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show you my guts. 오스만조의 가장 큰 지방행정단위는 앞서 말했듯이 주(eyâlet)였다. 이 주는 크게 두가지로 나눠졌는데, 그 기준은 바로 살야네가 있는가(sâlyâneli), 없는가(sâlyânesiz)였다. 그렇다면 살야네(sâlyâne)란 무엇인가? 이는 ‘매년’이라는 의미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오스만사에서는 1년에 한번 내는 세금을 말한다.작성자Diogenes작성시간15.07.24
답글나름 복잡하게 조직되었군요.작성자물의 백작작성시간15.07.25
답글말씀대로라믄 역사상의 오스만제국의 판도는, 당시 오스만제국이 발휘할 수 있었던 행정능력의 한계치에 가깝다고 보면 되려나요. 통제가 가능했다믄 변경도 통제하고 그 너머로 더 넓힐 수 있었을테니.작성자앙겔루스 노부스작성시간15.07.25
답글와 이거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흥미롭습니다~작성자앙겔루스 노부스작성시간15.07.24
답글오오오 오늘도 좋은 거 배워갑니다작성자첝작성시간15.07.24
답글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리면, 오스만정부의 직접적인 행정력이 필요한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지역은 상당히 세세한 단위로 행정구역이 짜여져있었으나, 세금만 알아서 납부하면 나머지는 아몰랑인 먼 지방들은 큰 덩어리로 대충 나눠져있었다. 이것이 오스만조의 광역행정구역의 사이즈에서 큰 편차가 보이는 주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방명록에 몽땅 써갈기는 나의 근성. 하지만 막상 다 써보니 생각보다 양이 적다는게 함정.작성자Diogenes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7.24
답글그럼 오스만정부는 이 주들에서 군인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만 있었나? 보고만 있었다. 물론 총독을 파견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실권이 없었고, 중앙정부는 이들이 중앙정부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고, 세금을 꼬박꼬박 이스탄불로 보내는 한 직접적인 개입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중앙정부는 그보다는 간접적인 개입을 선호, 이들의 파벌싸움을 뒤에서 조정하거나, 음모를 꾸미는 식으로 해당지역 내에서의 권력균형을 맞춰려고 하는 정도였다. 결국 1703년, 이집트에서 내란이 발생했으나, 대부분의 오스만사를 다룬 책에서는 내란의 ㄴ자도 나오지 않는다!작성자Diogenes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7.24
답글아인 알리 에펜디에 따르면 1609년 오스만제국에는 32개의 주가 존재했는데, 그 중 이집트, 트리폴리, 튀니스, 알제, 바그다드, 바스라, 알 하사, 예멘, 하베쉬의 9개주가 독립채산주였다고 한다. 이 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보면 이 주들의 공통점이 보이는데, 바로 제국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들이라는 점이다. 이 지방들에서는 베이나 데이라고 불리는 유력군인들이 권력을 장악했는데, 마그리브쪽은 예니체리 등 투르크계가, 이집트와 이라크는 맘루크가 권력을 장악했고, 나머지 세 지방은 일찌감치 망했다.작성자Diogenes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7.24
답글살야네가 없는 주는 티마르제라 불리는 일종의 봉건적 요소를 지닌 제도가 시행되어 봉토(규모가 큰 순으로 하스[hass], 제아메트[zeamet], 티마르[timar]라 불렸다)가 주어졌고 중앙정부에 대한 종속성도 강했으나, 살야네가 있는 주는 기본적으로는 1년에 한번 정해진 세액을 중앙정부에 보내면 끝이었다. 따라서 살야네가 있는 주는 좀 더 독립적인 재정운영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이를 독립채산주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어떠한 주가 이러한 독립채산주였는가?작성자Diogenes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