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수 각하. 쿤바르 III 식민지화 계획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새로 설립될 또다른 인류의 요람의 이름은 쿤바르 프라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뭐. 이는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되었든 현재로선, 유니티와 지구를 제외한 인류의 서식지는 모두 '식민지'에 불과하니까요.
행성에게 이름을 붙여줄 필요도, 그 이름을 정겹게 불러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쿤바르의 첫번째 행성이면 족합니다. 나중에 쿤바르 프라임이 인류 연방에서 내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이 주장은 다시 숙고되겠지만 말입니다."
"대원수 각하. 불과 한 하이퍼레인 떨어진 쿤바르 항성계에서 거주가능한 행성이 발견됨에 따라, 정부 내에서는 등잔 및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 이해 못하셨습니까? 국화 호의 개척자 중 소수 집단을 이루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사용하던 관용구입니다.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을 먼저 살피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멀리서 거주가능행성을 찾아봤자 직접적인 통제에 놓기도 어려우니, 가까운 곳에 요람 후보지가 있기를 빌어보잔 소리죠.
대원수 각하께서는 얼마 전 이와 같은 이유로 대원수님께 올라온 계획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셨고, 이에 따라 연방 정부는 새로운 과학선, CNS 순례자를 건조하고 새로운 과학자 토니 가브리엘을 고용했습니다. CNS 순례자는 데네브를 중심으로 네 하이퍼레인 안의 항성계를 탐사하며 새로운 거주가능 행성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빌 것입니다. 부디 이 우주가 인류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품어주었으면 좋겠군요."
오랫동안 연방 정부의 각 정부부처를 괴롭혀 오던 쿤바르 프라임 식민화 계획이 끝을 맞았다. 각 정부부처의 관료들은 축하를 기리며 회식을 하기 위해 일찍 퇴근하였고, 시드니 보클레르와 그녀의 보좌관만이 늦은 시간까지 남아 업무를 돌보고 있었다.
그녀의 보좌관이 말했다. 다음 보고서를 보니 쌓였던 피로가 날아가는 듯 활기가 되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이번 보고는 쿤바르 프라임에서 올라온 보고입니다. 또 하나의 국화 호는 쿤바르 프라임의 거대 삼각주 하구에 성공적으로 착륙하였으며, 이곳은 이상적인 착륙지일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새 행성의 첫 번째 도시터입니다. 개척선은 쿤바르 프라임의 행정 본부로 개조되었습니다. 언젠가 국화 호가 그랬듯 말입니다."
보고를 듣던 시드니 보클레르가 조심스레 감상을 밝혔다.
"인류 연방에게 있어 참으로 위대한 날이었네요. 오늘은."
보좌관이 잠시 침묵하였다가 말했다.
"내일 아침,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원수 각하께서도 이 위대한 밤을 누리셔야지요.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시간을 흐르고 흘러, 어느덧 시드니 보클레르가 취임한지 3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쿤바르 프라임에서는 두 달째 개척 작업이 한창이었다. 집무실에서 평화롭게 집무를 보던 시드니 보클레르 앞으로 그녀의 보좌관이 긴급 보고를 하기 위해 달려왔다.
"대원수 각하. 잊고 있던 우리의 첫 번째 과학선. CNS 순례자로부터의 연락입니다. CNS 순례자가 호에두스 성계에서 정체 불명의 외계 함선과 조우했습니다. 이 함선은 우리의 과학선처럼 금속 공학 기술로 이루어진 함선이 분명하며, 지난 번 그 자의식 과잉의 외계인 놈들처럼 우리 눈에 보이기도 전에 인류 표준어로 말을 걸어오는 기행은 벌이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인류 연방이 드디어 첫 번째로 우리와 비교적 비슷한 수준의 외계 지적 생명체를 조우하였다는 것이 해군 본부의 소견입니다. 이 정체불명의 대상을 연방 과학부에서는 찰리 보기라 임시로 명명하였습니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놀랐지만, 예상하던 일이었기에 동요하지는 않았다. 시드니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마련해두었던 프로토콜 그대로의 명령을 내렸다.
"오늘부터 국가 준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합니다. 지상군 본부와 해군 본부에 연락 넣으세요. 아직까지 따로 함대를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데 먼저 싸움을 거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니까요. 적어도 승산이 확실할 때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방 과학부와 각 대학원 임원을 소집하세요."
시드니 보클레르는 연방 정부 과학부와 각 대학원의 임원들을 모아놓은 회의에서, '찰리 보기'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인류 연방 정부와 해군 본부의 이름으로 국가 최우선 프로젝트로 연구할 것을 명령했다. 연방 과학부는 현 인류 연방의 연구 자원을 감안하였을 때 이러한 작업이 약 26개월이 소모될 것이며, 이전까지 연방 과학부와 각 대학원에서 진행하던 사회학 연구 프로젝트는 전부 유보될 것이라 보고하였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과학부의 보고를 받아듣고서도 프로젝트를 속행할 것을 지시했다.
외계의 위협이 가시에 들어옴에 따라, 시드니 보클레르는 국경 확장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러나 국경 개척에는 적지않은 행정적 부담감이 요구되었고, 이를 강행하기 위해서는 시드니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요구로 했다. 이는 쿤바르 항성계 개척 당시의 정치적 부담으로 증명된 바였다.
연방의 외계종 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와 시드니 본인의 '확장주의자'적 특기가 국경 개척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줄여주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았다. 때마침 연방 사회의 통합이 적정 수준으로 쌓였다는 문화부의 보고에 시드니 보클레르는 국경 개척에 수용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바로 다음 날부터 '별에 닿기를'이라는 연방 문화부에서 제작하는 선전용 광고로 구체화되었다.
국경 확장에 대한 시드니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듬에 따라, 시드니 보클레르는 도톤 항성계에 전초기지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도톤 항성계는 주변의 하이퍼레인이 모이는 요충지로, 만약 아직 밝혀지지 않는 외계종이 서쪽에서 인류 연방을 침략하더라도 도톤 항성계를 틀어막는다면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다.
"대원수 각하. 아메드 엘-바즈에서 이끄는 CNS 여행자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이쯤 되니 중요한 우주적 발견은 과학자 개인의 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번 발견으로 연방 정부 내에성의 아메드 엘-바즈의 정치적 발언력이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뒤늦게나마 해군 본부와 지상군 본부가 아메드 엘-바즈를 대상으로 하였던 경고가 떠오르는 군요. 뭐. 이미 늦었습니다. 과학 교과서에 이름이 적히기 충분한 수준의 발견을 그는 벌써 세 개째 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발견은 L-관문이라는 정체불명의 우주 건축물에 대한 것입니다. 이 관문은 일종의 아공간 건축물로, 두 지점간의 즉각적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은하의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즉각적으로 이동한다면 그거야 말로 하이퍼레인보다도 위대한 진정한 초광속 항행이겠군요.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대원수 각하. 지금 당장 인류 연방에게 필요한 내용은 없어보이니까요."
이번 외계종과의 통신 수립은 준비된 것이었던 만큼, 시드니 보클레르는 벌써부터 인류 연방을 대신하여 외계종 앞에 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인류 연방이 외계종의 언어를 번역한 것이 아닌 저들이 인류의 언어를 번역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유라이 카르텔이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귀를 의심했다. 혹시 저들이 인류의 언어를 잘못 번역한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시드니의 집무실은 인류 표준어의 어휘들에 관한 정보를 유라이에게 전달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비웃는 듯한 코웃음이었다.
"우리가 너희의 언어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을 것 같으냐? 카르텔이라는 말 때문인 것 같은데, 우린 제대로 번역했다. 우린 유라이 카르텔이다."
홀로그램 너머의 진균류 종족, 유라이는 말했다. 약간의 이야기를 더 나누곤 시드니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꺼지라는 말로 통신을 끝낸 시드니에게 그녀의 보좌간이 다가와 말했다.
"유라이들은 과학의 가치를 광적으로 숭배하고 있으며, 우리 인류 연방처럼 결속의 가치도 어느정도 따르는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들이 한 국가가 아닌, 기업을 대표하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니, 기업은 저들의 표현이고, 정확한 표현은 범죄집단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어쩌면 카르텔이라는 표현이 가장 맞겠습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유라이들은 갱단에 의해 전 세계가 복속되고 초공간 드라이브를 개발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체사레가 이 소식을 들으면 파종인류론을 어떻게 수정할까요. 아직 살아계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세계의 민족국가가 통합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하였는데, 갱단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다니요.
우주는 항상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보좌관이 말했다.
쿤바르 프라임의 개척 소식이 유니티에 전달됨에 따라, 유니티 사회는 개척에 대해 열망을 품은 듯 싶었다. 외행성 개척을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그리는 대중 매체가 얼마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이런 상황에 힘입어 개척 열망을 인류 연방의 다음 전통으로 구체화시켰다.
"이젠 좀 지겨울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만, 아메드 엘-바즈가 새로운 외계 함선을 조우하였다는 보고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유라이들과는 다르게 합금 함선이 아닌 우주 태생 생명체로 보입니다. 지금 당장 국가 최우선 프로젝트로 지정할 중요성은 없다는 연방 과학부의 소견입니다.
그의 완전무결한 커리어에 오점이 생기겠지만, 솔직히 아메드 엘-바즈도 하나 정도는 양보해야지요. 알베르토 데 실리오가 본인보다 먼저 우주로 나간 선배인데 말입니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업무에 파묻어 살고 있었다. 최근 유니티에 완공된 새로운 지구나 건물, 연방 과학부에서 성공리에 끝마친 새로운 과학 프로젝트, 유라이 카르텔에 대한 외교 전략 제안 등으로 항상 바빴다. 그러던 중 시드니 보클레르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견했다.
보고서는 인류 연방 지상군 본부에서 올린 것이었다. 보통 보고서를 올리지 않았던 지상군 본부여서 시드니의 흥미를 자극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더 있었다. 시드니 보클레르를 지지한 시드니와 친분이 있던 지상군 본부 장성들이 각자 자기의 이름으로 올린 친필 서류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녀의 보좌관이 보고를 시작했다.
"이건…… 꽤 흥미로운 보고군요. 쿤바르 프라임을 개척하는 일로 바쁠 지상군 본부에서 대원수님께 이런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보내올 줄은 몰랐습니다. 뭐. 지금 인류 연방에서 행정적 과부하에 걸리지 않은 부서가 해군 본부를 제외하면 없긴 합니다만.
내용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지상군 장성들이 유니티 시골 도시에서 거주하는 한 군인을 장군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대원수 각하의 취임을 맞아 새로 편성된 그 직책 말입니다. 장군은 지상군 장성과 달리 고위 관료임에도 직접 전선에 나가 싸워야하니 본인들의 기득권과는 큰 상관이 없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클로드 데버룩스를 장군으로 임명하길 원하고 있고, 유니티 행성 행정부는 그가 유니티에 남아 행성 방위 책임직을 맡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좀처럼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 지상군 본부의 요청이니 들어주시는 것도, 실질적 쓸모가 없을 것 같으니 승인하지 않으시는 것도 모두 대원수 각하의 재량입니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지상군 본부의 요청을 반려하고자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클로드 데버룩스를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클로드 데버룩스는 장군으로 임명된 뒤 유니티 지상군의 책임 장군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유니티의 행성 방위를 맡기고 싶다던 유니티 행성 행정부의 바람은 이뤄진 셈이었다. 클로드 데버룩스의 소속이 비록 유니티 행성 행정부가 아니라 인류 연방 중앙 정부가 되었지만.
"CNS 순례자와 토니 가브리엘이 이플로어 항성계에서 거주 가능한 행성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 둘입니다! 그리고 도톤 항성계에서도 지금 당장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거주 가능 행성이 존재하니, 당초 연방 천문학계의 예상대로 인류 연방이 위치한 은하의 중심부는 거주 가능한 행성이 다섯 개나 있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유라이 카르텔이라는 외계 세력이 서쪽에서 국경을 넓히고 있던 걸 생각하면 우리 유니티 인류는 정말 간신히 마지막 시간을 잡은 셈입니다. 우리가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늦은 것은 분명하군요.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만회해 나갈 수 있는 차이니까요."
그녀의 보좌관이 확신에 가득찬 어조로 말했다.
이플로어 항성계의 두 행성, 대륙형 행성과 해양형 행성에 대한 식민지화 계획이 발의되어 진행되는 동안 쿤바르 프라임을 인류가 성공적으로 개척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직 쿤바르 프라임에 제대로 된 행성 행정부를 수립하고 자치를 부여하는 등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쿤바르 프라임의 전역을 조사하고 당장 존재하는 위험을 제거했다는 것만으로 인류 연방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 인류 연방은 유니티 뿐만 아니라 쿤바르 프라임에서 생산하는 자원을 보태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분간은 그들이 사용하는 양이 생산하는 양보다 많을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인류가 성간 문명으로 발돋움하는 데 꼭 필요한 첫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연방의 지정학적 위치가 심장지대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은하의 중심이었으며, 거주 가능 행성은 넘쳐났다. 그러나 그것이 꼭 유리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쪽에는 유라이 카르텔이라는 인류 연방보다 아득히 강한 성간 문명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그보다도 훨씬 강한 고대의 몰락한 제국 라비스의 남겨진 자들이 있었다. 이제 인류 연방에게 남은 확장 지대는 동쪽밖에 없었다. 데네브 동쪽의 아크 항성계를 포함한 노른자 땅에만 깃발을 꽂는 행정 부담이 크지만 이익은 확실한 확장 방식으로 인류 연방의 국경은 전진하고 있었다.
시드니 보클레르의 보좌관이 말했다.
"대원수 각하. 대원수 각하의 교시를 바탕으로 연방 정부의 정치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연방 외교부에서 유라이 카르텔에 대한 외교 전략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대원수 각하께서 말씀하신 바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유라이 카르텔을 공격하여, 정복할 것입니다.
유라이 카르텔의 위치는 인류 연방의 심장 유니티에 지나치게 가깝습니다. 현재로서 유라이 카르텔은 인류 연방의 아랫배를 향해 예쁘게 겨뉘어 있는 비수와도 같습니다.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유라이들을 적대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유라이는 과학의 가치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몇몇 관료들은 유라이와 연구 협약을 맺어 연방의 부족한 과학력을 보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는 간단히 무시되었습니다. 그 주장의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유라이 카르텔이 범죄조직이라는 것입니다.
유라이 카르텔과 외교 관계를 개선하면 저들은 반드시 연방 내에 지사를 설립하여 경제 활동을 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범죄율의 상승으로 이어지겠죠. 우주로 나온 범죄조직과는 전략적 이유로 잠시 손을 잡을 지언정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연방의 국력이 현저히 부족하지만, 국력이 유라이 카르텔과 비교가 가능한 수준으로 상향되자마자 유라이 카르텔를 경쟁자로 선포하겠습니다. 인류에게 있어 유라이 카르텔은 반드시 밟고 올라가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날부로 인류 연방은 유라이 카르텔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이플로어의 두 행성에 대한 식민지화 계획도 끝에 다다랐다. 대륙형 행성에는 이플로어 프라임이라는 이름이, 해양형 행성에는 이플로어 세컨더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쿤바르 프라임 식민지화와 비교하여 두 배로 처리량은 많은 프로젝트였지만,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는 인류 연방의 관료들은 이를 무사히 처리하였다. 인류 연방 지상군 본부의 지휘 아래 인류는 이플로어의 두 행성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플로어의 두 행성도 인류 연방의 손아귀에 들어오자, 연방 중앙 정부는 이 새로운 행성들은 빠르게 개척할 것을 필요로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드니 보클레르는 식민지 개척에 대한 이상향을 정부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보좌관이 말했다.
"언젠가 지구의 신대륙이 개척의 꿈과 희망으로 물들었던 것처럼, 쿤바르와 이플로어의 행성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미래의 인류 연방은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할 지 궁금하군요. 어떤 대중매체가 나오고, 거기선 쿤바르 개척을 어떻게 묘사할까요. 아직은 너무나 먼 이야기 같습니다."
"대원수 각하. 새로운 보고입니다. 이제 이 우주는 너무나 기이해서 이젠 놀랍지도 않군요. 한창 개척 중인 쿤바르 프라임에서 차원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미래에 쿤바르 개척을 어떻게 묘사할 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최근에는 새 행성에 불시착한 개척단이 차원문에서 나온 괴물들을 죽이는 게임이 크게 흥행했다고 하던데, 그 행성의 이름이 뭔지는 알 필요도 없겠군요.
차원문은 가까이 가는 지적 생명체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제외하고 기록할만한 특기 사항은 없습니다. 그나마 존재하는 특기 사항으로는 차원문이 발생하며 쿤바르 프라임에서 약간의 대기 유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유출된 대기가 극소하여 쿤바르 프라임의 생태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차원문이 나타난 근처는 차원문 연구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제 저 안에서 차원문에 대해 연구할 인력들을 필요로 하겠군요. 쿤바르 프라임에 인구가 충분히 늘어난다면 기술공보다도 차원문 연구원 직업에 인력이 쏠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51구역에 들어가고 싶어했으니까요.
저 차원문 너머에서 뭐가 나올 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연방의 과학력이 개선된다면 반드시 연구해야할 프로젝트라는 것이 연방 과학부의 소견입니다."
인류 연방의 확장 방식은 유라이 카르텔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국경 확장과는 달랐다. 모든 항성계에 깃발을 꽂는다기 보단 꼭 필요한 항성계에만 전초기지를 세우고 나머지는 탐사 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외계종이 달려오고 있을 지 모른다는 우려 하에서 여력이 있을 때 최대한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끝내 인류 연방 곳곳에서 행정적 비효율성이 초래되기 시작했다.
시드니 보클레르의 보좌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원수 각하. 인류 연방의 행정적 효율성이 50%에 불과합니다. 두 서류를 올리면, 한 서류는 여러 관료들을 거치며 본래 처리되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늦게 처리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인류 연방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행정적 부담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연방 정부 관료들은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동쪽에 개척할 항성계가 많이 남아있었다. 저 노른자 땅의 일부를 외계종에 빼앗겨 추후에 인류 연방이 정복당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지 않은 이상, 지금 방식의 확장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시드니 보클레르는 무거운 고개를 움직였다.
시드니 보클레르의 집무실에는 이래적으로 지상군 본부와 해군 본부의 장성들이 모였다. 그들은 홀로그램 앞에 서서 CNS 선구자로부터 송신된 보고서를 무겁게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깬 건 시드니 보클레르였다.
"결국, 또 실패했군요. 읽어버린 우리의 족적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시드니 보클레르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드니 말대로, 이번 보고는 히아신스 호에 대한 보고였다. 인류 연방은 우주로 나간 후에 꾸준히 히아신스 호를 찾아왔지만, 이번은 두 번째 탐사 실패 보고서였다. 시드니 보클레르의 보좌관이 말했다.
"아직 실망은 이릅니다. 당초 히아신스의 초광속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 항성계는 세 개입니다. 이제 두 번째 항성계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마지막 항성계에서 히아신스 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만……."
"그게 유라이 카르텔의 영토 내에 있지. 그게 문제 아닌가."
클로드 데버룩스, 빠르게 지상군 본부의 핵심 인물이 된 그가 말했다. 집무실의 분위기가 빠르게 무거워졌다. 세 번째 항성계는 유라이 카르텔의 영토 안에 있었다. 집무실 안에서 논의가 일었다. 뒤늦게라도 유라이 카르텔과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 국경을 개방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였다.
"군인 분들 앞에서 말을 꺼내는 것이 실례가 된다는 걸 알지만, 감히 한 마디하겠습니다. 이미 수립한 외교 전략을 바꾸는 것은 상책이 아닐 뿐더러, 인류 연방의 '잠정적' 영토에 유라이들이 전초기지를 설치할 수 있어 우려됩니다."
유니티 섹터의 총독, 에리카 드레이어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이후로도 논의가 계속되었지만, 이후부터는 계속 평행성을 그을 뿐이었다. 결국 시드니 보클레르가 결론을 내렸다.
"유라이 카르텔과의 협력은 없습니다. 우리가 히아신스 호를 찾기 위해 유라이 카르텔의 영토 안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면, 정복자의 부츠를 신고 들어갈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드리겠습니다. 30년 내로 우리보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기술력도 아득한 수준의 저 제국을 완전히 복속시킵니다. 이견이 있으신 분은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시드니 보클레르의 말에 손을 들지 않았다. 이제 우주에 나온 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성간 문명이 결심하기엔 지나치게 낙관적인 목표였지만, 아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은 인류의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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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동영상을 돌려보아도 히아신스 호 퀘스트를 수락하는 장면은 찾지 못했습니다. 동영상을 찍기 전에 무심코 수락을 눌려버렸나 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