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시간에 배우면서 느낀건데 임진왜란은 진짜 피로스의 승리에 필척할 많한듯. 일본만 개이득 얻고 조선 중국 다 망함... 그걸 모르고 '일본 ㅂㅅ이다 우리가 이겼다 히히?' 이랬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작성자E.K.작성시간14.08.01
답글밤늦게 수고하셨습니다. 중간에 흥분하게 만든 점은 죄송합니다. E.K.님께 어떤 인격적 모독이나, 비난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었습니다. 혹시 그렇게 비췄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대화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붕당이 서로 목따려는 태도로 변질되고 성리학이 교조화되고, 조선 후기 사회는 분명히 모순을 내포했고 결과적으로 붕괴라는 결말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붕당은 동시대 평화롭게 살고 있는 농민들 징발해서 내전벌이는 다른 나라들보다야 민중에 부담이 덜한 우아한 내전이었고, 그 교조화된 성리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은 시대적 한계를 보이면서도 민중의 고통을 덜으려는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한경에서 조선의 곡물저장량 기사가 나온 게 생각나는군요) 저는 이쪽 전공자도 아니고 책도 잘 안읽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하나 아는건 단언하는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명과 암은 동시에 존재하는 법 아닐까요.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듣고보니 제가 너무 조선까의 형태를 취했군요. 많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원래 한 극단을 많이 싫어합니다. 다만, 임진왜란때 조선의 승리만 강조하고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문화적인 측면 또한 고려하지 않은 의견들이 많아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다들 죄송합니다. 저도 조선 후기에 가치를 무시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전기에 비해 사회적인 건강이 훨씬 나빠졌고, 광효현 숙경영정 헌 7명의 왕들의 노력(인순철은 빼도 될꺼라고 믿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끝내 개혁되지 못했습니다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태인배/아 그걸 말한 것이었군요. 죄송합니다.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약탈 문화재는 단순 전쟁 피해가 아닌 일본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인지라...그리고 기술자들도 끌려갔죠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흠..그렇죠.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시작부터 100년이나 끌었고요.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첫 댓글에서 [국사시간에 배우면서 느낀건데 임진왜란은 진짜 피로스의 승리에 필척할 많한듯. 일본만 개이득 얻고 조선 중국 다 망함... 그걸 모르고 '일본 ㅂㅅ이다 우리가 이겼다 히히?' 이랬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라고 하셨는데, 조선이 약탈당한 문화재는 어디까지나 전쟁 피해일 뿐이죠. 전쟁 피해 많이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부끄러워할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냥 그랬을 뿐이라고 넘어가도 무방할 것 같아요.작성자太人輩작성시간14.08.02
답글예송논쟁 부분은...네. 제가 틀렸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조선 전기의 붕당과 조선 후기에 붕당을 비교해 보면 점점 학술적인 면이 사라지고 정치적인 면이 올라오는것 같습니다. 3사의 변질도 그렇고, 서원도요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당대 검증 안된 정책이 나중에 좋은 결과를 냈다고, 그때 찬성 안했다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건 후대의 특권이지요.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실학은 메인스트림이 아닌 변방일 뿐이었고, 실학 또한 주자유학에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 당쟁이야기 했지 보수화와 당쟁이 관련있다고는 안했습니다. 보수화는 사대부들의 사회적인 흐름이었을 뿐입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예송논쟁도 결국 남인과 서인의 정치사상에서 나온 문젠데요. 이건 심지어 엔하위키선에서 정리되는 떡밥인뎁쇼.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아 죄송합니다....그건 잘못 말했군요. 임진왜란 이후로 격차가 벌어졌다고 말하죠.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우선 일본의 인식은 일본이기보다는 풍신수길에 망상에 가깝습니다. 대난투가 아니라고요? 예송논쟁은 완전 학술적인 논쟁이었나요? 조선전기의 붕당과 조선후기의 붕당을 비교해보세요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후기 조선에 신세력이요. 말씀해 보세요. 상인층들?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송시열이 찬성했다고요? 그건 어디서 나온 사실인가요? 송시열이 찬성했다면 대동법은 진작에 통과됬습니다. 숙종대까지 끌고갈 필요 없이!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임진왜란이 일본과 조선의 본격적인 격차를 보여줬고, 이 격차를 더욱 늘린 것이었다는건 부정할수가 없죠." 본인의 워딩을 다시 파악하세요.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그니까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인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는 겁니다. 도자기는 조선에서, 화포는 유럽에서, 중앙집권적 관료제 또한 조선등에 영향(일본 유학에 발전이 중앙집권화에 영향을 줬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을 받아 발전하고요.작성자E.K.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4.08.02
답글붕당을 썩혔다? 정작 조선이 무너진건 정조대 붕당정치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세도정치가 들어와서이지요.
덧붙여 후기 조선에 신세력이 왜 없었고 기득권만 관철했다고 주장하는 그 태도는... 님꼐서는 지금 조선만세 부르는 국뽕을 깐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 저는 인터넷에서 수없이 봐온 전형적인 조선까의 패턴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
답글국제 인식은 말할 것도 없죠. 조선이 아니라 중국 인도를 정복한다는 그 정신나감, 화평하자는데 명나라 황녀와 조선 4도를 요구하는 그 인식... 아무리 조선, 명도 당시 서로를 몰랐다고 해도 일본만큼 막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난투?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대동법의 경우 남인과 치고박고 싸우던 송시열도 찬성합니다. 그들은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학자이자 위정자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군요.작성자루키작성시간1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