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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베네치아 제노바 1차 전쟁

작성자아즈텍|작성시간17.05.03|조회수691 목록 댓글 3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아주아주 유명하게 알려진 상인국가입니다. 

이들은 같은 무역로를 이용하였기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일이 많았고 둘은 서로 라이벌의식을 가지게됩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그리고 피사는 십자군원정이라는 새로운 사업으로 돈을 벌기시작했는데요

이 과열된 경쟁으로 국가끼리의 안좋은 감정들이 넘쳐나서 

그들(상인들)이 머무는 임시 거주지는 요새처럼 장벽을 쌓았습니다.

당연히 그 도시에 시민들은 이를 싫어했기때문에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게됩니다.

특히나 이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무역에 큰 수입을 얻었기 때문에 상인들이 대거 콘스탄티노플에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상인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깽판치는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은 1204년 유명무실해졌는데요 바로 베네치아의 4차십자군으로 

동로마가 망하고 라틴제국이 들어선 것입니다. 피사와 제노바상인들은 전부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추방되었고

베네치아 혼자 독점하고흑해무역권(동로마 황제가 다른국가에게 막아놓았는데 라틴제국이 형성되면서 베네치아가 묵음)과 에게 해, 크레타를 지배하게됬습니다.


이러한 베네치아의 독점에 여러 지중해 무역거점에서 베네치아인들을 싫어하는 감정이 솓아올랐고

마침내 팔레스타인 해안 아크레에서 그 감정이 터지면서 1차 전쟁이 시작됩니다.


(당시 동방무역을 할려면 콘스탄티노플, 십자군 요새들, 흑해 정도 밖에없었습니다.)


이후에도 똑같지만 둘의 전쟁은 상인 거류지 사이에서 아주 사소한 일로 일어나게 됩니다.

제노바선원이 배를 가지고 항구에 나타났는데 해적질을 당한 베네치아인들이 도둑맞은 자기 배라고 생각해 싸우다가

그만 제노바인이 죽게됩니다. 이에 제노바 인들이 항구를 급습하여 베네치아 선박과 거주지를 박살내고

그곳에 사는 베네치아인들을 살해하게됩니다.



베네치아도제는 소식을 듣자 제노바에게 배상을 요구하지만 받지못하자 전임 도제 아들인 로렌초 티에폴로 지휘하에 무장한 갤리선 32척을 레반트로 파견합니다. 그리고는 1255년 팔레스타인 해안에 도착해 제노바인들이 항구입구에 설치한 쇠사슬들을 부수고 제노바 갤리선에 불을지르고 겸사겸사 근처에있던 티레의 근거지도 급습하여 제노바 제독과 시민300명을 사로잡습니다.


 

제노바인들은 분노하여 1257년 로소 델라 투르카의 지휘 하에 40척의 갤리선과 4척의 범선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파견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네치아인들도 파올로 팔리에로지휘하에 다시 함대를 보내고 델라 투르카의 함대가 먼저 도착하면서 전투는 시작됩니다.

바다에서 양측의 함대가 접근하면서 각각 성 마르코(베네치아 상징) 성 게오르게(제노바 상징)을 외치며 맞붙게됩니다.


하지만 제노바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갤리선 25척을 뺏기고 1700명이 수장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노바인들은 아크레에서 추방당하고 그들의 탑들이 전부다 부셔집니다. 포로들은 쇠사슬에 묶여있다가 교황의 간청으로 석방됩니다.

(제노바인을 지원하러온 십자군 기사 필립 드 몽포르의 디스: 제노바인들은 바다에 빠져 죽는 갈매기를 더 많이 닮은 허풍쟁이들이다. 그들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패배한 제노바는 당황했지만 항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외교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베네치아공화국의 부의원천인 라틴제국을 무너뜨리는기 위해 니케아제국을 끌여들이는것입니다.

라틴제국은 언제망해도 이상하지않을정도로 힘이 약했지만 금각만에 베네치아 함대가 영구지속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지못하게 했습니다.

1260년 제노바 대표단은 미카엘8세에게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수있게 함대를 제공하겠다고 하고 조약이 체결됩니다.


(역시 상인놈들 양심 없음)

님파이움 조약(1261년 7월 10일):제노바는 선박50척을 공급하고 유지비는 미카엘이 지불,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네치아가 누렸던 특권들을 제노바가 이어받기(무관세 무역권, 육지 기반시설, 상업적인 기반시설, 에게 해 전역의 주요 무역 거점들에도 자유무역과 제노바의 거류지 건설허용, 베네치아의 가장 귀중한 식민지인 네그로폰테와 크레타 제노바가 소유하기) 

여기다가 미카엘은 흑해 무역까지 허가해줍니다.



그리고 15일 뒤 베네치아 함대가 잠시 빠진틈을타 니케아제국군이 콘스탄티노플성벽을 넘고 수도를 정복합니다.

모든 베네치아 피난민들과 함대는 네그로폰테로 도망가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모든 베네치아건물들은 박살납니다.

그 뒤에도 해전은 9년동안 소모전형태로 지속되고 결국 휴전하게됩니다. 


제노바인들은 얼마안가 베네치아인들이 그랬던것 처럼 인기가 떨어지게 되고 

심지어 다른 라틴 황제를 옹립하려다가 붙잡히게 됩니다.(구에로치오사건) 

결국 제노바인들은 잠시 추방됬다가 갈라타 전역을 그들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조약을 채결합니다.


1268년 베네치아인들도 다시 콘스탄티노플에 돌아오게되는데 

사실 제국입장에선 이들이 없으면 더 이상 국가가 존속하기 힘들게되었습니다.

동부지중해에 들끊는 해적의 공격을 막을수있는 해군이 없었기 때문에 갈라타 지역에 제노바인들의 거주지를 허락하고 흑해를 외국 무역에 개방합니다 또한 제국의 여러 특권들을 다른나라에 거저 내주었으며 20년뒤 안드로니코스 황제는 아예 비잔틴 함대를 해체하면서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비잔틴의 모든 해군 통제권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1291년 맘루크의 술탄 알 아슈라프 칼릴이 아크레를 정복하여 마지막 십자군 요새가 사라지고 1290년 부터 1345년까지 교황이 이슬람교도지역과 교역을 금지하자 또다른 동방무역 거점지인 흑해에서 두 공화국은 충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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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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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스아스터 | 작성시간 17.05.03 동로마가 함대는 적어도 유지했어야 했는데요
  • 답댓글 작성자아즈텍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5.03 4차십자군으로인해 콘스탄티노플 개박살나서 그거 보수하느라 돈이읎어짐
  • 답댓글 작성자물의 백작 | 작성시간 17.05.03 그건 좀 아닌 것이 정작 1270년대까지 에게해 중부와 북부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동로마 해군이 수복한 바 있습니다. 약세가 뚜렷해진 것은 1290년대 이후의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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