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 붓과 칼을 휘두르라 - 캐릭터 시트]
1.
- 본관 : 연일 정(鄭)씨 지주사공파
- 명 : 찬석(纘錫)
- 자 : 부원(裒棩)
- 별호 : 서악(西嶽)
- 군호 : 웅진(熊津)
- 플레이어 : 렌지파일
- 생년월일 : 만력 갑인년(1614) 8월 5일
- 모국어 :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 관화, 만주어(약간)
- 능력치 :
지휘(4)/조직(2)/운영(2) ; 논박(0)/학술(3)/모색(3) ; 무예(3)/의지(2)/선전(3) ; 경영(2)/위조(1)/공작(1)
- 트레잇 :
[천마현신 만마앙복] 저항 이데올로기의 정립, 확산 및 설득행위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2) / 지식(0) / 감각(2) / 기술(0)
- 현재 직위 : 동지의금부사(종2품)
- 당파 : 노론 서인
- 배경 :
포은 정몽주의 10대손인 정찬석은 공청도(충청도) 공주 출신입니다. 조천사(연행사)이자 밀수의 달인이었던 아버지 정유징(鄭有徵) 밑에서 육왕학(양명학)과 천주학 등 온갖 잡학(조선의 기준에서)을 배운 정찬석은 '정학을 배웠다면 수재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집안의 평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사도와 이단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들이 관직에 나가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유언은 정찬석을 문과에 도전하게 만들었지만, 인맥이 있고 부가 있어도 본인이 주자학을 정학이라 생각치 않는 이상 제대로 될리 만무했습니다. 두 번이나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진 정찬석은 무과로 발길을 돌렸고, 턱걸이로나마 합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정묘호란 이후로 크게 낮아진 시험의 문턱 덕이었습니다.
물론 무관 정찬석은 후금(이후 청)과의 분쟁에서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신무기와 전략전술에 능했다고 하지만 한미한 직책의 무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금상(인조)이 등용한 최악의 인사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패전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간신들이 왕의 눈과 귀를 막은 게 틀림없다 믿은 정찬석은 강화도에서 최후까지 항전했지만, 처참하게 패배하고 그 후에는 책임소재를 회피하려는 여러 이들의 음해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특히 왕족을 호위하는데 온 힘을 쓴 정찬석을 '이 자는 잡학에 몰두하던 자다'라며 매몰차게 외면한 금상의 모습은 방향성이 다르더라도 자신이 유자라 믿은 정찬석의 마음을 돌리기엔 충분했습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인해 요양을 명목으로 잠시 고향에 내려왔던 정찬석은 아마도 합병증과 고열로 인해 환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계룡산 자락에서 자신이 길삼봉이라 지칭하는 80이 다 된 노인을 '만난'(혹은 그렇게 믿게 된) 정찬석은 역성혁명을 일으키란 계시를 받았습니다. 정찬석은 정여립의 난의 주도자라는 길삼봉을 만났을리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았지만, 길삼봉과의 만남이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보여준 것임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육구연과 왕수인은 실천을 주장하고, 예수는 신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함을 선언했으니까요. 물론 스물네살 무관의 꿈은, 정찬석 집안의 노비의 꿈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겠지요.'
2.
- 본관 : 전주 최(崔)씨 문열공계 양도공파
- 명 : 원겸(元謙)
- 자 : 완영(完榮)
- 별호 : 정운(靜雲)
- 군호 : 평성(平城)
- 플레이어 : 돈이 곧 진리
- 생년월일 : 만력 정미년(1607) 6월 10일
- 모국어 :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 만주어, 관화(약간)
- 능력치 :
지휘(0)/조직(3)/운영(0) ; 논박(3)/학술(3)/모색(4) ; 무예(0)/의지(4)/선전(1) ; 경영(1)/위조(2)/공작(2)
- 트레잇 :
[천 냥 빚과 말 한 마디] 직접 구사 가능한 언어로 이루어지는 모든 설득행위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2) / 감각(0) / 기술(1)
- 현재 직위 : 평안도관찰사 겸 평양부윤(종2품)
- 당파 : 소론 서인
- 배경 :
최원겸은 전주에서 지역의 대표 토호인 최재호(崔宰晧)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조상인 최환(崔煥)은 성종대에 정승의 직위에 오른 바 있으나 연산 시절 혼탁해지고 난잡해지는 한양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곤 사직하여 가문의 본관인 전주로 낙향하였습니다. 전주는 물산이 풍부하고 평화로운 땅이었기에 조선 8도를 다 불태운 임진년의 병화 속에서도 왜적에 총칼에 죽임을 당하는 일 없이 그나마 일상을 영위하며 신변과 재산을 보전한 채 가문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안 분위기도 느긋하고 과거급제에 강하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향 이후의 조상들과 아버지, 두 형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릴적부터 한양에서 벼슬을 하여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기에 학문에 힘썼습니다. 덕분에 원겸이 25세 되던 해 대과에 급제하여 관복을 입고 당당히 한양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죠. 원겸은 이조로 발령받아 같은 전주 최씨인 이조판서 최명길의 아래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637년 청이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자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몽진했고 그 행렬에는 원겸도 끼어있었습니다. 조정은 꼬박 5개월 하고도 21일간 남한산성에서 강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항전했으나 결국 국왕이 홍타이지 앞에서 삼궤구고두를 하면서 항복했습니다...
이러한 국왕과 고위 신료들의 모습을 본 원겸은 현재의 조정에 대한 깊은 환멸과 한심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상관인 최명길의 말을 진작에 들었더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테니까요, 언제는 오랑캐들이랑 임진년때처럼 박터지게 싸울 것 같이 굴던 국왕 이종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자고 추하게 오랑캐 두목인 홍타이지 앞에서 그들의 예법대로 신하가 되겠다며 굴복했고, 대안도 없이 최명길에게 오랑캐에게 종묘사직을 팔아먹은 역적 운운하던 높으신 분들은 언제 자신들이 반청을 외쳤나며 입닫고 태도를 싹 바꿨으니 말이지요.
한이 위, 촉, 오 3개국으로 갈라질 때 동탁, 원술, 조조가 각각 부상했고,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가 화려하게 비상했듯. 혼란 속에서 야심가들이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주명의 천명이 져가고 오랑캐들의 거짓된 천명이 뜨는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도 나아갈 길을 찾아야지요. 비록 하늘은 아직 전주 이씨의 '왕조'가 이어질 수 있게 하였지만, 과연 전주 이씨의 '권력'도 이어지게 하였을까요?
부패하고 무능한 이씨 왕조와 지금의 윗대가리들 대신 자신처럼 혈기 넘치고 총명한 이들에게 그 권력이 가게 하지 않았을까요? 이이첨, 윤원형, 김안로, 그리고 전조 고려 시절 무신들과 이인임, 이자겸이 그랬듯 가령 자신이랄지... 처음에는 그러한 의심을 헛소리라며 자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확신으로 변해갔습니다.
원겸은 한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임진년부터 병자년까지 수십년간 조선이 겪어야 했던 치욕을 잊지 않고 조선을 강성대국으로 만들고 마리라. 그 다음에는 대륙의 한인(漢人)들과 만주의 오랑캐, 열도의 왜인들을 모두 조선의 노예로 만들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죽도록 부려먹여주겠노라. 또한 본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그러한 신질서(新秩序)의 정점에서 전주 이씨, 주씨, 애신각라씨, 덕천씨든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을 황금옥좌에 앉아 내려다보겠노라 말이죠.
3.
- 본관 : 순천 김(金)씨
- 명 : 주(柱)
- 자 : 장수(長壽)
- 별호 : 적오(赤烏)
- 플레이어 : 통장
- 생년월일 : 만력 갑오년(1615) 1월 5일
- 모국어 :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 관화, 민어(약간)
- 능력치 :
지휘(4)/조직(2)/운영(2) ; 논박(2)/학술(2)/모색(0) ; 무예(3)/의지(3)/선전(1) ; 경영(1)/위조(0)/공작(2)
- 트레잇 :
[불멸의 김적오] 해전, 상륙전 등 물 위에 떠 있는 모든 물체를 활용한 전투행위에 +2.
- 잔여 경험치 :
통솔(2) / 지식(0)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평안도수군절제사(정3품 상계)
- 당파 : 소론 서인
- 배경 :
주는, 출세 후 종가와 같이 상경했으나, 결국 정치 싸움에 넌더리를 내고 순천에 돌아온 지방 방계의 한 일원이었습니다. 전라도의 핵심 중 하나였던 낙안일대부터 요충지인 강진까지 아우르던 양반가라는 점, 그리고 최근 수십년간의 난세가 겹쳐 의병을 대대로 내던 것이 자랑이었던 집안의 전통에 따라, 주는 학업과 무예를 같이 단련해나갔으며, 약관의 나이에 무과로 급제했습니다. 비록 머리의 문제로 문과는 못갔으나 주는 주상과 일족, 백성의 나라를 지키는 데에 진심이었고, 이후 수년을 강진에서 서-남해의 왜구, 해적을 토벌하는데 전념했지요. 당시 북방과 달리 전공을 세우기 어려운 한지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만족했습니다.
전화위복일까, 당시 난리를 치던 왜구, 해적들을 물리치느라 육지의 일에 신경을 못 쓴 사이 호란이 일어나고, 청의 분열이 벌어지며, 이후 홍서봉의 난이 벌어질때까지 주가 중앙에 개입할 일은 없었고, 오히려 그간의 해전과 순 수군과의 교섭을 통해 관화를 익히며 순과의 인연을 간직하고 스스로를 담금질 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자를 장수라 지으며 오래 살기를 바란다고 농담했지만,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은 적오였습니다. 마치 피에 물든 까마귀처럼 해전에 미친듯 뛰어든다는 의미처럼 물불 안가리며 적을 물리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주는, 이후 중앙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주는 영문을 모르고 주상이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다 감격했지만, 사실은
1. 그간 중앙의 일과 전혀 연이 없으며
2. 여전히 조정에 충심이 있고,
3.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을 불러들이라는 조정의 건곤일척의 수 때문이었죠.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난세의 끝. 그것이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4.
- 본관 : 산성(山城) 계(桂)씨
- 명 : 광요(光曜)
- 자 : 충헌(忠憲)
- 별호 : 요한(Johan)
- 플레이어 : 로콘
- 생년월일 : 만력 병오년(1607) 1월 2일
- 모국어 : 일본어
- 구사가능언어 : 조선어, 스페인어(약간)
- 능력치 :
지휘(0)/조직(2)/운영(2) ; 논박(2)/학술(2)/모색(2) ; 무예(2)/의지(2)/선전(2) ; 경영(4)/위조(1)/공작(0)
- 트레잇 :
[사원 광요] 2차(광업 포함) 및 3차산업체 운영 및 경영 전반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2) / 지식(2)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안주목사 겸 부평시사(정3품 하계)
- 당파 : 노론 남인
- 배경 :
계광요 혹은 가쓰라 코요는 덴노의 후손으로서 태정대신을 비롯한 고관대작을 여럿 배출한 공가의 출신이지만 이런 고귀한 출신 같은건 먼 조상의 이야기고 가쓰라는 대마도에서 가족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서 근근히 먹고 사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가쓰라가 탄 어선이 태풍을 만나 난파됬다가 예수회 선교사에게 겨우 구출된 일을 계기로 가쓰라는 자신이 살아남은 것을 데우스 사마의 은총으로 여기며 키리시탄으로 개종했습니다.
태풍에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생계수단인 배를 잃은 가쓰라는 선교사의 주선으로 대마도와 조선을 오고가는 상인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조선어를 배우고 한사람 몫의 상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되는등 총명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재능을 눈여겨본 주변 사람들은 조선의 과거에 도전해보라고 권유했고 권유를 받아들인 가쓰라는 유학을 공부해 과거 문과에 도전했고 당당히 급제했습니다.
이제 계광요는 조선의 관리로서 순탄한 인생을 살아가는듯 했으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횡의사건에 휘말려 심양으로 압송되는 불운때문에 그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심양사변 당시 계광요는 혼란에 빠진 심양 시내에서 천주교 신자와 선교사들이 만주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채 버려진 광경을 보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럽게 죽으면서도 품에 지닌 성경과 십자가 장식을 놓치 않았습니다.
계광요는 죽을때까지 신앙을 지킨 그들의 순교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남은 인생을 천주의 가르침을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 살아가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조선으로 돌아온 계광요는 조선의 관리로 계속 일하면서도 남몰래 천주교에 대한 책을 써서 익명으로 출판하면서 천주교를 널리 퍼트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관소.
1.
- 본관 : 밀양 이(異)씨
- 명(名) : 원호(元呼)
- 자(字) : 가비(可備)
- 별호(別號) : -
- 플레이어 : dear0904
- 생년월일 : 만력 갑인년(1614) 11월 30일
- 모국어 :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 관화
- 능력치 :
지휘(0)/조직(2)/운영(3) ; 논박(3)/학술(4)/모색(3) ; 무예(1)/의지(2)/선전(2) ; 경영(2)/위조(1)/공작(0)
- 트레잇 :
[황금벼루의 소유자] 형태불문, 모든 형태의 창작적 저술행위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1) / 감각(0) / 기술(0)
- 현재 직위 : 종부시정(정3품 하계)
- 당파 : 서인 입당
- 배경 :
밀양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모여사는 이씨 문중에서 태어난 이원호는 본디 농사나 지으며 근근히 먹고 살 민초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선묘대 우부승지 벼슬을 지냈던 집안의 먼 친척어른의 눈에 띄어 공청도 예산의 김집 문하에 들게 되었습니다. 학문을 즐기는 기질을 타고난 탓인지, 아니면 김상용 등 고관들과 친한 김집의 입김이 작용한 탓인지 원호는 약관도 채 되지 않는 나이에 대과 중광시에 급제하여 조정으로 출사했습니다.
여러 미관말직을 돌며 실무경험을 쌓던 그는 호란 발발 직후 어가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원호는 금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는데, 적어도 그가 이해한 금상의 모습은 군자에 의한 통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반정공신들의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항상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러한 잘못된 판단이 후일 몇 곱절로 불어나 앙화로 불어닥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강도가 함락된 다음 날, 금상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죠.
”의군(의병)을 자처하는 이들이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무얼 했단 말인가. 의군이라 스스로 칭하는 자들이 강도의 세자나, 남한의 조정을 구원하러 온다는 이야기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자칭 밀양 의군 이창숙에게 시호를 내리라는 청은 가납하지 않겠다. 문충공처럼 충절을 다하지도 못했으되 제 일족을 지키지도 못했으니, 차라리 실함했을 지언정 종묘사직을 구원하려 한 김경징의 충용을 높이 살 만 함이라.“
이창숙은 이원호의 아버지였습니다. 가족이 만청에게 몰살당하고 아비가 모욕당하는 것을 직접 지켜본 원호의 가슴은 찢어졌고, 곧 불타올랐습니다. 국체를 보전하고 백성을 지킨다는 막중한 책임이 임금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확실히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희로애락과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완의 존재. 군왕의 마음을 수양시키며 기우제보다도 못한 헛된 기대를 품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마다 부족한 점이 다른 신료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더 강해져야 하고, 악착같이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의 복수, 그리고 굳건한 신념을 이룩할 수 있을테니까요.
2.
- 본관 : 영변 유(劉)씨
- 명(名) : 양립(陽立)
- 자(字) : 천수(天受)
- 별호(別號) : 홍염(紅染), 호수에(Josué)
- 플레이어 : 로콘
- 생년월일 : 만력 병오년(1607) 1월 7일
- 모국어 : 관화
- 구사가능언어 : 조선어
- 능력치 :
지휘(3)/조직(2)/운영(0) ; 논박(2)/학술(1)/모색(2) ; 무예(4)/의지(3)/선전(1) ; 경영(0)/위조(0)/공작(4)
- 트레잇 :
[상승장군] 조선인 이외의 적을 상대로 한 모든 형태의 군사작전에 +1.
- 잔여 경험치 :
통솔(0) / 지식(0) / 감각(1) / 기술(0)
- 현재 직위 : 무장친위영 청어사(정3품 상계)
- 당파 : 노론 서인
- 배경 :
그는 명나라 북경에서 노비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노비라는 이유로 온갖 수모와 학대를 당해야만 했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북경의 거리를 걷다가 남만인이 천주니 뭐니하면서 떠들어대는 걸 듣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듣는 개념들이라서 그는 남만인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한 천주의 자식이라는 한마디를 듣자 그의 눈이 뜨이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남만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한데 그저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수모와 학대로 점철된 삶을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옛말에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냐는 말이 있고 실제로 농민의 자식인 주원장도 황제가 됬는데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라도 왕후장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곧바로 그는 자신의 눈을 뜨이게 해준 남만인을 찾아가 천주인지 뭔지를 평생 따르겠다고 하면서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남만인은 그에게 세례를 해줌과 동시에 학식이 없는 그를 위해 기본적인 교리를 간단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배우게 된다면 읽어보라고 하면서 천주실의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천주교를 배우게 되면서 자신의 가혹한 처지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그는 더 이상 잔혹한 주인 밑에서 노비 노릇을 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집에 불을 질러서 주인과 그 식솔들을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그의 노비 부모도 함께 불타죽었지만 복수를 위한 작은 희생일 뿐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범죄자가 된 그는 재가 된 주인의 것이였던 총 한자루와 말 한 필을 훔쳐서 만리장성을 넘어 만주로 가서 명나라 유민들 몇명을 모아 마적단을 결성했습니다.
그는 대담하게도 만주 오랑캐들을 상대로 마적질을 하면서 남만인이 하지말라고 했던 일들을 잔뜩 저지르는 동안 틈틈이 마적질로 얻은 책으로 글을 배워서 몇년 후에는 천주실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천주실의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수 있는 독실한 천주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천주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마적질을 멈출 생각도,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천주의 가르침을 퍼트릴 생각도 없었지만요.
그는 마적 생활에 만족했지만 만주 오랑캐들은 한족 마적 무리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적단이 토벌되는 것을 막지 못한 채 또다시 총 한자루와 말 한 필만을 가지고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몰락시킨 만주 오랑캐들에게 복수를 맹세한 그는 옛 주인의 아들 유양립의 이름과 신분을 훔쳐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유양립'은 화북에서 만주 오랑캐에게 가족이 몰살당해서 복수하고 싶다는 사연을 만들어냈고 조선어와 유학을 배워서 숭정 신미년(1632)에 무관이 되는데 성공했습니다. 병자호란 때 '유양립'은 하급 무관이였지만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기병대와 총병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격전을 펼쳐서 몇번 승리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지만 하급 무관 하나가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뒤 '유양립'은 "감히 나라가 패배했는데 살아돌아온것 자체가 충심이 부족하다는 증거"라는 어이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유양립'은 자신은 단 한번도 진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백방으로 뛰어다녀 겨우 살아남았고 하급 무관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양립'은 하급 무관 자리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세례까지 받은 몸인데도 십계명중 안 어긴 것보다 어긴게 더 많아서 어차피 지옥에 갈거라면 현세에서는 더 높은 곳까지 가봐야지 피로 얼룩진 길을 걸어온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겸사겸사 자신의 행복한 마적 생활을 박살낸 오랑캐놈들에게 피의 복수도 하고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렌지파일 작성시간 24.11.04 공작과 위조를 둘 다 1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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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11.04 반영 완료.
사용가능언어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습니다. -
작성자돈이 곧 진리 작성시간 24.11.05 자유포인트는 기술에 받아 위조를 3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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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렌지파일 작성시간 24.11.05 통솔에 1, 감각에 1 받고, 조직과 의지를 3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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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통장 작성시간 24.11.05 자유포인트) 통솔1, 지식1에 받고 조직3, 모색1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