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천안문 광장은 조용합니다 - 05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시간24.02.13| 조회수0| 댓글 1806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 돈이 곧 진리 작성시간24.02.19 dear0904 전 정확히 1890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4.02.19 돈이 곧 진리 도대체 뭔 내용이 나왔길래?하며 호기심만 커지는 댓글수들이군요
  •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4.02.19 류웨이는 장제스와의 대담 후 총참모장 이임 준비를 마치고, 정식으로 예편원을 제출하여 퇴역했습니다. 예편 이후 플랜은 그닥 없던 류웨이는 어차피 고향에도 반겨 줄 만한 이 없고 하여 적당히 수도에 안전 가옥을 꾸려 살기로 했지요. 수도에서 적당한 필명으로 글이나 쓰면서 지내면 딱 좋겠다 싶었고...

    문제는, 새 총통으로 라이징썬이 등극 한 이후였습니다. 물론, 부총통으로 류웨이를 끌고가서가 아니라... 재정 건전성을 위해, 군인과 공무원의 연금과 연봉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것입니다. 류웨이가 봤을때는 절대 그러지 않을 인물이었는데, 누가 뒤라도 봐줬나봅니다...

    아무튼, 갑자기 수입이 3/4로 줄어든 류웨이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참았습니다. 총통이 했던 말을 기억 하면서. 수입이 줄었다고 안온한 삶이 박살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참는다고 일이 안 터지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4.02.19 제 3진영임을 부각하기 위한 약속 대련. 미국과의 소규모 무역 분쟁이나, 소련과의 국지적 국경 분쟁등이 그러한 약속 대련의 일환으로 이뤄졌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약속 대련이 꼬이거나... 만에하나 사고라도 난다면, 수습에 필요한 노력은 매우 커지게 마련이었고, 그런 사고는 "하필" 소련쪽과의 일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우수리강에서의 대치가 급작스러운 혼선으로 인해 일이 크게 비화되었고, 권력을 잃을 수 없는 지도자 브레즈네프의 결정으로 극동에 사단이 추가 진주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총통은 바로 친소파 군인인 류웨이를 끌고 오기로 결정 했습니다. 류웨이는 물론 반발했지만, 제일 명망 있는 군인이 누구냐는 말에 입을 닫고 따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명예 원수를 받아들여 소련과의 일을 해결 하고 다시 쉬려고 했지만, 일선에 다시 끌려온 사람이 그렇게 쉽게 도망 칠수 있을리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괴뢰 정권 수립, 태국의 군사적 도발, 조선에서의 노사 분규,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독자 노선 등등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 조정에는 꼭 류웨이가 동행했습니다. 안 그러면 안온한 삶이고 뭐고 다 부셔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것 마냥 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4.02.19 dear0904 그런 날들이 약 5년간 지속 된 이후... 또 새 총통 선거가 이뤄질 즈음, 류웨이는 같이 사직을 청했고, 그것은 받아들여 졌습니다. 만, 국민대회당에서, 농공 민주당 후보 장보쥔이 당선됨이 선언 되려는 때, 살아남았던 CC파 잔당들과 그에 찬동한 극우파 군인들이 쿠데타를 선언하고 국민 대회당을 점거해버리자, 그는 민국의 대의를 저버리려는 그들을 용납 할 수 없었고, 빠르게 본인의 연락이 닿는 지휘관들에게 연락해 그들을 포위하여 제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극우파의 쿠데타는 실패하였고, 그때 난진톈의 어설픈 단죄로 살아남았던 자들 또한 해결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류웨이는 장보쥔 정권 아래에서도 명망있는 명예 원수직을 유지하며 열심히 일하게 된 것입니다... 15년 이른 은퇴를 말한 그였지만, 결국 정년보다도 더 일하게 생겼군요... 아! 인생이란...?
  • 작성자 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2.19 마지막화 올라왔습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