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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동아시아]중국의 식인풍습에 대한 오해...

작성자cciba|작성시간08.11.10|조회수871 목록 댓글 10

중국의 형벌 중에 사람으로 젓갈(이게 바로 그 문제의 '해'죠..)을 담그는 형벌이 있습니다...

 

주로 반란을 일으킨 역적에게 행하는 형벌로 극형 중 극형이죠...

그렇게 담근 젓갈을 주요 대부大夫와 신하들에게 돌리는 데....

 

그것은 맛있으니까 먹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도 잘못하면 이꼴 된다...

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시절에는 이렇게 사람으로 젓갈을 담가서 돌리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춘추전국시대가 국왕시해가 뻑하면 발생하던 난세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역신들이 생산(?)되었고...그래서 그런 식의 극형으로 겁을 줘야될 정도로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젓갈을 즐겼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해도 별 문제는 안됩니다....

공자는 단순히 '젓갈'을 좋아했던거지...'사람 젓갈'을 좋아했던 것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새우젓 멸치젓 명란젓 창란젓 낙지젓을 좋아하는 사람은 '젓갈'을 좋아하는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그게 사람으로 담근 젓갈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른 예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고기를 좋아한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공자는 그냥 예전에 젓갈을 즐겼는데...

자로가 젓갈이 되어서 돌아오자 다음부터는 젓갈을 볼때마다 자로생각이 나서 젓갈을 먹을 수 없었다지...

 

공자가 예전엔 인육을 즐겼는데 제자가 요리되서 오자 끊었다는 것이 아니죠....

 

문제의 그 '해'라는 것이 '사람젓'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닌 이상...

공자가 해를 즐겼다는 것이 사람고기를 즐겨먹었다는 반증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죠....

 

아마도 최초로 역사에 기록된 식인을 하신 분은

유명한 주문왕입니다....

 

주문왕이 유리에 감금되어 있을 때...

맏아들인 백읍고가(주무왕이 맏아들이 아닙니다) 폭군 주紂에게 가서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간청하자...

 

주는 백읍고를 죽여서 고깃국으로 만들어서 주문왕에게 줍니다...

이에 주문왕은 아들로 만들어진 국을 들이키죠....

 

이에 사마천은 사기에 이르기를...

아들을 잃고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된 것에 어찌 거부감이 없겠냐만은

자신이 살아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했기에 백성과 중국을 위해서 아들을 삼켰다...

라고 논평했습니다....

 

또 역아라는 사람은 춘추오패 중 첫번째 패자인 제환공에게 자기 아이를 잡아서 찜요리를 해 바쳐서

궁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제환공이 한 말이 이거죠...

'대체 무슨 고기를 쓴 요리관대 이처럼 맛있는가?'

인육요리가 성했다면 적어도 일국의 군주가 못먹어보진 않았겠지요?

더군다나 제환공은 사치와 허영, 온갖 호사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인물입니다...

 

그리고 전국시대 악양이라는 위문후의 장수는 적국에 아들이 대신노릇을 하고 있었는데...그 나라에 쳐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그나라 왕은 악양의 아들을 잡아서 국으로 만들어서 보냅니다...

 

이에 악양은 '네가 스스로 멍청한 왕을 섬겨서 이지경이 되었구나' 하며 훌떡 삼키고

'왕에게 아주 잘먹었다고 일러라 그리고 내가 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우리 진영에도 가마솥은 있다는 것을 말해다오'

라고 하지요...

 

왕이 아들을 잡아 요리를 하게 된 건 아들의 국을 보내면

악양이 혼비백산하고 슬픔에 못이겨 후퇴할 것이라는 계산에 의해서 였죠...

 

그리고 역시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문공(당시는 공자 중이)이 천하를 유랑할 때

굶어죽기 일보직전이자 개자추가 자기 허벅다리 살을 잘라서 국으로 만들어 바치죠...

 

모르고 먹었던 진문공 역시

'못보던 맛인데 이게 무슨 고기지?'라고 묻고 답을 들은 뒤 크게 탄식을 합니다...

역시 그래도 일국의 공자였고 제환공에게는 향략을 얻었던 진문공인데 인육요리가 성했으면 못먹어봤을리 없겠죠?

 

또 유비가 여포에 패해서 조조에게 도망갈때...

산골의 농부가 유비에게 먹일 것이 없자

자기 아내의 엉덩이 살을 잘라서 요리해서 먹입니다...

 

그리고 이에 감격한 조조가(유비가 아니라...)

그 농부에게 큰 상을 내리죠...이것역시 인육요리가 성했다면 상을 내릴 리가 없겠죠?

 

그외에 위에 언급한 젓으로 만든 경우는 훨씬 더 많습니다...

 

자아...그런데 봅시다...확실한 건 젓으로 만드는 경우들은 무슨 명절날 음식돌려먹는 행사가 아니라

엄연한 '형벌'로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만일 인육요리가 횡횡했다면 형벌의 의미가 있을까요?

 

또 주문왕, 역아, 악양의 경우는 그게 '뉴스'거리가 됐다는 건 그게 흔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방과의 유명한 말이죠?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뉴스가 아니다....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

또한 그런 행위들은 당대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사람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없습니다...

 

문제가 된 그 만두라는 것도...제갈량이 만들때 남만을 평정하고 원혼을 위로할때

남만의 풍습으로 사람머리를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하자

그건 너무 잔인하다고 사람머리대신 사람 머리처럼 생긴 만두를 만들어서 대체한 것인데..

 

거기 어디에도 사람고기를 넣었다는 건 없을 뿐더러...더군다나 기껏 사람머리 대체해서 만들었는데

상식적으로 거기 또 사람고기를 넣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예이긴 한데...

제환공이 전국맹회에서 인신공양을 하려하자 관중이 그건 중국의 법도가 아니라고 말립니다...

그리고 송양공은 인신공양을 했다가 인심을 잃고 망하죠...

 

사람을 죽이고 그 고기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면

저런 말이 나올리가 만무하겠죠?

 

아마도 유난히 사람으로 요리하는 장면이 많아서 그걸 문화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 '극형'이 횡횡할 정도로 난세(특히 춘추전국)였다는 것이지...

 

그게 서민들의 음식이나 아니면 무슨 고급요리마냥 상시 행해지던 풍습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특별한 상황에서 행해지던 '극형'이었는데...

다만 그런 극형을 행할 일이 워낙 빈번할 정도의 난장판이라...

자주 등장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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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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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Daumkang | 작성시간 08.11.11 -_-a 보통은 다 극단적이죠
  • 작성자고구려벌판 | 작성시간 08.11.16 공자께서 인육을 즐겨 드셨다는 떡밥이 최강이죠. 저질의 유학까들......
  • 작성자송하이킹왕짱 | 작성시간 08.11.29 but 후세로 가면갈수록 인육을 했다는이야기가 만연하죠 당나라시절에는 관에서 정한 정육점에서 죄인 노예의 살을 발려 팔았다는기록이있습니다 20세 전후 여인의 가슴살이 40세 남자의 궁둥이살보다 20배 비싸게 팔렸단 기록이나오죠 더불어 그 이후로 나가면 심심찮게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늘어갑니다 오늘날 중국사람이 마오저둥을 최고의 영웅이라고 칭하는 진짜 이유가 식인습관을 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있고요 확실한건 청나라 말기까지만 해도 식인습관은 만연했다는겁니다 당시 유행하던 불로장생의 비약은 사람의 간을 바탕으로 제조되던거기때문이죠 한사람의 간으로는 약 40개정도의 환이만들어지고 정상적인 복
  • 작성자송하이킹왕짱 | 작성시간 08.11.29 용방법은 매일 아침저녘으로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자기전에 복용인데 이걸 장복해서 90세가 넘게 젊음을 유지했다는 기록도있습니다(뭐 과장이 좀 많이 석였다고생각하지만..) 최소로잡아서 10년을 먹었다치면 그 사람이 잡아먹은 머릿수는 몇백명이 넘지않습니까?
  • 작성자참호를파라! | 작성시간 08.12.06 젖갈하니까 생각나는데... 예전에 스펀지에서 본건데, 콩쥐팥쥐 였던가 거기 원본에는 팥쥐인가 팥쥐어머니인가 젖갈로 담아버렸다고 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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