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사를 잘모르다보니 Ducas가 아니라 Doukas 였네요. 그래서 애들 능력치가 그렇게 좋나....
어쩌저쩌 하다보니 짝퉁 두카스네요 ㅋㅋㅋ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시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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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고? 대머리니까 공짜로 받는거야!!』 - No heir Ducas -
1488년 오스만과의 십자군 전쟁에서 해군력의 부재로 아무것도 얻지못한 Basileios가 사망 한다.
그리고 대머리 두카스라고 불리우는 그의 아들이 에피루스 공작위를 이어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진짜 이름을 알지못한다 기록이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다. 이 시기의 공국 역사서는 후대에 소실 되었다.
여러 신화(?)나 구전된 이야기들에서 그는 '대머리공'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추측하건데 진짜 대머리였던것으로 생각
되는 발언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그시기 외교문서를 통해서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
대머리공은 아버지가 망쳐놓은 에피루스의 군사적 인력과 전쟁피로도를 회복 해야만 했고, 에피루스 공국의 지상과제인
오스만 성전을 성공 시켜야만 했다.
1491년 까지 내정에 힘을 쏟던 대머리공은 아라곤의 왕족인 알렉산드라 드 트라스트마라과 혼인을 한다
우연히도 1대 에피루스 공작과 이름이 일치했다. 알렉산드로스의 가호 대머리 공이 원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1493년 전쟁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정책들을 제시함으로서 에피로스 재건에 한발 더 나아갔다.
1494년 대머리와 알렉산드라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는 1대 에피로스공의 이름을 따 아들 이름을 알렉시오스로 지었다.
(나름 갓갓갓 후계자네요 ㅎㅎ 한줄기 빛이로소)
거진 7년 동안 대머리공은 1차 반오스만 전쟁전의 인력과 재산을 비축하게 되었다. 그는 특히 군사력에 많은 힘을 기울였지만 해군력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1496년 제 2차 반오스만 전쟁을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의 실책을 한가지 보완했다.
' 에피로스 주도로 전쟁을 할것'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것이 있다.
'해군력을 보완 할것'
그 해결책으로 아라곤을 소집하였지만 응하지 아니 하였고, 오스만은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로 팽창중이라
지상군의 우위가 있을때 공격해야 했다. 적기는 지금 뿐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전쟁은 1차전과 아주 똑같이 흘러 갔다. 오스만의 동맹국은 여전히 튀니지아... 오스만과 튀니지아는 막강한 해군력으로 시칠리아와 에게해를 봉쇄 했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시칠리아는 튀니지에게 점령당했고, 에피루스-헝가리-오스트리아군은 오스만령 발칸에서 대부분을 령 했지만 아나톨리아로는 가지 못하였다.
1500년 발칸의 오스만 술탄군과의 대규모 전투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났고, 압도력인 양과질로써 오스만군을 패퇴시켰다. 이것으로 오스만군역시 이 전쟁에서 발칸으로의 역공의 기회가 사라졌다.
대머리공은 반짝반짝 머리를 굴렸다. 이전쟁은 이제 이상태에서 무기한 대치만 할것이고, 그 끝은 매우 근소한 우위로 반오스만군의 승리도 돌아갈테지만 결국 서로 얻는것은 없는 전쟁이 될것이라고 판단했다.
외교의 끝은 전쟁이 시작이지만 전쟁의 끝도 외교이다.
외교는 타협이기도 하다. 대머리공은 머리를 굴렸다. 적이 원하는게 무엇인가?
빛나는 장고 끝에 그는 외교관을 튀니스로 보낸다.
그는 튀니지아에 원하는것을 주었다.
1500년 에피로스 공국은 튀니지아에 말타 섬을 할양하고, 펠로폰 네소스에서의 에피로스의 영향을 모레아를 제외하곤 철회 하였다.
그대신 튀니지아는 오스만과 함께하는 이 전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사실 튀니지아는 이웃국가인 틀렘센과 페잔이 튀니지아를 침공한다는 첩보를 받았고, 대머리공도 이 사실을 알고서 딜을 한것이다.
이것으로 튀니지아는 전쟁에서 빠졌고, 시칠리아의 점령지는 에피루스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라곤에세 외교관을 보내었다.
이같은 행동은 오스만으로 하여금 아나톨리아로 군대가 밀어닥칠거라는 불안감을 주게 되었다. 오스만도 이전쟁을 빨리 끝낼 필요를 느꼈고 그 순간 대머리공의 외교관이 찾아왔다.
1501년 에피로스에게 이스칸다르를 그리고 로마제국에게 트라키아를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조약이 채결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트라키아 지방의 할양이었다. 트라키아지방은 오스만의 수도가 잇는 곳이였다.
이것은 오스만이 발칸으로 확장을 멈춘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오스만은 발칸정복 이전수도인 부르사로 수도를 재 이전 하였다.
빛나는 외교전 끝에 대머리공은 조그만 희생으로 큰것을 얻었다.
이것은 에피루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었다. 오직 대머리공만 이것을 언뜻 짐작할 뿐이었다.
1502년 전쟁이후 대머리공은 요새를 대규모 개선 보완하면서 전쟁중의 문제점을 보안했다.
1503년 결국 튀니지아는 페잔과 틀렘센의 침공을 받게 되었고, 이전 전쟁으로 인해서 틀렌센과 페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고. 대머리 두카스는 이소식을 듣고 매우 고소해 하였다.
그리고 1504년 대머리 두카스는 오스만에게 이스칸다르를 할양받은 이유를 드러낸다. 다시말하자면 그는 대머리이다.
그는 공짜로 금이 나오는 땅을 탐했다.
1505년 헝가리의 도움을 받아 그는 세르비아를 침공한다. 그의 목표는 금광이 나오는땅 코소보 그는 이 전쟁을 시작하고 일부 있던 머리카락이 일부 빠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완전한 대머리가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이것이 대머리의 공짜 빅피쳐!!!!!!!!!!!!!!!)
틀렘센에전쟁을 진 튀니지아가 평화조약으로 말타가 공짜로!!!!!!! 반환 되었다. 이로써 대머리공은 완전한 민머리가 되었다고 민중들은 이야기 하였다.
1506년 대머리공은 세르비아에서 코소보 금광을 뺏었고, 그의 상체의 털은 모두 빠져버렸다고 음유시인들이 노래 했다.
1508년 부터 코소보에 금광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여 에피루스의 제정은 무척이나 좋아져서 더많은 행정가들을 고용하여 중앙집권화를 시작했다.
1509년 상체부터 머리까지 완벽한 깔끔함을 자랑하던 위대한 공짜공작, 대머리공 두카스가 죽었다.
그의 외모부터 행적까지 후대에도 충분히 오르내릴만큼 매력적이었으며, 동시기 시민들과 귀족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두카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가장 매력적이고 사랑받았으며,
그의 이름은 그 누구보다 오래 기억되고, 그의 이야기는 시민들 사이에서 각색되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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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와 같은 이름인 Alexios Ducas가 공작위에 올랐다
그는 어떤 알렉시아드를 우리에게 알려줄까?
에피루스는 다시한번 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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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연대기를 쓰기전에 새왕이 등극해서 죽기전까지 플레이를 하는데 나름 각 왕마다 컨셉을 잡고 플레이하니 재미지네요
대머리공도 우연히 맞았어!!!! 또한 컨셉질을 위해 억지로 무리한 시도도 많이 하는데 나름 재미있네요
이것도 유로파에 묘미겟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