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건국 4년 …… 국민소득 : 63$
01.18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平和線) 선포
‘이승만 라인’ 또는 ‘이 라인(Lee Line)'. 한국 연안 수역 보호를 위해 선언한 해양주권선. 1965년 한-일 기본 조약(한-일 협정) 체결로 사실상 해체됨.
▲ 지도에 보이는 붉은 선이 평화선(이승만 라인)이다.
제2차 개헌안(대통령 직선제․양원제 국회) 부결(찬성 19:143 반대)
02.01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창설
02.15 일본 수도 도쿄에서 제1차 한-일 회담 본회담 개최(04.21 중단)
02.18 거제도포로수용소 제62수용소 폭동 발발…포로 77명 사망․140명 부상, 미군 1명 사망․38명 부상
03.19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 폐기
약칭 ‘신문지법’. 1907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제정. 민족 언론 탄압의 도구로 활용.
04.01 광주고등검찰청 개청
04.17 원내 자유당․민국당, 제3차 개헌안(내각책임제) 국회 제출(05.07 공고)
04.19 동양통신 창립
일간 통신사. 1980년 11월 신군부의 언론기관통폐합으로 폐사.
04.20 장면(張勉) 총리 사임…후임에 장택상(張澤相) 지명(05.06 국회 인준)
04.24 이승만 반대파 서민호 의원, 서창선(徐昌善) 대위 살해…이승만 지지파에 호재 작용
정치적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 사건은 “정당 방위” 개념이 성립된 계기이기도 하였다.
04.25 제1차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
04.26 서울대, 국내 최초 박사 학위 수여(6명)
05.06 임진왜란 발발 360주년 기념 국난극복 시민대회 개최
05.07 거제도포로수용소 폭동 발발(거제도포로소요사건)…06.10 미군, 폭동 진압
거제도포로수용소 수용 친공 포로, 수용소장 프랜시스 T. 돗드(Francis T. Dodd) 준장 납치(05.10 석방)
수용소장 석방 조건으로 미군이 포로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한데 대하여 사과할 것을 요구함. 미국이 이를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향후 수용소 내의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분리 수용의 시발점이 됨.
상이군인 명예 제대
05.10 제1차 도의회 의원 선거
05.14 정부, 제4차 개헌안(대통령 직선제․양원제 국회) 국회 제출
05.19 민중자결단․땃벌떼․백골단 등 정체불명의 관제민의(官製民意) 단체, 국회 해산 요구 시위
“사람만 보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공격한다.”라는 뜻을 가진 정치 폭력 단체.
05.24 한-미 경제 조정 협정(「한-통일 사령부 경제 조정에 관한 협정」) 조인(마이어 협정)…재한미군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 및 미국의 대한 경제 주권 확보 규정
미국 공사 C.E. 마이어가 협정 체결 참여. 합동 경제 위원회를 설치하여 사실상 미국 대표가 한국의 경제 주권을 장악한 불평등 협정.
05.25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전라 23개 시․군에 비상 계엄령 선포…전국 계엄사령관 이종찬(李鐘贊) 육군참모총장, 병력 출동 요청 거부
05.26 부산 정치 파동 발생…내각책임제 개헌 주장 야당 국회의원 50여 명이 탑승한 통근 버스 헌병대 연행(그 중 12명은 구속)
▲ 1952년 5월 26일, 헌병대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국회의원 50여 명이 탄 통근 버스를 끌고 갔다.
05.29 김성수 부통령 사임
06.03 미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이승만 대통령에게 부산 정치 파동 관련 비난 서한 발송
06.04 시․군 단위 교육자치제 실시
06.08 정전 회담 가조인
06.20 부산에서 국제구락부 사건 발생
이시영·김성수·장면 등 81명의 인사가 부산 국제구락부에 모여 정부측이 내놓은 ‘대통령직선제개헌안’에 반대하여 반독재 호헌구국선언을 꾀하려던 사건. 대회 도중 난입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선언 발표는 중단됨.
06.23 유엔 공군, 북한 수풍․부전․장진․허천 일대 발전소 공습 감행
전쟁 발발 이래 대규모의 폭격.(폭격기 500대 이상 동원)
06.25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발생(범인 유시태(柳時泰) 체포)
06.30 민중자결단, 국회의사당 포위…국회의원 80여 명 연금
이승만 대통령, 국회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 부결시 국회 해산 내용의 담화 발표…국회, 7월 4일 개헌안 표결 합의
07.04 국회, 제3차(내각책임제)․제4차(대통령 직선제·국회 양원제) 개헌안 발췌 조항 통과(제1차 개헌)…기립 표결 결과, 찬성 163 / 반대 0 / 기권 3
|
<주요 내용> 1. 정․부통령 직선제 도입 2. 국회 양원제 채택 3. 국회는 국무위원 불신임권을 가진다. |
▲ 1952년 7월 4일, 이 날의 표결은 의사당이 경찰에 포위된 강압적인 분위기 아래 진행되었다.
07.10 국회 의장에 신익희, 부의장에 조봉암․윤치영(尹致暎) 선출
07.17 부산 부두 노동자 총파업
07.18 국회, 중석불(重石弗) 사건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정부가 텅스텐(중석)을 수출하여 얻은 외화를 민간 기업에 불하하여 비료 · 밀가루를 수입하게 한 뒤, 이를 농민에게 최대 10배의 이윤을 남길 정도의 폭리를 취하며 판매해 피해를 입힌 사건. 관련자 대다수가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이는 정치권력과 결탁한 기업의 부정 축재의 효시로 기록됨.
08.05 제2대 대통령 선거 및 제3대 부통령 선거 실시…대통령에 자유당 후보
이승만, 부통령에 무소속 후보 함태영(咸台永) 당선(08.15 취임)
|
총투표수 727만 5,883표 / 투표율 88.1%
<대통령> 자유당 이승만 후보 : 523만 8,769표(74.6%) - 당선 무소속 조봉암 후보 : 79만 7,504표(11.4%) 무소속 이시영 후보 : 76만 4,715표(10.9%) 기타 후보
<부통령> 무소속 함태영 후보 : 294만 3,813표(41.3%) - 당선 |
08.13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53.05.13 공포)
주 48시간 노동. 퇴직금 보장. 파업 방지, 전시 하 생산 독려 목적으로 제정됨.
08.15 이승만 제2대 대통령 취임
09.01 징병제 실시
09.30 장택상 국무총리, 고시진(古市進) 사건 인책 사임…후임 국무총리 서리에 백두진(白斗鎭) 임명(10.09)
일본인 후루이치 입국 사건. 국무총리 장택상은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 부윤(서울 시장)을 지낸 후루이치(古市)의 밀입국을 허가하고 요담을 나눈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공세를 펼친 자유당 족청계(이범석을 위시한 조선민족청년단 계열)는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에 비협조적이었던 인사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10.06 백마고지(철원) 전투…국군 9사단, 12차례 공방전 끝에 철원 지역 방어 성공(~10.15)
국군 3,500여 명, 중국 공산군 1만여 명 사상
▲ 포연에 휩싸인 백마고지.
10.08 정전 회담 무기한 휴회
12.02 미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방한
12.03 유엔 총회, 인도가 제시한 한국전 포로의 중립 지대 이송안(「한국전 포로 문제에 관한 결의안」) 가결
자유 송환을 기초로 하되, 정전 이후 90일 동안 귀환을 결정하지 않는 포로는 정치 회담에 이관함. 이관 후 30일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유엔에서 최종 결정.
12.14 한-미 경제 협정 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