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지금 매우 기분이 좋아졌어요 :D작성자임베설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8.07
답글즉 핵 쳐맞기 전까지 일본은 연합국이 원하는 무조건항복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연합국이 바라는 내용이 아니었으니 별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작성자Diogenes작성시간15.08.07
답글연합군은 소련의 중재를 통해 일본이 조건을 걸고(국체호지, 조선과 타이완 유지) 조건부항복을 하는건 받아들일 수 없고 조건없이 항복할 것을 요구했죠. 사실 포츠담선언도 잘 뜯어보면 그냥 닥치고 항복하라는 것은 아니라 일본의 외무대신은 유조건항복이고 이거 거부하면 난리날꺼다고 했지만 군부가 철저항전을 주장. 결국 핵 맞고 수락쪽으로 기울었는데, 핵 맞은 뒤로도 국체호지라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영국은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는 입장이었으나 미국은 이미 핵까지 쐈는데 어디 감히 조건부항복이냐, 무조건항복하던지 뒤지던지라는 입장이었고, 결국 무조건항복했죠.작성자Diogenes작성시간15.08.07
답글그렇담 연합군 측은 조선과 타이완에 대한 식민통치를 포기했을 때 항복을 받아주겠다는 식의 얘기를 한 적은 있었나요? 그래서 항복의 신호라 보지 않은 건가;작성자임베설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5.08.07
답글7월 26일 포츠담선언, 무조건항복 요구-27일, 일본정부 논평하지 않기로 결정-같은 날 스즈키수상의 '묵살'발언-8월 6일 히로시마 원폭-9일, 소련의 대일선전포고 및 만주침공, 포츠담선언을 수락할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회의가 진행 중일 때 나가사키 원폭-14일 포츠담선언 수락. 포츠담선언이 나왔을 때 외교관료들은 수락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군부에 밀렸습니다. 덤으로 정부는 소련의 중재를 통해 조선과 타이완을 유지한채 전쟁을 끝낸다는 망상에 빠져있었죠(소련은 이걸 미영측에 모두 공개). 그걸 항복의 신호라 보기는 어려움. 나가사키원폭이야 다 끝난 마당에 한방 더 라는 면이 있지만 히로시마는 좀 다름.작성자Diogenes작성시간1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