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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소비에트의 확장주의적 행보(소.확.행) - 05. Red Flood

작성자E.E.샤츠슈나이더| 작성시간21.09.17| 조회수663| 댓글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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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1.09.19 두분 쓰신거 보니 쓰고 싶어져서...

    "레닌 사후, 신뢰받는 인물로 유언장 집행, 지도부 선출에 큰 목소리를 내며 국가정보위원회 의장직에 선임 되었고, 제르진스키를 넘어 결국 정보국의 1인자가 되었다. 이후, 국가 내부의 반동분자, 외부의 적들을 열성적으로 소탕하면서, 혁명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그는 본인의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48년, 즉 "소조국 전쟁"이 끝날때까지 직위를 유지했고, 70살이 되는 그 해에, 후계자를 지명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했으나 부하린의 만류로, 소조국 전쟁의 수습이 끝나고 완전한 안정을 찾게 되는 해인 53년, 75세에 정년 퇴직을 하고, 모스크바 외곽 안전 가옥에 머무르며, 자서전 집필과 함께, 가끔 요원들의 자문을 하며 여생을 보냈고, 62년 10월 28일. 8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 아마, 소조국 전쟁이 안 터지면 10년씩 당기지 않을까... 하네요. 이건 쓰고 싶어서 쓴거니 반영 안하고 새로 쓰시는것도 마음에 들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하일레 셀라시예 작성시간21.09.19 럭키 베리야 엔딩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19 저도 기본틀 정도는 제공하는게 임의 작성이어도 도움이 될듯 하니까...

    "레닌 사후에도 솔제니친은 붉은군대를 위시로한 공산군의 현대화와 전력 증강에 몰두했다.

    이후 그의 지위는(이 뒷부분은 슈나이더님께)

    이후 그는 시간이 지나 공직에서 은퇴해 자식들과(2남 3녀 정도?) 여생을 보냈다.

    그는 죽을때까지 군 개선에 영향을 끼쳤고 사후 공산진영 최고의 영웅중 하나로 추앙받는다"

    + "여담으로.그의 집안에서 나온 자손들은 남녀에 상관없이 거의다 군인이 됐다고 한다" 추가

    + 이걸 임의로 손보셔서 작성하셔도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1.09.19 그렇게도 보이네요. 에드거 후버 참고 했지만, 베리야도 비슷...

    + 차이가 있다면, 베리야가 했던 미친짓을 저지르진 않을거라는거?
  • 답댓글 작성자 렌지파일 작성시간21.09.19 사실 마르텔같은 인물이 있으면 소련 입장에선 베리야보단 훨씬 나은게, 야고다-예조프-베리야의 3인 학살자 트로이카(...)를 대체할 인물이 있고, 제르진스키(26년 병사) 멘진스키(34년 병사)라는 대참사가 있으니..

    무엇보다 베리아 이후로도 정보기관의 왕을 해먹었던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한명은 GRU와 KGB 총수를 둘 다 해본 이반 세로프가 있고, 다른 한명은 15년 동안이나 KGB 의장을 하다 이후엔 골골대는 브레즈네프 대신에 소련을 통치한 유리 안드로포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1.09.19 ... 대체 첩보국은... 근데 이해는 가네요. 그런곳에 있는데 완전 멀쩡히 제정신이기는 조금 어렵긴 했을건데, 어째 저 둘은 다 병사를...

    + 아니, 베리야 참사를 아는데도 정보기관을 그렇게 강하게 둔게 솔직히 의문이긴 합니다. 공산 국가긴 한데...
  • 답댓글 작성자 렌지파일 작성시간21.09.19 베리야 참사 후엔 일단 철저하게 통제 하에 들어가긴 합니다 (그런데 베리야도 '최고지도자의 의중에 따라' 패악질을 한거니 엄밀하게 말해서 통제가 안되었다곤 할 수 없죠. 후버는....뭐......)... 안드로포프같은 양반이 생길 줄은 몰랐겠죠.

    엄밀하게 말하면 소련 말기에 개혁파(미코얀, 수슬로프, 그로미코+자유주의자 고르바쵸프)와 보수파( 안드로포프)도 아닌 브레즈네프 같은 관료들이 정권을 잡아버린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체제가 완전히 경직되어 버리니, 다들 자기 자리에서 이권은 챙기면서 권력투쟁을 열심히 벌인거죠.. 그러다
  • 답댓글 작성자 하일레 셀라시예 작성시간21.09.19 비서였던 예카테리나와 결혼해서 이후로도 쭉 함께 활동했는데 공석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신 모시듯 대했으나 사석에서는 아내를 '여왕님'이라 부르며 공처가로 살았기때문에 '바레츠'라는 말이 러시아 은어로 '낮져밤이'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날때 어머니를 여읜 것 때문에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많아서 첫째를 낳고 2년후 둘째 아이를 낳자 아내에게 은퇴하고 아이들의 양육에 전념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 답댓글 작성자 dear0904 작성시간21.09.19 아... 후버는... 사실 원래 그 버전으로 쓸라다가 만. 아니 저정도로 정보를 수집해서 압박을...

    + 경직은 진짜 답이 없죠. 발전을 못하니 뭐... 근데 하필 관료가... 경직 속에서도 더 경직 될 수밖에 없죠 뭐.
  • 답댓글 작성자 카라멜 마끼아또 작성시간21.09.19 여담:
    카튜셰프 가문의 구성원들은 조상인 알렉산드르와 저우팡이 미인이었던지라 미남 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19 그럼 제쪽 집안은 남녀 불문 죄다 군인 출신이라고 해야 할까요?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하일레 셀라시예 작성시간21.09.19 이제보니 마끼아또 님도 저처럼 가문키우기 하셨네요 엔딩 보고 크킹 처럼 가문점수 매기기 해도 재밌겠는..ㅋㅋ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카라멜 마끼아또 작성시간21.09.20 군인 집안의 후손은 군인이 되는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20 충무공 이순신 집안도 후손들이 죄다 무과 응시했다는 말이 생각나서요
  • 답댓글 작성자 하일레 셀라시예 작성시간21.09.20 러시아 공산주의식 융커라... 재밌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20 안그렇게 되기엔 제가 세운 공훈이...

    작중 시점만 포함해도 7월 혁명의 주역,적백내전에서 엄청난 대전과를 기록,이후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폴란드와의 전쟁에서도 압승을 기록.이후 현대화 장비가 중국,프랑스에 적용되며 성능을 입증.건함 정책으로 프랑스를 뒤흔듬(물론 가장 큰 원인은 공작이지만)등등등...(간접적으로는 터키 방면도?)

    이런데 집안에서 뭐라 안해도 주변에서 군인 안하냐는 말이 나올수밖에...
  • 답댓글 작성자 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1.09.20 후아.... 가장 오래 걸렸네요... 2시간 27분만에 작성 완료..!

    어쩌다 보니 후일담이 대폭 생략됐는데 나중에라도 외전 형식으로 이 이후의 일들을 소설로 다뤄볼까 합니다. ㅋㅋ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20 만약 20년대가 되면 설정 따로 다뤄봐? 하는 저랑 똑같네요.시점의 차이일뿐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 E.E.샤츠슈나이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1.09.20 한쪽은 세계혁명, 한쪽은 아예 공산주의가 망한 세계관..? ㅋㅋㅋㅋ

    뭐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어도 다른 곳에서 혁명이 터졌을 지도 모르긴 하지만요.
  • 답댓글 작성자 931117 작성시간21.09.20 아 제가 말한건 다들 갱생한 20년대.

    국가고 인물이고 뒤집힌게 한두개가 아니라서리.

    백군 승리는 설정 논의가 좀 필요해서...이기는건 상관 없는데 파급 효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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