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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역사의 모순-독일 史 (6)나치의 종말

작성자영웅본색|작성시간11.10.04|조회수667 목록 댓글 3

 

역사의 모순-독일 史

역사의 모순 -독일(2)

역사의 모순-독일(3)

의 모순 독일史-(4)전쟁

의 모순 독일史-다못한이야기

 

 

 

 

1944년...

 

 

 

 

 

 

"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야볼!!(예!)"

 

 

광적 선동으로 유명한 괴벨스. 그는 마지막 인력을짜내기위해 사기방송을 내보낸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징집군

 

 

국민 돌격대

 

선전장관 괴벨스는 승리를위해 국민들도 싸우자라고 하였고

대다수 국민들은 패전이 임박하단걸 알고있었기에 자발적이진 않았습니다.

 

판저파우스트를 들고있는 소년병

사진은 대부분 웃고있지만 소년의 눈빛은 그렇지않습니다.

 

 

이시기 괴링은 프랑스 미술품을 빼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 미술품을 팔아 자신의 도피에 도움이 되게하려함이었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암살시도 후 극심한 손떨림을 보였습니다.

그는 그모습을 보이지않으려고 연설을 라디오로 하였습니다.

전쟁상황은 악화되고있었고 히틀러는 고심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무기

v2입니다 v1은 시간이지나면서 영국 공군에의해

격추되었진만 이미사일을 요격불가능했죠

하지만 런던에만 집중 투하되어 전쟁에 별다른 지장은

주지 못했습니다. 연합군에"이야 이런것도 만드네?"

라는 신비감만 줄뿐..

 

 

 

소련에서는..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한다"

-= IMAGE 50 =-

독일군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밀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마라 자리를지키고 소련군을 막아라

조국을 위해 싸워라"

 

 

그의 명령에 항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데리안

(파직됩니다)

만슈타인 은 마지막까지 히틀러를 설득했습니다

그는 파직됩니다.(이 결과로 독일 국방군은 이제 히틀러를 무시하기시작합니다)

 

 

-= IMAGE 51 =-

소련은 가차없는 공격을 가했습니다.

독일 포로들은 대부분 총살되거나 포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소련군은 보복으로 독일인들을 강강.살인으로 되갚아주었습니다.

 

 

 

1943년 게토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이 더이상은 못참았던것이죠..








이에 힘입어 1944년 소련군이 가까이오자 폴란드 저항군도 봉기합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독일 군복으로 위장한 바르샤바 게토의 유태인봉기군




게토 봉기군 소탕에 투입된 독일 제3 보병연대 병사들




유태인 봉기군에게 붙집힌 독일군장교




봉기군이 제조한 박격포




게토 상공의 독일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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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 포격에 동원된 독일군600mm 포 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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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게 탈취한 봉기군의 하노마그장갑차





종전후 게토 폴란드인 학살전쟁범죄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진 독일군장교 유르겐 스트루프

 

 

 

 

 

병영내에서는 탈영자가 속출하였고 병영기피자가 부지기수로 늘었습니다.

히틀러는 그들을 반역자로 몰았고 총살했습니다.


-= IMAGE 3 =-

-= IMAGE 2 =-

 

 

 

 

 한편 독일은 무차별 폭격에 시달리고있었습니다.

 

함부르크의 모습.

 

 

히틀러는 동부.서부 군대에 제한적 후퇴명령을 내리게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두 불태우고 하나도남김없이 파괴하라.."

-= IMAGE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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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의 명령에따라 동부전선에서는 모든 산업시설을 파괴하며 후퇴하였다.

하지만 서부에서는 뜻밖의 항거가있었다.

 

 

독일 점령군의 파리 군정청 청사.

콜리츠 장군은 제1차세계대전(1914 - 1918) 중 서부전선에서

소위(lieutenant)로 복무했으며, 1943년 중장(中將)으로 승진하였다.

1944년 8월 1일 보병 대장(大將)으로 승진하였고,

1944년 8월 7일에 파리 군정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9일 파리에 도착했다.

이 날부터 23일 최종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의 16일 동안

히틀러는 파리 폭파를 수차례에 걸쳐서 직접 전화로 명령하였다.

영화는 군인으로서의 절대 명령 복종과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으로서의 인간적 고뇌를 표현한다.

 

 

히틀러는

 

"파히는 불타고있는가?"

 

장군은 드디어 17,000명의 장병들과 함께 명령 불복종을 선택한다.

1944년 8월 25일, Philippe Leclerc de Hautecloque 프랑스 장군과

Henri Rol-Tanguy 레지스탕스 지도자에게 항복했다.

역사적으로 이 순간은 파리 해방의 날이 되었다.(Liberation of Paris)

장군의 선택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 파리를 구출했으며,

수많은 독일 병사들의 목숨까지도 구원하였다.

 

 

 

Image:Flag of the United States.svg:다 끝났습니다 항복하세요.

:양키 고홈!

Image:Flag of the United States.svg:차! 난 햄복할수가없어!

1944년 겨울,, 서부 마지막공세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독일의 기갑군단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진 전선에서 유일하게 진지를 고수한 곳이 바로 바스토뉴입니다.

 

 

이전투로 공군.기갑사단은 완전히 와해대는듯이 보였다.

 

 

그리고 

소련에 대한 마지막 공세 (봄의 새싹작전!)

 

 

아래 싸이트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있음

 

http://cafe.daum.net/054/IuZ/3505?docid=Hmm|IuZ|3505|20090205071738&srchid=IIMLSWfW10

 

 

이공세마저 실패했다.

히틀러는 정신분열증에 걸린거처럼 벙커에 틀어박혀 혼잣말을 중얼거리게된다.

 

이제 남은 전력은 어린이.청소년

아래의 참조 동영상 중 첫 번째는 히틀러유겐트에 대한 독일내 홍보자료로 왜곡이 심한 영상을 보여줍니다.

다음 동영상은 패전직전의 베를린 모습으로 이제는 소년병이 아니라 여자와 노인까지 동원해서 판저파우스트 하나만 주고 지키라는 황당한 장면도 나옵니다. 이 당시 히틀러유겐트의 나이를 잘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리에서 싸우던 유겐트영화가있었는대 생각이안나는군요

흥분된마음에 조국을 지키겠다고 미군에덤빈 6명의 아이들.

1명만 살아남는걸로 알고있습니다.

 

 

1945년 지하벙커.

히믈러.괴링 는 자신을 아껴준 총통을 버리고 탈출합니다.(이런놈을 왜믿나)

 

 

소련군은 점점다가오고 ss친위대만이 국회의사당을 방어합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합니다. 에바.블론디(개)와함께요

충성스런 괴벨스부부도 자살합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말이남았습니다

"총통곁에 죽을수있어 영광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되니츠의 항복 방송을듣고 거리로나옵니다. 아주 소수의 친위대만 빼고요 그들의 패배의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못다한이야기는 내일 마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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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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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太人輩 | 작성시간 11.10.04 태그를 어떻게 퍼오면 이렇게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 작성자yan-sovie | 작성시간 11.10.06 씁쓸하네요. 음악처럼..
  • 작성자역설신 | 작성시간 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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