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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슐라흐타가 재빨리 깨달은 것처럼 통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왕이나 자주 벌어진 왕위 궐위에는 이점이 있었다. 이것은 슐라흐타들이 국가를 경영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국왕이 재정과 군대를 자주 요청하면서 그들은 국왕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지렛대를 더 많이 갖게 되어 의회 정부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중략) 합의에 따른 정부라는 원칙은 초기 피아스트 왕조에서부터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13세기 초가 되자 이 관행은 완전히 자리를 잡아서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여러 지방의 통치 형태로 살아남았다. 비엘코폴스카와 마조비아 같은 지방에서는 세임(sejm)이라고 불리는 의회가 구성되어 그 지역의 모든 슐라흐타가 여기에 참여해 토론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 아담 자모이스키, 폴란드사
    작성자 크킹삼치 작성시간 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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