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 감성으로 쓰는 추억 회상 글입니다. 카페서 Eu4 발매 9주년이라는 글을 보고 삘 받아서 작성하게 되었네요.
제가 카페에 처음 온 게 2006년이고... 그때 막 서머셋님 주도 하에 CK1 한글 패치가 시도되고 있었던 때였을 겁니다. 하지만 CK1은 원체 불안정했던 게임이었고(몇 년 단위로 튕기고 튕기고... 역설신 강림하기 가장 쉬운 게임), 얼마 안 돼서 확장팩인 Deus Vult(줄여서 DV)가 나오면서 좀 지연이 되었던 상황이었죠.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 시기 가장 인기 있었던 건 호이(HOI2:DA)였던 걸로 기억이 나고, 그 다음이 빅토리아 혁명(VIC:R), 유로파(EU2)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멀티를 돌리기에 빅토리아는 너무 불안정했기에, 상대적으로 호이와 유로파 멀티를 주로 했었드랬죠.
지금 EU4와 비교해보면 EU2(그리고 EU3 역시)는 정말 큰 차이가 있는 게임인데... 몇 가지 기억나는 것만 꼽아보자면 다음을 들 수 있겠네요.
1. 등장하는 군주와 장군이 고정되어있다.
각 나라의 군주 및 장군이 역사적 시기에 맞춰 고정이 되어있었습니다. 덕분에 메이저 국가들은 화려한 군주진과 장군진으로 승천이 가능했지만, 조기 멸망 국가 or 암군이 끼어있는 국가들은 큰 고통을 받았죠. 장군의 경우에는 아예 없는 국가들도 많았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장군은 시작 당시 주어지던 프랑스의 장군인 리슈몽(브르타뉴 공작 아르튀르 3세). 능력치가 출중해서 잉글랜드군을 갈아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잉글랜드도 베드포드공이 있었나 그랬는데, 리슈몽에게 능력치가 1씩 밀렸던가 그랬던 걸로. EU2는 1419년 스타트였기 때문에 백년 전쟁을 좀 더 즐길 수 있었답니다... 잔 다르크 이벤트도 있었고.
2. 상인, 선교사, 개척자가 진짜 운빨x망겜이었다.
EU4에서 도입된 무역 노드 시스템은 정말 혁신이었죠. 그 이전 시리즈인 EU2와 EU3에서는 특정 지역들에 무역중심지들이 위치하고 있고, 거기에 상인들을 파견해 쟁탈전을 벌이는 식이었습니다. 한 중심지에는 최대 20명?까지 배치될 수 있었고, 점유 단계가 높을수록 많은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식이었죠. 최대로 돈을 벌려면 상인 5명이 배치되어야 했었는데, 그러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상인을 보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선교사는 같은 문화와 코어일 경우 대략 50%의 성공률,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25%, 둘 다 아니라면 12% 정도의 성공률을 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다가 지역 세금(EU4로 치면 개발도)에 비례해서 선교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증가했죠. 만약 실패했다? 그러면 확률 증가 같은 게 없이 다시 보내야 했습니다. 이건 EU3도 마찬가지였던 기억이... 거기다가 국가 정책 슬라이더에 따라서 연간 얻을 수 있는 선교사 수 및 선교 비용이 달랐는데, 혁신주의 쪽으로 1칸만 가도 선교사를 얻을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가 정책 슬라이더는 여러모로 어-썸 했죠.
개척자도 선교사와 비슷하게, 확률에 따라 성공 및 실패가 결정되었습니다. 개척이 한 번 성공할 때마다 인구가 100명씩 늘었는데, 이게 1,000명이 되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었나 그랬죠. 자동 성장? 그런 건 ㅇ벗다. 그러면 성공률이 높았다던가, 개척자를 주는 숫자가 많았다던가, 개척 비용이 저렴했다던가, 그랬느냐 하니, 그건 또 아니었죠. 개척은 선택받은 나라만 하는 거였습니다.
3. 국가 정책 슬라이더
국가 정책 슬라이더라는 게 있었고, 이걸 일정 년도마다 한 번씩 바꿀 수 있었죠. 혹은 이벤트가 떠서 슬라이더를 조정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요.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보면... 중앙집권 vs 지방분권, 귀족주의 vs 금권주의, 공격주의 vs 방어주의, 농노 중심 vs 자유농 중심, 양 중심 vs 질 중심, 육군 중심 vs 해군 중심, 보수주의 vs 혁신주의, 중상주의 vs 자유무역 이랬을 겁니다. 몇 개 빠졌을 수도 있고요. 저 정책 슬라이더에 따라서 연간 주어지는 외교관(외교 커맨드도 외교관이 있어야 가능했고, 관계도 +10 하는데도 외교관이 1명씩 소모되었습니다-), 상인, 선교사, 개척자 숫자가 달라지고, 육군 및 해군 고용 비용이 달라지고, 기술 비용 및 안정도 비용이 달라지고... 정말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모스크바의 경우 농노 중심 최대, 양 중심 최대, 육군 중심 최대를 쉽게 찍을 수 있어서 보병 1부대(1,000명)를 뽑는데 1두캇이면 충분했지만... 네덜란드(자유농, 질 및 해군에 좀 더 슬라이더가 위치하고 있었음)는 보병 1부대를 뽑는데 10두캇 정도가 들고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보병이 10배 더 잘 싸우고 그러진 않았습니다; 저 슬라이더는 Eu3에서도 이어졌죠.
4.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졌던 한글화
한글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었습니다마는, 한글화의 품질은 다소 떨어졌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텍스트량이 원체 많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번역기에 의존해있었죠. 그 때는 한글화에 참여했던 인원 자체도 훨씬 적었고요. 아니, 패러독스 게임 자체를 즐기는 회원분들 자체가 적었습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카페의 회원 수가 2만 몇천 정도였을 겁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적었죠.
그러다보니 당시 EU2 한글화는 일본 버전 EU2를 베이스로 해서(당시 EU2는 일본에서 정발되었습니다. 도쿠가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텍스트들을 번역기로 돌리고, 천천히 개선하는 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정인 이유는 제가 한글화에 참여하지 않았기도 했고,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ㅎㅎ; 여튼 그래서 몇몇 유명한 오타들이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슬램덩크(?) 설탄의 반란’ 정도? 원래는 메흐메트 2세의 아들인 젬과 관련된 이벤트. 슬램덩크는 기억에 왜곡이 들어간 것 같긴 한데;;; 저런 느낌이긴 했습니다.
5. 유럽 중심주의
EU4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만, EU2에서는 조선이 단 2 프로빈스!(얄루와 경주...였나) 였던 걸 생각하면 많이 개선된 거긴 하죠. 유럽 쪽은 땅도 촘촘하고, 베이스 텍스도 높았는데, 아시아 쪽은 땅을 큼직큼직하게 자르고 베이스 텍스 역시 낮은 편이었습니다. 일본은 제외하고요. 일본은 다른 시리즈에서도 잘 챙겨주는 편이죠.
이외에도 많은 것들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글을 슬슬 끊어야겠다 싶어서 급하게 마무리합니다- 취중에 쓴 거라 글이 번잡해진 것 같긴 한데 그 부분은 양해를 구하옵고... 나머지 차이점들은 다른 올드비(?) 회원 분들께서 재미있게 썰을 풀어주리라 믿습니다 ㅌ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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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arknessEyes 작성시간 22.08.14 카라만을 컬러맨으로 번역한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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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페르이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8.14 컬..러맨... ㅋㅋㅋ
옛날 번역기는 성능이 더 안 좋기도 했으니, 그렇게 뿅 나온 게 이상하진 않네요.
예전에 번역 관련 일화 봤던 게 생각나는데(어느 글이었는지는 까먹었습니다만;), 프리깃이 상당히 엄하게 번역되었었다고. -
작성자Daumkang 작성시간 22.08.14 둏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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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페르이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8.14 돋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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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DarknessEyes 작성시간 22.08.15 페르이노 추억의 돋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