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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1권에서의 정의에 관한 고찰
― 트라시마코스의 정의관을 중심으로 ― 박찬희(서울대 철학과)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79456/1/40-10.pdf
어쩌다 인터넷에서 보게 된 내용입니다만, 제가 철학이나 고대 그리스에 이루어졌던 논의에 대한 배움이 평범한 사람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순 없는 입장이지만 이러한 고찰에서 말하는 트라시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쟁은 현재의 정치 현상과도 맞닿습니다. 이는 인간과 인간의 정치가 그 형태와 구성만 달라졌을 뿐 본질에 있어서 달라진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더 강한 자, 혹은 부정의한 자가 더 훌륭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트라시마코스는 현대에도 많은 이들이 추종하거나 발생하는 반도덕적 주장이지만,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역시 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동시에 트라시마코스의 부정의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선 비도덕적 행위를 해도 문제 없다는 비양심과 맞닿는 것보다 본성에 따르는 자연적 정의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흔한 찌질이들의 변명과는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작성자 Khrome 작성시간 22.12.10 -
답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논쟁은 그것이 완벽한 논리와 근거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지식과 지적 자극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2000년도 전의 인물들이 전개하는 논리에 동의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개념과 논리적 정합성, 혹은 완성도일지라도 우리가 그들을 배워야하는 이유는 혼자서 초원을 지나 자신만의 길을 닦는 것보다 이미 그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더 쉽고 수준 높은 지적 진보를 일굴 수 있는 까닭이겠지요. 인생의 절반을 바쳐 만들어낸 성과와 똑같은 결론을 수백년, 수천년 전에 누군가 내놓았다면 그는 이제 겨우 수백, 수천년전의 수준에 도달한 것 뿐이니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겠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에겐 더 쉽게 읽히는 글일 겁니다.
쨌든, 현대의 정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이러한 논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겠죠. 과거의 것을 아는 것이 곧 현재의 것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그것을 통해 미래의 것을 창조하고 진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개하는 글입니다. 작성자 Khrome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