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거듭 말하자면 석대는 참으로 무서운 아이였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 해도 기껏 열대여섯의 소년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는 참아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하는 것을 아는 듯했다. 그쪽으로 본능적으로 발달된 감각을 가진 아이 같았다. 그전 같으면 주먹부터 내지르고 볼 일은 가벼운 눈 흘김으로 대신하고, 눈흘김으로 대할 일은 너그러운 미소로 대신하며 어렵게 버텨 나갔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공납(貢納)’을 게을리해도 응징을 자제했고, ‘야, 그거 좋은데’와 ‘그거 좀 빌려줘’란 말은 아예 쓰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그때 석대는 시험지 바꿔치기의 위험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것만은 그만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 되어 끝가는 데까지 달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공부 쪽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길은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전교 일 등 엄석대’의 이 년에 가까운 세월의 부담이 너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