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전쟁에서 패했던 명나라는 이제 무너지고 있었다. 양주 일대에서 황제의 악정에 반항하다 쫓겨난 관리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어라하 카츠라 요시미츠에게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은 어라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어라하 카츠라 요시미츠는 다카우지-히데노부로 이어지는 선대의 명나라 정벌 업적을 다시 한 번 성취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명나라 관리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해방'시켜달라고 했으니, 명분도 지난 두 번의 원정보다 좋았다.
지난 두 번의 원정에서 명나라 수군에 의해 고전을 겪었던 점을 참작하여 전열함을 새로이 건조, 개수했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숫자와 사기에서 일본 수군은 명 수군을 압도하였다.
한편 세쓰 지방에서는 한 발명가가 신형 쟁기를 발명, 보급하였다. 그 덕에 세쓰 지역의 생산력이 증대되었고 그와 연계되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해양 이념 정립이 완료되었다. 그러자 새로운 정책들이 많이 개설되었다.
어라하는 해군사관학교를 설립하게 했다. 이는 일본의 약점들 중 하나인 해군 전통을 보강해주는 멋진 정책이었다. 그리고 외교 기술이 발전되면 해군 지휘관 기동력과 함선 내구성을 올려주는 정책을 더 선택 예정이었다.
의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정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이었다. 무언가를 지원해달라, 뇌물을 달라, 누구를 죽여주면 지원하겠다. 현지 연대를 칭찬해달라, 독자적인 위원회 설립을 허가해달라... 하나같이 국가를 약화시키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개발 비용을 낮추는 정책은 현재로서는 꼭 필요하였다.
한편 1년 가까이 공격했던 난징은 기어이 함락되었다. 어느덧 3번째 함락. 이제 명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의한 통치를 담담히 받아들일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한편 육군 유지비를 감소시키는 경제정책을 설립했다.
명나라는 이제 무기력하게 당했다. 지난 두 번의 전쟁과는 달리 일본이 내려와도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편 수원에 칼뱅파 개혁 교회가 설립되었다. 어라하는 이것을 우려했지만 종교 관용을 우선시한 국시를 어길 수는 없었다.
명나라 주력군은 그 와중에도 수마트라 공격에 여념이 었다. 그나마도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저지당해 스페인령 파가루융에 남아서 벌벌 떨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광저우 만에서 최후의 결전에 임했던 명나라 수군은 일본 수군에게 형편없이 패배하고 다시 항구에 틀어박혀야만 했다. 거기에 명나라의 전 국토가 일본에게 짓밟히고, 답이 없었다.
결국 명나라는 수마트라의 남은 영토, 황하 이북의 영토 중 대부분과 강소성 일대를 할양했다. 이제 명나라는 일본에게 때가 되면 두들겨맞는 안습한 국가로 전락했다. 15~17세기의 융성한 명나라의 자태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레이트 브리튼이 점유하고 있던 자바섬에 대한 명분을 조작하였다.
하지만 카츠라 요시미츠는 베이징에서 군을 사열하던 중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인 카츠라 카츠히토가 4대 어라하로 즉위하였다. 25세의 젊은 어라하는 이제 명나라를 넘어 서방세력으로부터 동남아시아와 북미를 쟁취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맏아들인 요시노리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공가의 한 집안에 양자로 보내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나도 평범했다. 행정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아버지를 닮지 않아 외교적인 재능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아직 난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본에게 이런 후계자는 곤란했다.
한편 일본 기병에 새로이 기병용 흉갑이 보급되었다. 이로써 개량된 아시아 기병대를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라하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프랑스와 일본의 왕실 결혼을 지원하였다.
한편 일본에 새로운 제독이 선출되었다. 오우치 요시히사. 이 제독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본 수군 제독들 중 가장 뛰어난 제독이었다.
어라하는 어떤 여인과 불륜을 저질러서 아들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그냥 고해성사를 하고 아이를 조용히 다른데서 키우기로 했다.
연이은 후계의 문제를 털어내기 위해 어라하 카츠라 카츠히토는 명나라에서 빼앗은 주를 새롭게 정식 주로 등록시켰다.
1758년은 일본에게 있어서 새로운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해였다. 행정적 진보, 생산 능력의 발달, 군사 기술의 혁신. 모든 것이 발달되었다.
한편 어라하의 간곡한 '설득'으로 의원들은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일본 국내 무역력을 증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의원들은 진짜 사람을 부글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놈들이었다.
어라하는 자바섬의 패권을 잡기 위해 과감하게 자바 섬을 공격하였다. 자바섬 지배는 오래전부터 바랬던 숙원이었으니.
자바섬에 있던 브리튼 육군은 압도적인 일본군의 군세에 꼼짝하지 못하고 전멸당했다. 9만에 이르는 압도적인 일본군 군세가 자바섬을 덮쳤다.
하지만 반대로 해군에서는 브리튼의 노련한 군세에 밀려버렸다. 물론 저 수군은 주력 군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선을 겸하던 선박들이 대거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뼈아팠다.
그래도 자바 지역은 차례차례 일본군에게 접수되었다. 특히 카왈리 요새의 함락은 브리튼에게 타격이 컸다.
자바 주변에 있던 브리튼의 섬들 또한 하나하나 일본에게 접수되었다.
일본의 번영은 군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도자기와 차 무역에 이어서 향신료 무역 또한 일본이 무역을 주도하였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비단과 종이 무역도 일본의 손에 들어올 것이었다.
계속된 승리는 일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국왕의 친정군이었는데도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케니스-벵쿨루 전투의 승리는 동남아시아에서 브리튼의 가용병력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제 동남아시아의 브리튼 식민지는 일본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게는 불행히도, 뒤늦게나마 브리튼의 원군인 오스트리아 수군이 당도했다. 이들군은 죄다 상선이었지만, 병력이 2배를 넘는지라 일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한편 브리튼의 사략선단이 하와이에서 일본 선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의 대형선들은 한 척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아메리카 쪽에서도 일본군이 루이지애나 담로군의 도움을 빌어 브리튼 육군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러는 한편 어라하는 황가 출신 미야케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다. 이번에 얻은 아들은 상당히 영명해보여 후계자로 인정했다. 카츠라 요시하루. 운명의 신이 변덕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는 5대 어라하로 즉위할 것이리라.
1763년은 산요도에 있어서 번영의 신호탄이 될 해이리라. 적절한 봄비가 내려 평년에 비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이 지역은 차 생산지였기에 더더욱 이득을 얻을 것이다.
원군으로 온 오스트리아군 기병도 없고 병력 자체가 부실했다. 잇시키 사토히토 장군은 증원된 군대를 단숨에 묵사발로 만들었다.
결국 일본은 브리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자바 섬 절반과 주변의 자잘한 지역을 먹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일본의 앞길을 가로막을만한 세력은 포르투갈, 그리고 극강의 전력을 가진 스페인 뿐이었다.
1764년 당시 열강 세력도. 일본과 스페인이 세계 1, 2위의 국력을 다투었고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와 식민지대국 포르투갈이 뒤를 이었다. 오스만과 러시아의 저력은 상당했으나 계몽주의 사상을 받지 못해서 허덕이고 있었고 브리튼과 오스트리아는 간신히 열강의 지위를 유지할 뿐이었다. 이제 세계는 일본이나 스페인, 둘 중 하나가 패권을 잡을 것이다.
어라하는 포르투갈에 첩보대를 보냈다. 다음 목표는 포르투갈이었다. 이들을 상대로 알래스카와 인도차이나 지역을 침공할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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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번 지구는 브리튼이 생각만큼 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지 않네."
"대신 스페인 해군이 강성하지."
"으으. 해군 교리 가야할까?"
"집어치워, 바보야. 걍 3단 전열함 100척을 뽑아서 한방러쉬나 가시게. 일본이 해상 바보도 아니고."
"그러면 마지막 이념은 뭐로 가야할까?"
"뭐... 그건 좀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