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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VIC2 HPM 평화로운 조선 탐방기 - 8: 결전은 청더에서

작성자통장|작성시간22.02.07|조회수332 목록 댓글 17

사실 제 성향이 올-드스쿨하기 때문에, 연대기에서 이런 걸 쓸때면 브금저장소가 없어졌는데도 예전 모습이 아닌데도 브금을 넣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넣습니다 헤헷(..)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ost 'Black Tears'입니다. 영화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장면이었죠.
 

지난화는 안휘군벌의 대군과 한국군이 맞붙으면서 끝이 났죠
 

아니, 3성장군은 너무한거 아닌가; 참호 페널티를 줬는데도 뤄-동 장군빨로 무시하네요.
 

즉각 다른 군대에게 증원지시를 내립니다.
 

아니 방어전에 극도로 유리한 게임에 테크까지 올렸는데 왜 같이 떨어져나가냐고;
그래도 4만정도 갈아서 좀 괜찮...
 

"증원"
보병 30만이라는 압도적인 위력
 

"증원"
1928년 3월 5일, 이제 한국군은 46만의 중국군을 상대해야됩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한국군 최고의 방어전 전문가 편-안 장군도 전선에 서게 됐다는 점입니다.
3성vs5성
462k vs 55k
 

1928년 3월 16일 한국 동원령 선포
이 전투에 모든걸 겁니다
 

하지만 1928년 3월 24일 한국군의 전력은 30k가 증발하고, 중국군의 배후에는 아직 173k의 군대가 남아있습니다.
 

한국군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심정으로 군단 포병 분리 후 한달 요양을 수행하는데.
 

그 사이 안휘 군벌은 마치 현대판 팽월을 보듯 만주를 건너 한국의 영토를 점령하는 시도를 벌입니다.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만주방면으로 보냅니다
 

반면 청더전선은 한국으로서는 최대한의 지원을 했음에도 병력은 여전히 열세인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구재현 장군을 도와 제일 먼저 청더에 입성했던 편안 장군의 군대는 보병 포병 가릴 것 없이 전멸한 상태
특히 동원령으로 급조된 대다수의 한국군 부대들과 달리 편장군 휘하 부대는 포병까지 갖춘 정규군입니다.
 

어쩔 수 없이 군대 보충일인 1일을 노리고 단기간동안 편안 장군과 부대를 퇴각시킵니다.
 

이후 총사령관을 맡은 장군은 보 동현인데, 편 안이나 구 재현에 비하면 좀 손색이 많은 인물이네요.
 

반면 만주에 침입한 적을 어느정도 몰아내는데 성공한 파견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하나는 추격, 다른 하나는 청더 원정에 가담하기로 합니다.
 

녀석들 부대에 신병이 들어온다!
조직력은 개판이지만 인구수가 중요하죠
 

너에게 닿기를
 

마지막 예비군이 닿기를
 

1928년 5월 11일, 편안 복귀
그 잠깐동안 무슨일이 있었길래 병력이 이모양이 된건지 모르겠네요. 충전 하나마난데?
 

1928년 5월 21일
한국본토와 만주에서 온 지원군이 진저우에 도착한 상태에서, 한국군은 패배의 기로에서 서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닿기를!!
 
 
 

페이크다 이 중국군아!
가까스로 만주군의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청더전선의 양상은 뒤바뀝니다
 

만약 안휘군벌의 예비대 154K가 청더 전선을 향했다면 사태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겠지만,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듯 청해와 안휘군벌의 관계도 그럴테죠.
서로간의 전쟁으로 인해, 안휘군벌은 청더 전선에 군사력을 더 투입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뤄 동 장군의 분투에도 불구, 안휘군의 패색은 짙어졌습니다.
 

그리고 1928년 6월 1일, 뤄 동의 마지막 공세가 실패로 끝난 후
 

1928년 6월 3일, 뤄 동 장군은 분루를 삼키고 군대에 철수를 명했습니다.
한국군 35만 4455명, 중국군 66만 900명, 합쳐서 무려 100만이 넘는 인구가 격전을 벌인 청더 전투는 한국군의 승리로 마무리지어졌습니다.
단 한번의 전투로 워스코어가 86점까지 오르다니 ㄷㄷ
 

하지만 이겨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인패미가 15 이하로만 떨어졌어도 요서지방까지 노려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영토 정복을 추진하는 순간 열강의 조인트에 시달릴테죠.
 

앞으로 5년간 세금의 25%를 받는 거라도 넣죠.
 

막판에 강행군으로 한국에서 청더까지 예비군을 이끌었던 규 안 장군이 죽었습니다.
그정도 거리를 빠르게 온게 문제였던건가..
 

전쟁 종결
1928년 6월 24일, 청더 전투 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안휘군벌과 한국간 협정이 맺어집니다.
안휘는 이것으로 요동에서의 인베이전을 당분간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한국은 전쟁배상금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겁니다. 충분히 윈윈이죠.
14만의 장병이 죽은걸 빼고.
 

국외의 불안
국내의 안정
위신 증가
산업 발전
재정 흑자
 
한국 정부 수립 후 가장 빛나는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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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대기 쓸 땐 프로스트 펑크의 The City Must survive를 들으면서 썼는데, 막상 다 쓰고 들어보니 시간이 안맞대요(..)
Black tears를 넣을까 이걸 넣을까 고민했죠.
 
다음화가 마지막이 될 거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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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Europa/4ROg/10233 - 2편 - 동학운동부터 을해조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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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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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팽년과박원종 | 작성시간 22.02.08 근데 1936년까지 갈데 있나요?
  • 답댓글 작성자통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2.08 사실 많진 않죠(..)
  • 작성자위그노 | 작성시간 22.02.08 저정도 전투면 요새는 전부 가루....읍읍
  • 답댓글 작성자통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2.08 안심하셔도 됩니다. 우리 영토가 아니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위그노 | 작성시간 22.02.08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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