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장의 원제는 THE SCRUTABLE ORIENTALS 이고, 한국어 번역은 '속보이는 동양인' 입니다. 그러나, 황군의 스토리를 다루기 때문에 황군의 자랑스러럽고 멋진 행동으로 고쳤습니다.
여튼, 미추오 후치다 편대장이 진주만 상공에서 '도라 도라 도라'를 외쳤을때 전쟁의 신은 황군에게 미소 짓는듯 했습니다. 도조 히데키가 이끄는 황군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의 고무 농장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거대한 유전지대와 괌, 솔로몬 제도도 먹었죠. 중일전쟁을 벌였으니 중국도 봉쇄였죠. 5월에 미국 식민지인 필리핀이 항복합니다. 그래서 6개월만에 거진 1/10을 장악합니다. 역사상 가장 신속한 정복이죠.
황군은 정복한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원형의 털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하여 어떠한 공격도 격퇴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가 계속 이어지니 확장을 계속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호주로부터 불과 644 킬로미터 떨어진 뉴기니의 남동 끝단에 위치한 모르즈비 항을 공격하고, 다른 하나는 하와이로 가는 길목에 있는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것이었죠.
미드웨이는 두 부분으로 나뉘었습니다. 첫번째는 중앙 태평양을 통제할수 있는 환초를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진주만 공격을 피해 살아남은 미국 함대를 날려버리는 거였죠.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은 미국을 우습게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미친듯 능력을 발휘하기전에 처리해야 된다는 걸 알았죠. 여튼, 그의 계획은 미드웨이에서 다 쓸어버리면 미국인들에게 일본이 이길수 없는 상대라는 인식이 확산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대상을 상실한 전쟁을 포기하고 황군을 서태평양의 지배자로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944년 10월 10일 실제 뉴욕 타임즈발 기사입니다 - 니미츠 제독이 종이를 한장 들어 종군기자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줍니다. 강력한 연합군 함대가 한국 동남부에 위치한 부산항 입구에 정박하여 항구를 공격하고 있던 일부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적함 80여척 중 26척을 격침시키고 나머지는 도망쳤다. 이 괴멸적인 타격으로 인해 한국에 주둔한 일본 육군과 본국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니미츠 제독이 덧붙입니다. 수 일동안의 이 해군 작전은 1592년에 수행되었으며, 이를 이끈 이는 조선 제독인 이순신(the Korean Admiral Yi Sun-sin.) 이었다라고 말이죠.)
그러나 미국은 비밀무기가 있었죠. 진주만 해군 사령부 14층에 있는 길고 좁고 창문 없는 방이었습니다. 30명의 장교와 직원만 들어올수 있었습니다. 방엔 IBM의 계산기가 있었고, 처리하는 자료는 와이루페의 무선 감청소에서 공급되었습니다. 이 사무실은 전투정보 부대라고 불렸습니다. 네, 태평양 함대가 보유한 비밀 정보 조직이었죠.
조지프 존 로체포트 대령이 이 조직을 1941년 5월부터 지휘했습니다. 진주만 공습 이전엔 감청, 방향 탐지, 통신 분석 등의 일을 했습니다. 암호 해독을 하려고 했으나 주된 임무는 연합함대 사령관이 사용하는 암호나 행정, 인사, 기상 코드들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 인물인 코드브레이커는 로체포트 소령과 토머스 다이어 소령, 웨슬리 라이트였습니다.
진주만 공습 3일 후, 수기신호 체계 연구는 버리게 되고(워싱턴의 해군성아래의 OP-20-G가 맡게 되었습니다), 연합함대의 암호체계, 즉 JN25의 공격과 해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JN25 코드는 일본 해군 메시지의 절반이상을 차지 했으며, 루돌프 J. 파비안 소령이 이끄는 코레히도어 섬의 제 16 해군 특수그룹, 싱가포르의 영국 그룹, 그리고 OP-20-G가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JN25가 두부분으로 된 코드이며, 약 4만 5천개의 다섯자리 그룹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5만개의 다섯자리들이 각각 부가되는 체제라는 것도 말이죠. 여튼 여기에 또 부가가 되고, 미국과 일본의 적대행위가 시작되면서 통신량이 엄청나게 증가되었고, 전투정보부대는 모든 가능한 루트를 통해 온갖 인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처음에는 캘리포니아호의 수병들을 상대로 교육시켰더니 진주만 공급 첫 몇 분 사이에 대부분이 전사해버렸습니다. 다이먼은 OTZ를 외쳤습니다. 근데, 참 우연히도 음악하고 코드가 뭔가 맞았나 봅니다. 군악대 소속원 150명이 투입되었고, 대여섯명은 아주 뛰어난 암호 해독가였고, 50명 정도는 초짜, 그리고 나머지는 단순히 서기였습니다. 업무는 지하실에서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게속되었지만 사람은 부족했죠.
로체포트는 처음 석 달은 창고에서 살았습니다. 상냥한 성격을 가진 다이어는 1924년 대학을 졸업하고 암호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뉴 멕시코호의 보조 통신장교로 배속되면서 암호 작성을 시작했고, 그때 프리드먼(윌리엄 F. 프리드먼, 진주만 공습때 그분 맞습니다.)의 암호분석의 기초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31년 해군 전체의 암호분석 그룹을 총괄 지휘하는 자리에 올랐네요, 1932년 속도를 높이기 위해 IBM 기기를 들여옵니다. 그에 비해 육군은 1936년에야 IBM 기기를 설치하죠. 1937년 하와이에서 1년간 근무한 그에게 해군은 몇대의 IBM 기기를 갖고 구성한 조직의 확장과 운영 책임을 맡겼습니다. 여튼, 그렇게 다이어는 암호 분석분야에서 특별 무공 훈장에 장성자리까지 올랐습니다. 1955년 퇴역한후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교수를 했죠. 웨슬리 라이트는 수석 보좌관이었습니다. 그러나 1933년부터 시작했죠. 전쟁 내내 암호 분석을 하다 1957년 퇴역했습니다.
로체포트 그룹등이 JN25b를 추적하는 동안, 우리 황군은 JN25b 코드가 너무 길다고 느껴서 JN25c를 배포합니다. 근데, 아놔... 정리하기도 그렇고 물리적으로 뿌려야 하고... 그래서 5월 1일로 연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암호 분석가들은 시간을 좀 더 얻었죠. 5월 17일, 거진 완수한 무렵 일본군 전투기는 모르조비 항을 공습하고 있었고, 체스터 W. 니미츠 제독은 두대의 항공모함 렉싱턴과 요크타운을 발진시켜 이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정찰기를 보냈을때 항공모함 소호를 발견했고 10분만에 쓸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수송선 부대는 당황했고, 호주 침공은 망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다음 날 두대의 항공모함으로 이뤄진 일본 해군 본진을 발견하고 공격할줄은 몰랐습니다. 이 전투는 군함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항공기로만 싸운 최초의 전투였습니다. 한대는 항해불능, 한대는 활주로가 휘어버리고... 그렇지만 미군도 피해가 많았습니다. 렉싱턴은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버리고 요크타운도 피해를 엄청 입었습니다. 렉싱턴 호는 미 해군 스스로가 구축함의 어뢰로 침몰시켰죠. 여튼 황군에게는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산호세에서 전략적 승리를 가졌지만, 전술적으론 패했고 제일 중요한건 미드웨이때 이 2척이 못 나온다는 거였죠.
이 치열한 봄날, 암호분석가들은 12시간씩 번갈아가며 일했습니다. 전투정보부대는 주로 IBM 기계의 펀치카드에 의존해서 코드그룹의 의미를 알아갔습니다. 메시지가 입수되면 서기는 코드그룹을 IBM 카드에 열심히 구멍 뚫고, IBM 머신은 자동으로 덧셈과 뻴샘과 체크를 통해 동일한 나머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손길에 의해 상대적 덧셈 결과를 재구성하여 절대적 나열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이들을 엔사코드 메시지로부터 추출하고, 플라코드 그룹을 디코드 카드와 비교하여 프린터로 디코드 카드가 숨기고 있던 평문을 인쇄합니다. 또한 기계는 일부 코드 그룹이 가질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도 함께 인쇄했죠.
모든 암호 전문이 해독되는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감시되었습니다. 감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으며 절반은 암호해독가로 발전한 번역가들도 다 채우지 못했죠,
5월 5일 대본영은 해군 명령 18호를 하달합니다. "연합함대 총사령관은 육군과 협력하여 서부 알류산 열도의 전략적 지점과 미드웨이를 점령하라" 무선 통신이 미묘하게 그 속성을 바꿨습니다. 이미 200척이상이 이 임무를 하달 받았고, 많은 항모, 전함, 잠수함, 구축함, 수송선, 보급선들이 작전을 위해 미드웨이로 모여들었습니다. 연합함대 유레가 없는 대규모 기동이었죠. 여튼 전투 준비는 일단 전함들이 히로시마 만에 집결해 다섯개의 주요 공격부대로 나뉘어 정확하게 계산된 일정에 따라 4일동안 출격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방향, 속도, 통신은 워낙 복잡해서 무전이 꽉 찾고, 코드화된 메시지들이 야마토호의 사령부로부터 발송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걸 읽는건 황군만이 아니었죠
JN25c로 바꾸는건 1달 더 늦어졌습니다. 그 결전의 그 순간때문에 배포를 방해했고, 솔직히 황군은 자국의 코드를 교체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승리로 볼때 코드가 깨지지 않았고, 보안상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5월 초 JN25b의 세번째 단어 목록을 깨버렸습니다. 이제 일상적 암호의 90%가 강강중강약으로 노출되었죠. 만약 5월 1일에 JN25c로 교체했다면 연합군은 아마...
여튼, 일본 해군의 공격 준비 메시지 해독본이 니미츠 사무실로 넘어옵니다. 그리고 급박하게 항모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를 호출했죠. 그때까지 지미 둘리툴 특공대의 도쿄 깜짝 선물이후 산호세에 있었지만 말이죠. 그리고 요크타운은 수리가 끝나 출격대기중이었습니다. 이제 함대 정보부는 5월 15일 알류산 열도의 네덜란드 항구에 5월 30일에서 6월 10일 사이에 공습이 있을거라 경고했습니다. 근데 진짜 공격 목표는 어딜까요? 워싱턴의 해군 수석작전 창모인 어니스트 킹 제독은 같은 정보를 놓고 오하후라고 찍었습니다.
야마모토 제독은 기습공격의 절대적 이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 해군이 모든 요충지를 방어할수 없기 때문에 일본군의 움직임에 따라 반격할 시간과 장소를 정할 거라 생각했죠. 이러한 전략적 주도권에 더해서 11척의 전함, 5대의 항모, 16척의 순양함, 그리고 49대의 구축함이 있었죠. 그러나 니미츠에겐 3대의 항모와 8대의 순양함, 그리고 14척의 구축함 밖에 없었습니다.
5월 20일, 미드웨이 공격에 대한 자세한 작전 명령을 하달합니다. 6월 3일 알류산에 대한 가짜 공격으로 시작하고, 미드웨이는 당근 빌테고 그 6월 6일 미드웨이에 대한 공격을 단행합니다. 알류산에서 돌아오건, 미드웨이를 방어하기 위해 진주만에서 출격하든 황군의 전함과 중순양함이 다 쓸어버리고 하와이를 위협한다는 아주 황군의 이상이 담긴 명령이었죠.
그러나, IBM으로 85~90%의 메시지를 바로 해독해버리는 효율성은 답이 없었습니다. 서서히 연합함대의 명령들이 밝혀지고, 해독된 작전명령은 너무 길어 사령관의 책상 위를 완전히 덮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선 역시 의심스러웠죠. 날짜, 시간, 그리고 장소 말이죠. 날짜-시간 정보는 다중 알파벳으로 보이는 초암호화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번밖에 안보여 메시지의 본문에 주력했죠. 장소는 비교적 빨리 나왔습니다. 연합함대가 치헤(Chi-he) 체계라 불렀으며, 가타카나에 의한 해석상 착오를 방지해줬죠. 암호 분석가들은 이 지도를 부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몇 주 뒤, 코드명 AF가 미드웨이임을 알아챘습니다. 문맥에 비추어볼때 AF가 맞는것 같았습니다. 근데, 최고 장성들은 의심했고, 정확한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로체포트는 낚시를 제안했습니다. 미드웨이 기지에서 완전한 평문 메시지를 보내 일본군이 손쉽게 받아보게 하자고 했습니다. 기지에 이미 케이블이 깔려있는데 뭐... 그래서 미드웨이 기지의 두 통신병이 식수 저장고가 파손되었다는 보고를 평문으로 보내고 하와이가 이에 대답하는 식으로 말이죠. 암호분석가들은 기다렸고, AF가 미드웨이임을 알리는 암호 전문을 받았습니다.
5월 27일 수요일까지, 니미츠는 연합함대 전함의 함장보다 더 자세하게 미드웨이 공격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수한 정보는 너무 확실했습니다. 소스가 연합함대이었는데요... 자 이제 작전 개시일을 알아야 할 차례입니다. 암호해독가들은 열심히 굴렀습니다. 한편 지하실에선 모든 사항들이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전명령의 어떠한 빈칸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오후, 1929년 해사를 졸업한후 1934 ~ 1937년까지 일본어 언어 장교로 일했던 조지프 피네건 중령이 전혀 손대지 않은 내부 날짜-시간 암호문을 들고 날짜와 시간을 잡아왔다고 말해왔습니다.
라이트는 이미 12시간을 일하고 12시간을 쉬기 위해 집으로 갈려 했지만, 피네건과 함께 통신분석실의 빈 책상에 앉았습니다. 피네건은 이전에 사용된 암호로 작성된 세 개의 메시지를 보여줬습니다. 하나는 산호해 전투를 이끈 메시지, 하나는. 왜곡된 텍스트였죠. 라이트는 부하를 보내 다른 사례도 있는지 찾아보게 하고 피네건과 작업을 합니다. 한참이 흘러 심야에 라이트는 답을 찾았습니다. 그 날짜-시간 암호문이 독립 혼합-암호 알파벳을 가진 다중문자로 되어 있으며,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에서 평문 및 키 알파벳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날 5시 30분즈음엔 어느정도 완료되었습니다. 상당부분은 빈칸으로 남았지만, 이를 로체포트에게 보여줬습니다. 로체포트도 암호 해독가였기 때문에 이 완전치 못한걸 지적하고 라이트에게 윽박지르듯 말했죠 "난 이걸 전송할수 없네" "대령님이 할 수 없으시다면" 라이트는 확고히 말했습니다. "제가 직접 전송하겠습니다."
로체포트는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단지 자신의 해독에 대한 라이트의 확신을 시험해 본거였죠. 라이트도 알고 있었죠. "그래 자네가 직접 전송하게"
라이트는 이를 COPEK 채널로 다른 통신부대로 전송하고, 몇 시간 뒤 니미츠는 일본해군이 알류산을 6월 2일에, 그리고 미드웨이를 6월 3일에 칠거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니미츠는 진주만 해군 병기창에 존나 살벌하게 갈굼을 했습니다. 공격이 있는 주의 중반을 넘어설때,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진주만을 떠나 남서쪽으로 항해하고 있었고, 제독의 갈굼으로 요크타운은 하루뒤에 나가게 되었죠. 27일, 니미츠는 작전계획 29-42를 하달합니다. "적은 미드웨이를 칠것이다" 그리고 반격을 위한 처방도 내놨습니다. 그는 항모를 미드웨이 북동쪽 563km 지점의 암호명 '포인트 럭'이란 곳에 모이도록 했을것입니다. 야마모토는 깜짝 놀랄 것이었습니다. 미군이 오히려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습을 시도하려는 연합함대를 반대로 기습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명령이 시행되고, 6월 2일 포인트 럭에 집결했습니다. 6월 1일 시야가 새로 가려졌습니다. JN25c를 시작했지만, 8월에 갑자기 JN25d가 등장할때까지 c형에 대해 희미한 분석만 해냈을 뿐이었습니다. 4월에 진짜 바꿨다면 대체역사가 벌어졌겠죠. 그러나 전쟁의 신은 미국에게 2달을 벌어주었습니다.
계획에 따라 일본군은 알류산을 먼저 공격하기에 니미츠는 북태평양 함대의 순양함과 구축함을 파견하여 기만 공격을 물리치도록 했습니다. 다른 장교와 마찬가지로 사령관인 로버트 시어볼트 제독은 정보부대들이 기반하고 있는 정보를 '미리 뿌린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6월 3일 더치하버를 폭격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때 대처하지 못했죠. 같은 날 아침, 미드웨이를 떠난 한 미군 정찰기가 적을 발견했습니다. 주력함대는 다음날 6월 4일 아침까지 짙은 안개속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한편 미드웨이를 떠난 미군 폭격기와 항모를 떠난 일본군 폭격기가 동시에 서로의 목표물을 공격했습니다. 근데 어느쪽도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연합함대은 어떠한 미군 함선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계획에 따르면 없어야 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상공격을 위해 재무장할것을 지시했는데 13분 후에 적 함정을 발견한 나구모 쓰이치 제독은 폭탄을 교체하고, 또한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항공기들을 수리해야 했죠.
미군 항공기들이 공격을 개시한건 이때였습니다. 모든 항공기들이 갑판위에서 연료와 폭탄을 공급받고 있으며 엘리베이터와 갈고리를 모두 개방한 상태였죠. 제로센과 대공포가 반격했지만 한발도 맞추지 못했고 이 짧은 순간, 즉 6분이 2차 세계대전에서 황군을 망하게 했죠.
이제 황군에겐 망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류가 침몰한 다음날, 야마모토는 미드웨이 침공을 중단하고 회항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추가 진격 계획을 취소하고 방어 태세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전쟁 전 그가 고노예 왕자에게 했던 말이 불길하게 따라다닙니다. "만약 전쟁이 2년이나 3년간 계속된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고 확신 할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어마머아한 공업력만이 일본을 압도한건 아니었죠. 4척의 항모 손실을 어떻게 회복한답니까.
여튼 그렇게 전투정보 부대의 암호분석가들은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놓았습니다. 함선과 수많은 군인의 운명을 결정했고,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또한 떠오르는 태양을 지는 해로 바꿨죠.
미드웨이 전투가 이뤄지고, 교대 근무가 하루 두번에서 세번으로 완화됩니다. 그리고 조직은 태평양 함대 무전 사령부(FRUPAC)이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FRUPAC의 성장은 미국 암호분석 기관 모두의 성장을 반영합니다. OP-20-G 역시 1942년 초에 개편되었죠. 미 육군조직은 30배로 늘렸습니다. 양적성장도 엄청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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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_Arondite_ 작성시간 21.10.28 에...중요한 건 아니지만, 미국식으로 읽은 로체포트보다는 프랑스식으로 읽은 로슈포르가 좀더 익숙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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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책읽는달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10.28 미국인이니... 비슷한 예로는 밴더그래프 정전 발전기(지금은 심심풀이로 과학관에 놔두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입자 가속기로 쓰이는 물건입니다. 최고로 거대한 놈이 미쿡 에너지부가 관리하는 뉴욕주 BNL,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에 있네요. 금 원자핵까지 가속시켜버릴수 있는 그런 놈입니다.)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풀 네임은 Robert Jemison Van de Graaff 인데, 이 사람도 네덜란드계라... 반 디 그라프가 아닌 밴더그래프로 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