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게 명나라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쇼군은 걱정이 많았다. 개전 당시 일본군 군세는 다 합쳐서 32만. 반면 명군은 벵골과 싸우느라 예비 인력이 많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상비군만 52만에 용병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록 일본군이 날카로운 칼처럼 벼려진 군세였다고는 하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주력군을 요동과 명나라가 점유한 수마트라 섬 서북부로 진군시키고, 명군과 본격적으로 맞서 싸울 것을 신하들과 논의하던 쇼군은 자신을 써보라고 수도 저자거리에서 대놓고 광고하는 자를 보았다. 그 자는 옛 사타케 가문의 후예인 사타케 요시즈미라는 자로서 자신을 아시카가 가문의 성전에서 맹활약한 신장보다 낫다고 하였다. 물론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욕하고 누구는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쇼군과 대신들은 그를 끌고와서 대화를 나누어보니 그가 범상치 않은 재질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예비대 3만 5천 군대의 장군으로 삼았다.
그는 지용을 겸비한 자로서 시키면 이 난국을 헤치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자신하였다. 대신들은 그의 허풍을 가소로워하면서도 옛 사무라이 가문의 후예이자 인재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후방군을 맡겨 배후로 돌아오는 명나라군을 후려치라고 하였다.
한편 선봉군 10만은 7개월동안 온갖 고생을 다한 끝에 1차 관문인 선양을 함락시켰다. 아직 명나라군은 멀리 있었고, 그에 따라 재빨리 요동을 완전히 점령하고 요서 지방을 강점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전쟁이 벌어진 지 거의 1년이 다 될 즈음, 백제의 후예인 일본군은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포위하였다. 빠른 공세를 위해 집중포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군의 우월한 포격에 명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성벽은 균열이 생겼다.
한편 사타케 요시즈미는 배후로 돌아오는 명나라군을 추격하다가 닝샤까지 도달, 그곳에서 공성전을 펼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를 어쩌리요. 하필 분노한 명나라 황제의 친정군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암만 사타케 요시즈미의 군재가 뛰어났다고는 하지만 먼 길을 돌아온데다 병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고, 특히 황제군의 포병이 집요하게 포위사격을 가한지라 결국 예비군은 패전을 면치 못했다.
한편 선봉군을 맡고 있던 초소카베 히데요시는 다퉁에서 2배를 넘는 명군을 상대로 살벌한 공세를 퍼부었다. 마침 그들은 닝샤에서 별동대를 물리친 친정군인지라 이들을 꺾는게 중요하였다. 그리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기어이 베이징을 함락시킨 군사들은 절반의 부대를 차출해 초소카베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마침 뒤에서 오던 또 다른 군세가 제 때 합세한 덕에 숫자의 우위까지 확보한 초소카베 군은 명 황제의 친위군을 갈아버리면서 사타케의 복수에 성공하였다. 명군은 피눈물을 흘리며 후퇴하였고, 이제 하북지역은 옛 백제의 후예들에게 넘어갔다.
한편 명나라군은 멍청하게도 다퉁을 치던 도쿠가와 군과 카츠라 타카우지의 친정군 연합에 겁도 없이 정면도전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끼였다. 그들이 몸을 바쳐 주력군의 눈을 돌리는 사이 10만이 넘는 대군이 요동-만주로 우회기동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닝샤에서 목숨을 건 탈주를 한 사타케 군이 재정비를 하였고 또한 초소카베의 5만 대군이 베이징에서 일시적으로 회군하여 적의 배후를 찌르기로 하였다.
4만 3천에 달하는 명군은 단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당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이런 참혹한 결과에 몸서리를 쳤다. 반면 일본군의 사상자는 고작 4천. 지휘관을 제대로 붙이지 않은 병사가 잘못 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여준 사례였다.
명군은 다퉁이 점령당했음에도 뭐가 아쉬운지 계속 그쪽에 병력을 보냈고, 요서지역에서 배후를 찌른 적들이 사타케 군과 맞부딪혔다. 이들간의 전쟁은 매우 치열하였다.
배후로 돌아갔던 명군을 전멸시키는 등 수십만의 명군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음에도 아직 명군의 전력은 일본군보다 10만이나 앞섰다. 그나마 예비 인력의 수에서 일본이 명을 크게 앞선 것이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병력의 열세는 여전하니 주의를 기울여 싸울 필요가 있었다.
명나라는 요소요소에 견고한 성곽을 쌓았기에 일본의 군사들이 이들을 뚫고 나가는데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였다. 포격전은 기본이었고,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이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마치 늪에 빠진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천천히, 끈기있게 내려가던 일본군은 일전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사타케 요시즈미의 군세를 앞세워 카이펑에서 명나라 군세를 사정없이 무찔렀다. 아니, 후세 사람들이 본 카이펑 전투는 일본군이 명군을 '갈아버렸다'라고 망설임없이 표현할 정도였다.
카이펑에 이어서 타이위안에서도 일본군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명군의 인력은 점차 고갈되어갔다.
한편 명군이 차지했던 수마트라섬과 말레이 반도에서도 일본군의 공세가 잇따랐다. 여기에 동맹군인 프랑스가 합세하자 동남아시아의 명나라 영토는 속절없이 일본군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우창에서 사타케 군은 명나라군 9천명을 전멸시켰다. 하지만 3만 5천에 달하던 사타케 군은 2만 8천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예비 인력 또한 1/3로 줄어들었고, 줄어든 인력이 멈출 일은 없었다.
한편 쇼군은 전장에서 무슨 생각에선지 만주 문화를 수용하라는 명을 내렸다. 비록 이들의 비율이 규슈인들의 비율과 비슷했다고는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긴 했다. 아마 넘치는 외교력을 소모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명군은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그때마다 일본군이 귀신같이 덮쳐들어 명나라의 의도를 좌절시키기 일쑤였다.
명-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병사들이 중국 영토에서 사정없이 약탈하고 사람을 죽이고 겁간하고 방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했다. 쇼군은 이런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한 뒤, 정예병들에게 봉급을 지불하는 선택을 했다. 그러자 가뜩이나 부족한 예비병력의 상당수가 정부의 선택에 분노하여 탈영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더 이상의 전쟁을 속행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래도 쇼군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일본군의 병력이 명군의 병력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명군의 예비 인력 또한 일본군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비록 명나라의 용병대가 변수였지만, 계속해서 영토를 점령하면 용병대에게 지불할 돈은 틀림없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전쟁 5년차에 접어들자 전장은 완전히 개판이 되었다. 프랑스군은 동남아시아에서 광서와 운남성 일대를 쾌속 점령해갔고, 일본군은 숫제 강서성과 난징까지 밀고 들어왔다. 명군은 그 와중에도 일본 점령지를 되찾는데 열중하였다. 서로 바꿔먹기를 펼치려는 의도였을까?
결국 일본군은 주력 부대를 회군시켜 산동지역으로 치고 나가는 명군을 잡기로 했다.
허젠에서 일본군은 기병대의 대규모 희생을 대가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명군에게 치명타였다.
한편 계몽운동이 세계 전역에 널리 퍼지면서 혁명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제 세상은 기존의 절대주의 체제를 호락호락하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후이하오터에서 쇼군의 친위군이 명군을 상대로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예비 인력의 부족은 일본군에게 큰 골치거리를 안겨다주었다. 그놈의 점령지 인심이 무엇이기에 약탈을 허용하지 않았을까? 라는 한탄이 장군들 사이에 나올 정도였으니...
그래도 7년간에 걸쳐 전쟁이 끌리니 대략적으로 승패가 갈렸다. 명나라는 화북, 산동, 하남, 호광, 귀주, 절강 일대가 일본에게 점령당했으며, 광서와 호남 일보는 프랑스군에게 짓밟혔다. 이글을 구원할 군사는 어디에도 없었고, 이제 명나라의 성세는 허명이 되었다.
일본은 프랑스에게 도와준 대가로 땅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중국 땅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설치할 생각이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결국 일본은 프랑스에게 두둑한 돈을 주기로 했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땅을 얻어먹을 생각이었다.
결국 일본은 명을 상대로 요동, 요서, 하북, 산동 일부 및 수마트라 섬 접경지를 얻어내고 많은 돈을 얻었다. 하지만 일본은 가톨릭 국가였기에 천명을 얻어내지는 않았다. 이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주름잡았던 천명사상을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리고 쇼군은 거대한 성으로 여겨졌든 명을 무릎꿇린 대가로 천황의 치하를 받고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다. 이 전과를 계기로 쇼군은 기존의 관직에 더해 공가의 태정대신과 관백의 직위를 추가로 얻었고, 이를 조합하고 옛날 백제의 후예라는 사실을 드러내듯 백제왕, 어라하로 칭했다. 이제 어라하는 천황의 대리인이자 유사시 천황의 존재를 이을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쇼군 카츠라 타카우지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바로 조선의 완전병합을 위해 조선과의 조공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를 한 것이었다. 산동이나 하북 이남, 동남아시아의 영토를 차지할 가능성을 희생시키고 관철시킨 조건이었지만 조선과 이미 휴전협정이 맺어져서 직접적으로 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커졌다. 요즘 말로 삽질을 한 것이었다.
결국 쇼군은 자신의 선택 실수를 자책하며 호르친을 공격, 조선을 공세로 나오게 하는 잔머리를 굴렸다. 이제 명나라라는 울타리는 없어졌다. 오랫동안 백제와 그 조상의 옛 영토인 고구려, 부여, 발해, 그리고 신경쓰였던 몽골의 영토를 얻어낼 차례였다.
한편 일본에는 코코아 수입 열풍이 불었다. 쇼군은 국민들이 달달한 초콜릿을 먹고 전쟁에 대한 불만을 조금이나마 가셔주면 좋겠다고 판단, 수입을 장려했다.
조선군은 이제 일본군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호르친 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선의 전 영토를 점령했음에도 조선의 완전병합에는실패하였다. 그래도 북만주의 영토는 고스란히 가져가는데 성공하였다. 조선은 완벽하게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종사는 일본에 의해 끝난것이 아닌 북방의 곰인 러시아에게 의해 종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호르친 또한 완전히 일본에 합병되었다. 이제 일본은 동몽골과 흑룡강 남부 일대를 점거한 동아시아의 최대 국가로 우뚝 섰다.
하지만 알래스카 담로가 자신들만의 의회를 세우겠다고 정부에 요청하여 이를 승인받았다. 어라하는 이를 승인하면서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수세기동안 가꾸어온 담로가 독립을 한다면, 이는 일본의 국세에 큰 타격을 줄 것이었다. 그래서 어라하는 과감히 알래스카 담로의 대출을 대신 갚아주어 저들의 독립 열망을 ㄸ러어뜨렸다.
한편 그레이트 브리튼에서 선택적인 가축 번식으로 소와 양의 개선에 성공하였다. 일본은 얼른 이를 도입하여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한편 일본에서 교호 개혁을 실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라하는 깊은 고민 끝에 군대 개혁을 선택하였다. 이제 명나라 수군에게 치여 전통이 사라진 해군의 명맥을 잇고 육군 전통도 강화시켰다. 그리고 개혁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사기와 인력이 상승될 것이었다.
하지만 군제 개혁은 1년을 가지 못했다. 카츠라 타카우지가 1715년 세상을 뜬 것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그의 아들 히데노부의 나이가 14살이었던 것이었다. 1년만 더 살았더라면 부인의 섭정이 필요하지 않았으련만... 그래도 부인이 총기가 있고 섭정 기간이 짧은 것이 다행이었다.
카츠라 타카우지. 그는 코타로-테루히토의 뒤를 이어 일본을 융성시킨 명군이었고 대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용자이기도 했다. 비록 그는 가지만 그의 위명은 세상이 알아줄 것이었다.
어라하는 바뀌었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갔다. 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일본은 차 무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기존의 도자기 무역의 주도와 더불어 일본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비단과 종이 무역도 뺏어오면 좋겠지만, 아직 여의치는 않았다.
그해 12월 3일. 드디어 카츠라 히데노부가 성년식을 치르고 왕관을 썼다. 그는 교활한 외교의 재능과 준수한 군재를 지닌 자였다. 그는 새로운 쇼군이자 태정대신, 관백의 지위를 얻고 선대부터 정착된 의식을 시행, 2대 어라하의 칭호를 가졌다.
이제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주도적인 국가로 나섰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가 둘 있었다. 하나는 오이라트를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까지 슬금슬금 내려오는 러시아였고, 다른 하나는 란상을 밀어붙이고 동남아시아로 손을 뻗치는 포르투갈이었다. 새로운 어라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였다.
일단 카츠라 히데노부는 선조들이 그랬듯이 천황의 방계 귀족과 결혼하여 아이를 가졌다. 아이의 이름은 요시미츠라고 했다. 그는 선조들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좋은 능력을 가질 것이다.
어라하는 알래스카 담로의 예를 보아 이들이 나중에 독립하면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하여 담로가 혁명의 열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손을 쓰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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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결국 신의 능력을 지닌 장군을 소환하셨군요."
"이렇게 해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어서. 명군 무서웠엉."
"그래도 결국은 이겼잖아요? 고토도 회복하고. 조선 조공국 폐지 요구는 뻘짓으로 판병되었지만."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하는 법. 그리고 명나라 영토는 너무 넓어서 한번에 다 먹을 수는 없어. 시간을 두고 뜯어야지. 그리고 슬슬 서양놈들 중 족칠 놈과 칭구할 놈을 골라야 하는데..."
"뭐, 프랑스와는 동맹이고, 스페인과는 경쟁국이고, 남은 것은 포르투갈, 브리튼, 러시아인데, 선택 잘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강국이라지만 서양놈들과 전부 싸울 수는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육군 강국인 따-밍과도 싸워 이겼다고. 해군만 키우면 어지간한 놈들과는 맞고다이 가능함. 육군 질도 최상급인데. 너무 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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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팽년과박원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5.09 그냥 해서는 힘들어서 장군소환까지 해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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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931117 작성시간 19.05.09 박팽년과박원종 걍 최종보스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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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팽년과박원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5.09 931117 저거 꺾느라고 온갖 와리가리 다 했습니다. 그러고도 인력이 쌍방 오링나고 나서야 겨우 이겼던... 만약 명이 벵골때리는 삽질만 안했어도 이 판 터졌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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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931117 작성시간 19.05.09 박팽년과박원종 명이 보통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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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팽년과박원종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9.05.09 931117 그리고 다음편에는... 60분 이내로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