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제로부터 시작하는 프랑스 혁명 - 캐릭터 시트]
1.
- 이름: 잔 펠리시 드술리(Jeanne Félicie d'Sully)
- 플레이어: 렌지파일
- 성별: 여성
- 생년월일: 1786년 1월 6일
- 모국어: 폴란드어
- 구사가능언어: 프랑스어, 라틴어
- 능력치 :
지휘(3)/조직(2)/운영(3) ; 논변(1)/저술(2)/고찰(2) ; 호신(4)/의지(2)/선전(3) ; 경영(0)/위조(0)/공작(4)
- 트레잇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공식적으로 승인받았고,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대상이 프랑스 국민 이외인 행위에 한하여, 모든 기술 계열 굴림에 +2.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제1부수상
- 정파 : 사회노농당(전위파)
- 배경 :
폴란드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잔은 열렬한 입헌주의자였던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입헌 운동이 잔이 어렸을 때 최후의 일격을 맞고 처참히 무너진 뒤, 잔은 부모님을 따라 프랑스의 툴롱으로 망명하여 일찍이 혁명사상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잔은 공부보다는 깡패처럼 행패를 부리고 다니길 좋아하였고, 혁명이란 것 자체에도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툴롱을 '해방'한 어떤 젊은 포병장교에게 잔의 아버지 자크가 비밀리에 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 잔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못했죠.
파리로 온 가족이 이사한 뒤,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직후 자크가 '공화파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잔의 가족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주요 '돈줄' 중 한 명이었던 자크의 산업은 어머니 이자벨라가 넘겨받았고, 이상하게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잔은 고민 끝에 신분과 나이를 숨기고 프랑스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데에도 재능이 없는 것 같았던 잔은 시대에 맞지 않게도 '전쟁'과 '모략'에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2차 대불동맹 전쟁을 거치며 잔은 고속으로 승진했고, '통령'이 된 나폴레옹과 안면이 있는데다 유착관계까지 있던 잔의 경력은 그 정체를 의심한 이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빼면 순탄했습니다. 아미앵 조약이 파기되는 시점에 잔은 이미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대육군의 일부였습니다. 3차 대불동맹 전쟁을 거치며 잔은 전장에서는 더욱 활약했고,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는 오랜 혈투 끝에 잘도 숨겨왔던 성별이 공개되는 대신 '아우스터리츠의 마녀'라는 기이한 별명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대육군에서 잔이 유일한 여군 장교인 것은 아니었고, 전쟁 중에 적에게 악명까지 떨친 장교를 굳이 내쫓을 필요가 없다는 상부의 판단과 누군가의 로비로 잔은 군대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로 진공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아버지의 친구였던 포니아토프스키 원수를 영입하자, 이제는 그래도 머리가 굵어진 잔은 꽤나 기뻐했습니다.
스페인 침공 이후 나폴레옹의 판단이 이상해지는 사이, 파리의 고향집으로 돌아간 잔은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잔을 이상하게 멀리하던 어머니 이자벨라는 잔이 군대에 남도록 로비를 한 것이 자신이며, 사실 자크를 죽인 것은 공화파도, 왕당파도 아닌 '나폴레옹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어쩌면 원수를 도와 전쟁에서 싸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충격받은 잔은 당장이라도 전역을 하려 했습니다. 몇가지 생각이 잔의 머리를 스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전쟁과 혁명에 휩싸인 프랑스에서 자크와 이자벨라의 자본과 신분은 충분한 방패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전쟁과 혁명의 영웅이 된다면 그 무엇보다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을 터였습니다.
가문의 사업을 동생에게 넘긴 뒤 군대로 돌아온 잔은 이때부터 가혹한 군기와 포로 처형 등을 명령하며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잔은 비밀리에 나폴레옹이 몰락할 때, 나폴레옹의 빈 자리를 채울 강력할 권위, 그러면서도 나폴레옹처럼 개인의 독단이나 제정 같은 구시대적 악습을 이용하지 않는 무언가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나폴레옹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개인숭배가 생겼던 로베스피에르와, 로베스피에르가 그렇게도 강조하던 로마 공화국의 역사를 접하며 잔은 급진적인 공화주의자가 되었지만, 드메스트르를 비롯한 반동주의자들의 책을 읽으며 잔은 '반동들과 총력으로 맞서는 엘리트 혁명가들이 이끄는 독재권력'을 꿈꾸며 엇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814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쫓겨난 뒤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반부르봉 운동을 펼치던 잔은 체포되기 직전 옛 자코뱅들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몇 안되는 부하를 잃고 간신히 살아나온 것을 '구출'이라 부를 수 있다면요.
2.
- 이름 : 자크 카르노(Jacques Carnot)
- 플레이어 : 로콘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74년 5월 2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이탈리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 능력치 :
지휘(4)/조직(2)/운영(2) ; 논변(3)/저술(1)/고찰(3) ; 호신(3)/의지(3)/선전(4) ; 경영(0)/위조(0)/공작(0)
- 트레잇 :
[자코뱅 인터내셔널] 프랑스 국경 바깥에서 프랑스 공화국 국적자가 아닌 이를 대상으로 하는 의지/선전 판정에 +2.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급진당 파리시당위원장 겸 파리 시장
- 정파 : 급진당(방돔파)
- 배경 :
니에브르주 데시즈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크는 귀족에게 토지를 빼앗긴 부모와 함께 파리로 떠나 유년기를 파리의 빈민가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이후 옆집에 살던 소꿉친구 마르셀이 귀족들의 재산을 '재분배'하는 것에 영감을 얻은 자크는 무기를 있는대로 챙겨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농지를 빼앗은 귀족을 친절하게 '설득'해서 토지를 포함한 그 귀족의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재분배'했습니다.
그 후 자크는 혁명과는 연을 끊고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면서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같은 고향 출신인 생쥐스트와 만나 그의 급진적인 사상에 감화되면서 혁명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자크는 다시 한번 혁명가가 되어서 국민위병과 자코뱅에 가담했고 생쥐스트의 오른팔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생쥐스트를 비롯한 자코뱅 동지들이 쓸려나가자 자크는 살기 위해 군에 입대해서 전선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후 자크는 자신의 혁명적 사상을 가슴에 묻어둔채 속으로는 독재자 보나파르트를 경멸하면서도 살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보나파르트를 따라서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싸웠습니다. 그렇게 수십년간 싸우고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살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보나파르트는 몰락해 엘바 섬으로 쫓겨나 있었고, 자신은 제1척탄병연대의 베테랑 장교가 되어있었습니다.
자크는 이젠 자신의 자코뱅 경력때문에 목숨이 위협받을 일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군에서 퇴역해 파리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그게 잘 안되던 와중에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푸셰였습니다. 푸셰는 국민위병에 다시 한번 가담해 튈르리 궁 습격을 지휘해달라고 제안했고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했던 자크는 국민위병에 다시 한번 가담해 국민위병의 튈르리 궁 습격을 현장에서 지휘하면서 루이 18세를 직접 체포했습니다.
그 후 자크는 국민위병의 지휘관 노릇을 하다가 프랑크푸르트 회의에 프랑스 대표단 경호대의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 친구 마르셀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르셀은 자크에게 제롬과 바레르의 매국행위를 알려주면서 자신이 프랑스와 공화국을 위해서 희생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채 자크의 눈앞에서 “프랑스… 만세.. 공화국… 만세…”라고 외치면서 죽었고 이 광경은 자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자크는 마르셀의 유지를 이어 다시 한번 혁명가가 되었고 즉시 프랑크푸르트를 탈출해 파리로 돌아와 국민위병을 지휘해 공화혁명에 가담했습니다. 그 후 자크는 '마르셀주의자'가 되어 급진적인 애국주의-공화주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누진세제, 인민대중 권력 강화, 산업 국유화, 그리고 혁명 전파 등 그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원대한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혁명가들이 이끄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하며, 그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3.
- 이름 : 조제프/시몽 아시에르(Joseph/Simon Acier)
- 플레이어 : dear0904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74년 8월 8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라틴어, 독일어, 영어
- 능력치 :
지휘(0)/조직(3)/운영(4) ; 논변(4)/저술(1)/고찰(4) ; 호신(1)/의지(4)/선전(0) ; 경영(3)/위조(0)/공작(0)
- 트레잇 :
[공화국의 피닉스] 자신이 속한 정파 이외의 프랑스 공화국 국적자를 상대로 한, 기만을 포함한 모든 설득행위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주러시아제국대사
- 정파 : 공화인민당
- 배경 :
시몽 아시에르는 수도원의 고아 출신으로, 누구와는 다르게 평범하게 신학교를 다니고 졸업하여 혁명 정부의 관료로 임관 하였습니다.
그가 혁명정부의 관료로 일하던 시절은 참으로 "호시절" 이었습니다. 끊임 없는 전쟁, 쉴 틈 없는 업무, 매일 텅텅 빈 국고, 매일 같이 날라오는 항의 서한까지. 그나마 다행인것은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렝고 전투 이후 그 친구가 나폴레옹을 따라다니게 되고 업무는 나날이 늘어가기만 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퇴위? 친구는 갑자기 도망을 다닌다는군요.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분명히 돌아올 것이고, 친구또한 그 옆에 붙어서 같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친구는 나폴레옹이 돌아오고 변했습니다. 술 마시고 나누던 이야기로는 방데에서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는 방데에서 돌아온 이후 평화 협상에 최선임 실무자가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시몽은 조제프가 어째서 그 자리에서 죽었는지 진상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친구가 죽었다는 이유로 친구가 말한 이상, 본인도 바라던 그 이상이 땅에 묻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3년간 지속되며 이 땅을 피폐하게 했던 전쟁을 멈추고, 진정으로 책임있는 민주정부를 수호하며 지방의 자치를 추구한다는 이상을 시몽은 지켜내려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친구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이 판에 투신하려 합니다. 현실주의자였던 그와 달리 이상을 그리는 시몽. 아니, 조제프. 그는 이 판에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그려낼 수 있을까요?
4.
- 이름 : 샤를루이 에마뉘엘 모리스 피네(Charles-Louis Emmanuel Maurice Pinay)
- 플레이어 : 돈이 곧 진리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80년 4월 1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 광동어(중급), 중국 관화(중급), 오어(초급)
- 능력치 :
지휘(0)/조직(2)/운영(0) ; 논변(3)/저술(4)/고찰(4) ; 호신(1)/의지(2)/선전(3) ; 경영(0)/위조(3)/공작(1)
- 트레잇 :
[하우스 오브 카드] 명시적으로 해당 의견을 지지하는 이를 1명 이상 이미 만든 경우에 한해, 말과 글로써 하는 모든 논리적 설득행위에 +2.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주스페인왕국대사
- 정파 : 무소속
- 배경 :
샤를-루이 피네는 파리에서 한 변호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피네의 아버지는 변호사 중에서도 특히 정치범 변호를 도맏아 했기에 법조계에서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범의 변호를 주로 하고 여러 가지 사상에 해박했기에 그의 집에는 온갖 혁명가, 사상가들이 찾아와 담소를 나누곤 했죠. 아버지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던 피네가 반제정 공화주의자가 되는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혁명이 좋았느냐? 그건 아닙니다. 혁명 이후의 혼란기를 해쳐나가기 위한 초당적 협력이 아닌 국민공회 내에서 서로 헐뜯으며 싸워대기만 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두둔한건 아니었습니다. 살얼음판 걷는 정국 속에서 지내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요. 지롱드파가 축출당하고, 로베스피에르가 공포를 남용하다 처형당하고,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에, 잔존 자코뱅의 플로레알 봉기에, 무능한 총재정부에...
온갖 혼란상을 파리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피네는 튼튼한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선 중앙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을 이용해 시민을 보호해야 하고, 그걸 위해 시민은 사회안정을 위해서 자신의 기본권과 자유가 정부권력에 의해 일정부분 제약당하는 것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방어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발전을 위해선 프랑스의 각 계급이 서로에 대한 투쟁을 추구하는게 아닌 협력하여 서로의 차이점과 위치를 존중해야 하며, 그동안의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위해 대외팽창을 자제하고 군대에 사용할 돈을 경제개발에 투자하여 민생을 증진시켜야 하니. 이를 위해선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1인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라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전쟁영웅 나폴레옹 장군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얼마 안되어 황제가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령을 내렸다는 발표를 듣고 위협을 느낀 피네는 바로 파리를 빠져나와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제, 황제가 몰락하고 다시 고향 땅을 밟은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정계에 입문하였습니다. 자신의 사상, 그리고 그 사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권력을 얻기 위해 말입니다. 정의요? 내 권력이 정의입니다, 양심? 내가 양심적인 사람이라 이 한몸 바쳐 나라를 이끌겠다는거 아닙니까? 나를 따르든지, 아님 내 앞에서 비키십시오. 이도저도 아니라고요? 그럼 집에 들어가 얌전히 빵이나 축내십시오.
아니면 내가 당신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테니까.
—-
저장소.
1.
- 이름 : 팡탈레옹 남작 조제프(Joseph, Baron Pantaléon)
- 플레이어 : dear0904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74년 2월 11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라틴어, 독일어
- 능력치 :
지휘(0)/조직(4)/운영(4) ; 논변(0)/저술(0)/고찰(3) ; 호신(2)/의지(3)/선전(0) ; 경영(3)/위조(0)/공작(0)
- 트레잇 :
[공화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거짓말이 아니며, 자신의 진심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의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지 및 선전 행위에 +2.
- 잔여 경험치 :
통솔(1) / 지식(2) / 감각(1) / 기술(0)
- 최종 직위 : 원로원 의원, 외무부 수석참사
- 배경 :
그는 수도원에 버려져 자랄 동안 제 나이 또래에선 개중 똑똑한 머리를 써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 두각을 보여 수도원장이 수도원과 연계된 신학교로 입학할 나잇대가 된 사람들을 소개 할때, 그 또한 신학교에 입학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신학교에 입학해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시국은 매우 처참했습니다. 유년기와 비슷하게 대장 노릇을 하며 다닌다는 것은, "쓸모 없는 정보" 를 얻기도 매우 좋다는 것을 의미 했습니다. 왕의 위신을 위해 쓸모 없는 전쟁을 벌이는건 그렇다 치고, 분명 종전은 이뤄졌다고 하는데... 어째 살기는 더 팍팍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고학생으로 사는 팡탈레옹이 느끼기에도 그랬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신학교를 꾸역꾸역 다니던 그는 졸업 하기 몇년 전, 신부 자크 루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고학생이었고, 고생하는 "인민" 에게 "인민을 위한 정치" 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자의 말은 단비와 같았지요. 그렇게 그는, 신학교에서 졸업은 하고, 성인이 되자 마자 자크 루 신부와 함께 그 사상의 물결에 힘을 실으려 했으나... 그런 극단적 사상의 결과, 신부는 체포 후 성인이 되기 하루 전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참된 사상을 이끌던 지도자가 죽었다는 사실에 신에 대해 격분했습니다. 신이 진실로 있다면, 이럴수는 없으니까요. 더 문제가 있다면... 혁명 정부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수도" 에서 "식량 부족" 과 "물가 폭등" 이 번연히 일어나는 정부가 진실로 유능한 정부가 맞습니까? 이건 왕과 귀족만 없다 뿐이지... 실상은 부르주아들이 그 자리에 있는것과 다른게 하나 없잖습니까...!
그렇게 그는,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주어져야 한다." 는 지론과 함께, "모든 부도 인민에게 공유 되어야 한다." 는 지론을 같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론을 펴던 자크 루 신부가 죽었다는 현실은 쓰디 쓴 맛이 났고 이에 그나마 대열을 같이 할 사람들 또한, 반동으로 쓸려 나가 총재 정부가 구성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살아야 했습니다. 분명 참극으로 끝날 것이 뻔했던 플로레알 자코뱅 대반란에 참여하는 대신, 그는 (정부의 방향은 싫지만) 있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자신의 머리로 행정 관료로 들어가는데에 성공 했습니다. 문제는... 정부간 극심한 갈등과 난맥상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사태를 막겠다고 분점 시킨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 분립은 관료들의 과부하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고, 그또한 갈갈 갈려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갈려나가며 그의 이상이 이뤄질 날을 언젠가 바라며 악으로 버틸때, 이 정부의 난맥을 끝내 줄 브뤼메르 쿠데타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신 헌법은 팡탈레옹이 보기에 굉장히 그럴듯 해보이긴 했습니다. 최소한... 선거권 자체는 계속 개판이 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헌법에 비해선 이게 더 권력이 인민에게 있어"보이긴" 했으니까요. 그... 1인의 절대자만 아니라면.
그래도 그는 독재자 나폴레옹의 정부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그를 제거 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자유, 평등, 박애를 가진 시민들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그의 이상을 꽃 피울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요. 문제가 있다면, 독재자 밑에서 일하면서, 이상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것은, 수많은 변덕을 참는것과 동시에, 수많은 음모의 손을 거드는 것 또한 참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조제프는 보나파르티스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제한적 혁명무력을 긍정하는 에베르주의자도 아니었기에 그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과 이상 사이의 모순을 타협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가 제일 고민했던 시기는, 마렝고 전투가 벌어진 시기였을때 였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 정보를 얻을 루트가 있다고 한들... 그게 현지에서 보는것보단 정확 할 리는 없고, 마렝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했다는 헛 소문이 수도에 퍼져 나갈때 자코뱅당이 쿠데타를 조직하고 있다는 음모는 그가 끼어들기에 매우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런 음모에는 손을 대지도 않고, 나폴레옹이 이 전투에서"는" 망하지 않으리라는데에 걸며 경거망동을 삼갔습니다. 그렇게 중간 관리자로써 나폴레옹의 어떤 신뢰를 받게 된 조제프는, 그의 몇몇 원정에 따라다니는 행정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몰락할때까지 그가 이끄는 부대의 행정관으로 임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몰락했을때였죠. 러시아 원정때부터 쎄함을 느꼈지만, 이 독재자가 몰락 한다면 결국 프랑스에 "왕" 이 다시 돌아올 것임을 직감했던 조제프는 출구 전략을 꾀할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나폴레옹이 몰락 한 이후, 나폴레옹의 부역자로 찍혀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도망자로 살던 중, 그 독재자. 아니, 공화국의 "칼" 이 엘바섬을 탈출 했다고 하는군요. 이번에는 "칼" 이 국가를 통제하는것이 아닌, "인민"이 국가를 통제 할 수 있게 이끌 것입니다. 만일 "칼"이 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2.
- 이름 : 프랑수아 마르셀(François Marcel)
- 플레이어 : 로콘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74년 5월 2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영어, 이탈리아어(약간)
- 능력치 :
지휘(4)/조직(0)/운영(0) ; 논변(2)/저술(1)/고찰(3) ; 호신(3)/의지(4)/선전(2) ; 경영(0)/위조(0)/공작(3)
- 트레잇 :
[혁명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 프랑스 국적의 왕당파를 대상으로 하는 감각 계열 행동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최종 직위 : 급진당 서기 겸 국민위병 사령부 집행위원
- 배경 :
프랑수아는 파리 빈민촌에서 태어난 고아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구걸과 도둑질 등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 참가한 군중속에 섞여서 세이버와 권총을 공짜로 얻은 프랑수아는 곧장 파리를 돌아다니며 귀족과 성직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프랑수아에게 '재분배'하여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친절히' 설득했습니다.
프랑수아의 '친절한' 설득에 감명받은 귀족과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재분배'해준 돈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자수성가한 부르주아가 되었고 그런 그에게 접근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자코뱅이였습니다. 자코뱅은 프랑수아를 혁명적 부르주아라 칭찬해주면서 혁명과 공화국만이 프랑수아의 '재분배'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면서 자신들을 후원할 것을 요청했고 요청을 받아들여 자코뱅과 함께하게 된 프랑수아는 자코뱅에게 혁명적 부르주아로 칭송받았으니 이때가 프랑수아의 전성기였습니다.
자코뱅의 설득은 맞았습니다. 테르미도르 반동과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자코뱅이 몰락한 뒤 나폴레옹이 자신에게 '재분배' 당한 뒤 망명한 귀족들을 사면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혁명적 부르주아가 아닌 강도짓으로 돈 번 놈이라는 '음해'가 나오기 시작하자 프랑수아는 공포에 질려서 미국으로 도망쳤습니다.
미국에서 옛 산악파 자코뱅 출신 망명객들과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낸 프랑수아는 단순한 자코뱅 후원자에서 진정한 자코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인민을 구원하기 위해 혁명정신이 투철한 직업적 혁명가가 공화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로베스피에르주의자 쥘리앵과 바레르의 주장에 동감했죠. 그러나 몽포르 후작 등 자신의 동지들이 조용히 숨어 가능성이나 검토하고 있을 때, 프랑수아는 홀로 두 번째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프랑스로 밀항해서 자신의 고향 파리 빈민촌에 숨어들었습니다.
그간 모아둔 돈으로 술집(살롱)을 하나 차려 그 아래에 카타콤과 연결된 땅굴을 만들어 은거하면서 보나파르트와 부르봉 왕정에 맞서 저항활동을 벌이던 프랑수아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몽포르 후작과 동지들이 드디어 가능성 검토 같은 책상물림을 그만하고 프랑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3.
- 이름 : 롤랑 미셸 조르주 비셸론(Roland Michel Georges Bichelonne)
- 플레이어 : 돈이 곧 진리
- 성별 : 남성
- 생년월일 : 1781년 4월 11일
- 모국어 : 프랑스어
- 구사가능언어 : 네덜란드어, 영어, 그리스어, 중국 관화(중급), 광동어(중급), 오어(초급)
- 능력치 :
지휘(0)/조직(1)/운영(1) ; 논변(3)/저술(5)/고찰(4) ; 호신(1)/의지(1)/선전(2) ; 경영(2)/위조(1)/공작(0)
- 트레잇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자신이 직접 작성했으며 작성자를 공개한 모든 저술행위에 대해 +2.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0) / 기술(0)
- 최종 직위 : 무역장관
- 정파 : 급진당
- 배경 :
롤랑 비셸론은 브뤼셀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왈롱인 부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부모님과 네덜란드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지낸 그는 1789년까지만 해도 딱히 별다른 소속감 없이 자랐지만, 프랑스에서 시작한 거대한 불길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아버지의 서점 일을 도우며 지내던 1795년, 검은 모자를 쓴 프랑스 군인들은 이전의 주인이던 오스트리아를 몰아내고 새롭게 브뤼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검은 모자를 쓰고 파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멋있기도 해서 자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들에게서 들은 프랑스 이야기는 소년의 가슴에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동포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역사는 비셸론에게 '브뤼셀 사람'이란 이전의 소속감을 희미해지게 만드는 대신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깊이 뿌리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직접 파리로 가서 혁명이라는 것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기에 17살 생일이 지난 1798년 5월 3일 집을 떠나 파리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파리는 비셸론의 상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혁명적 열정과 생산적인 토론,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회로 가득할거라 생각한 파리는 끝없는 인플레이션, 허구헌날 싸우는 정파들, 무능한 정부, 불만에 찬 민중들로 가득했습니다. 비셸론도 먹고 살기 위해 국립도서관 사서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던 중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고 들어선 총재정부가 시민들에게 빵과 와인을 주긴 커녕 그저 자기들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것을 보고 처음엔 실망했고, 실망은 분노로 변했습니다. 차라리 로베스피에르가 더 집권했다면 좋았을거라 생각한 그는 로베스피에르의 행적과 정책방향을 분석하다가 국민주권과 경제적 평등을 주장한 루소의 저서를 떠올려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강력한 중앙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전쟁영웅인 나폴레옹 장군이 무능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집정에 올랐을때 그는 기뻐했습니다. 자신이 바라던 강력한 지도자가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 진정한 경제적 평등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기대를 배신하고 나폴레옹이 황제라는 직위에 오르자 비셸론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나폴레옹의 행동은 특권계급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거리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전장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시민들의 핏값을 하찮게 여긴 것과 다름이 없으며. 나폴레옹은 내가 생각하던 프랑스의 킨키나투스가 아닌 그저 난세에 흔히 나오는 흔하디 흔한 제왕병자 1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사서로 일하던 1807년,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반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군을 파견했고, 이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징병관들이 마구잡이로 젋은 청년들을 끌고가 아쌔이 자진입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같이 일하던 사서 동료가 잡혀갔다는 말을 들은 비셸론은 이 망할 혁명의 배신자 개자식이 이젠 자기를 군대로 끌고가 의미없는 개죽음을 맞게 하려는 것에 분노하여 그날 밤 바로 파리를 빠져나가 칼레에서 밀항선을 타고 영국으로 항했습니다.
약 7년간의 영국 망명생활 동안 비셸론은 프랑스어 가정교사를 하면서 살았고, 휴일이면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까지 가서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영국 생활 동안 비셸론은 홉스의 저서들을 즐겨읽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를 주장한 홉스의 이론은 (군주정 옹호만 빼면) 경제적 평등을 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이끄는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선호하는 비셸론의 취향을 저격했습니다. 그리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웠으나, 나폴레옹처럼 타락하지 않고 공화정을 지킨 크롬웰의 생애가 담긴 책을 보고 나서 크롬웰을 매우 존경하게 되어 프랑스에도 크롬웰 같은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엘바로 쫓겨난 1814년,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포츠머스에서 르아브르로 향하는 배편을 기다리던 중 비셸론은 미국에서 귀국하던 몽포르와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습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프랑스의 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게 인연이 되어 배에서도 동석하고 서로의 견해와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다시 발을 딛고 나서, 비셸론은 몽포르와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