊形)의 전술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는 기병과 중보병으로 페르시아 군의 좌익을 공격하고, 그러는 동안 중앙과 좌익은 죄측 후방에 사선대형으로 남아있게 할 계획이었다. 테살리아(Thessalía) 기병은 페르시아 군 기병의 위협으로부터 좌익을 엄호하였다. 준비단계 작전으로, 그는 피나로스 강 남안의 작은 언덕에 있는 페르시아 군의 강력한 엄호부대를 물리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기병을 이끌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팔랑크스(Phalanx)의 선두제대가 도하할 때, 페르시아 중앙군이 반격을 가해와 약간의 곤란을 겪었다.

  · 기병의 돌격으로 페르시아 군의 좌익이 격파되자, 알렉산드로스는 노출된 페르시아 군의 중앙을 향하여 기병과 중보병을 서쪽으로 선회시켰다. 이러한 지원으로, 마케도니아의 중앙군은 원기를 회복하여 재차 공격을 할 수 있었다.

  · 한편 다리야바우시의 우익인 페르시아 기병은 피나로스 강을 건넜으나, 테살리아 기병과 팔랑크스의 좌익에 의하여 격퇴되었다.

 마케도니아의 기병과 보병의 협동공격으로 중군이 무너지는 것을 본 다리야바우시는 공포에 휩싸인 생존자들 속에서 전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군은 50,000명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나, 마케도니아 군은 450명이 전사하였고, 다리야바우시의 모친, 왕비, 그리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포로로 잡혔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추격한 후, 돌아와서 최초의 계획대로 기지로 사용될 해안 경영에 착수했다.

 

교훈

 · 승리의 교훈은 마케도니아의 개인적 또는 전술적 군사력의 우세나 사기의 문제에 있지 않고 양측의 전투개념 차이에 기인했다. 마케도니아가 공격적으로 나온데 반하여 페르시아는 수세적이었다. 페르시아는 우익의 기병이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시기에 전선에 투입하여 적의 방진을 유린하지 못하였다.

 · 반면, 알렉산드로스는 전투 초기에 사선대형의 우측 선봉에 위치하고 있던 마케도니아 기병으로 적의 좌익을 격파하여 전투의 기선을 제압하고, 이로써 페르시아는 우익을 활용할 기회를 박탈당하였다.

그림:Battle issus decisive.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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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Daumkang | 작성시간 08.07.12 역시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ㅡ,.ㅡ
  • 작성자[#]바랑기안가드 | 작성시간 08.07.12 그후 계속패배한 다리우스3세는 그후 스키타이용병대장 베수스에게 죽임을 당하죠
  • 작성자오토 크레치머 | 작성시간 08.07.12 캬.. 어떻게 저 명화에선 어떻게 다리우스황제의 마차와 알렉산더만 딱 남겨지고 다 뜯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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