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解語花 최연실 꽃은 그저 피고 지며 계절의 표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혹,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지. 겨울의 끝자락에서 귀를 여는 생명이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너를 발견했지. 화려하거나 선명하게 붉어 보이지 않아도 도드라진 꽃망울이 무뎌진 내 감각을 깨웠단다. 너는 황량한 계절을 지필 불씨가 되려는가. 단정한 빛깔로 바람의 추임새에 화답하는 네 모습이 옹골져 보였지. 큰 꽃처럼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고, 장미처럼 향을 앞세우지도 않더구나. 제 자리에서 주변을 밝히고 있을 뿐…. 네 앞에 서면 발길을 멈추게 되고 입이 근질거렸단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내 붉은 말이 톡톡 터지곤 했단다. “곱기도 하여라. 어쩌자고 이렇게 몽실몽실 부풀었니.” 그러면 너는 꽃잎을 미세하게 흔들며 얼핏 내게 묻곤 했지. “그날의 동백꽃만큼은 아니겠지요.”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네 말이, 명징하게 내 맘을 흔들어 놓곤 했지 오래전, 어머님 댁 현관에서 너를 보았단다. 결혼하고 처음이었으니 어머님과의 인연은 네가 먼저였겠지. 찬바람이 일면 너는 꽃잎부터 먼저 내밀었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던 날에 어머님은 너를 집 안으로 들였지. 중문을 지나 신발장 옆, 빛과 바람이 반씩만 머무는 자리 말이야. 너는 매일 드나드는 이들의 얼굴을 기억할거야. 터줏대감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겨울을 나곤 했어. 눈을 맞춘다는 말의 깊은 뜻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때였단다. 어머님은 네 옆에 오래 서 있곤 했어. 너를 향하는 눈빛은 나를 대할 때보다 더 깊고 안온했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일 때면 고단한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지. 어머님이 너를 키운 게 아니라, 네가 어머님의 시간을 받아 적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단다. 너는 어머님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듣는 존재였어. 흘려듣지 않는 귀를 가진 너를, 잠깐 질투했는지도 몰라. 나는 마당의 살구꽃에 마음을 던지곤 했어. 그런 날이면 밤새 손톱만 한 꽃봉오리들이 몸살을 앓다가 아침이면 이슬을 머금은 채 꽃을 내밀었지. 몇 개 되지 않던 봉오리들은 봄볕에 깨어나곤 했지. 그리곤 이내 서로를 흔들어 깨웠어. 순식간에 마당은 꽃이 발화한 언어로 가득했단다. 부드러운 말을 품고 담장 밖으로 날아가는 꽃잎을 바라볼 때면, 내 마음이 축축한 그늘처럼 무거웠어. 동백꽃, 네가 겨울의 끝을 묵묵히 붙잡고 있다면, 살구꽃은 봄을 곳곳에 퍼뜨리는 존재였지. 잎 사이에 숨어 오래 참고 나서야 한 송이만큼의 말을 꺼내는 건 언제나 너였고, 살구꽃은 침묵보다 말이 먼저 터졌단다. 동백꽃이 어머님의 점잖은 성정이라면, 나는 봄볕에 팔랑이던 살구꽃을 닮았지. 목련 나뭇가지에 솜털이 오르자, 어머님은 거실에서 겨울을 보낸 화분들을 하나둘 밖으로 내놓았지. 집안의 대소사는 단단하게 이끌었지만, 화초를 가꾸는 일에는 아이처럼 조바심을 내곤 했지.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맑은 공기를 접한 건 늘 너였고. 꽃이 떨어질세라 발걸음 하나에도 진중한 마음을 담은 걸 난 그저 지켜보았단다. 어머님에게 몹쓸 병이 찾아왔던 그해 여름, 네 잎은 눈에 띄게 거칠어지더구나. 윤기를 잃더니 점차 바스러질 준비를 하고 있었어. 우연이었을까. 어머님은 이상한 선망을 보았다며 한숨을 쉬었지. 버스를 타고 올림픽대교를 건너는데 당신이 탄 버스가 한강으로 떨어졌다는 생생한 이야기였어. 기억은 물속으로 가라앉았지만,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 직장암 선고를 받은 어머님의 시간은 급류처럼 흘렀고 오 년 동안 투병하셨지. 어머님이 명운을 달리하기 몇 달 전, 너는 네 송이 꽃을 피웠지, 줄기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린 듯 위태로워 보였단다. 살짝 쓰다듬었을 뿐인데 네 송이 꽃이 약속이나 한 듯 떨어지고 말았지. 너의 낙화를 어머님이 볼세라 가슴 졸였던 걸 아는지 모르겠다. 네가 어머님을 기다렸을 시간만큼이나 병상을 지키던 나도 버거웠단다. 어머님이 떠난 뒤, 집에 남아 있던 화분들은 하나둘 사라졌어. 어머님처럼 화초를 가꾸거나 오래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은 터라 화분을 보내기는 어렵지 않았단다. 너도 알았겠지 끝내 나는 곁에 남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을. 이런 이야기 들어봤니. 어느 봄날, 현종이 궁중을 산책하다가 연못가에 핀 모란을 보게 되었지. 그는 신하들에게 말했단다. “저 연못에 핀 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알아듣는 꽃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그건 바로 옆에 있던 양귀비를 가리켜 한 말이지. 그래서 양귀비를 ‘해어화’라 불렀다지. 그날, 연못가에 핀 모란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지. 꽃이라고 감정이 없겠냐고. 자신에게 맘을 쏟으면 그게 사람이든 꽃이든 마음이 닿게 마련이거든. 그러니 어머님도 마음을 알아주는 꽃을 더 마음에 두었던 게 분명하단다. 너 동백이야말로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을 테니까. 어머님의 해어화는 동백 너였음을 인정하지만 생각해보렴. 정원에 살구나무가 없었다면 그 무거운 침묵을 어떻게 견뎠을까. 사람에겐 마음을 나눌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걸 어머님은 아셨던 게야.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야 동백도 살구꽃도 해어화였다는 걸. 이제 겨울의 황량함 속에서도 의연하던 너의 언어가 내 삶으로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26년 <수필과비평>5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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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화/김옥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2 해어화는 <수필과비평>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최연실 부회장님이 다리를 다쳐서 늦게야 보낸다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미안하긴요. 다친 부회장님 병문안도 못갔는걸요^^. 편리한 세상이라서
앉아서 글을 받아서 올립니다.
해어화 좀 생소했어요.
넷플릭스에 검색을 했더니 1916년에 개봉한 영화가 있었군요. 수필이랑은 별개지만 덕분에 영화
한편 보게 되었어요^^ ^^
우리는 꽃을 가꾸다 보면 꽃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지요. 연실샘 어머님도 꽃을 좋아하시고
꽃들과 소통 했을 것 같군요.
'해어화' 누구에게나 특별히 아끼는 꽃이 있지요.
잘 읽었습니다. 최선생님 빨리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난 이제 많이 회복되어서 키보드도 잘 치니까 회원님들 발표된 작품은
사양말고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