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성희 교수가 권하는 생각처방전'의 일부 원고들입니다. 우리 가페가 한산한 거 같아서 걍 올리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소위 1차원적 방법들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제부터 둘째 방법, 즉 생각의 틀에 변형을 일으킴으로써 기분을 바꾸는 2차원적 방법을 살펴봅시다. 2차원적 방법은 자료가 풍부하여 세 갈래로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1) 고통스런 경험에 대하여
* 음미하기
⌀ 암에 걸려 치유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가 회생된 사람의 말입니다. “내가 세운 목표가 일상에서 음미할 수 있는 삶의 가치로움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암을 극복하고 다시는 고통 받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표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온전한 삶에서는 고통 역시 괘락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통, 근육통, 치통 같은 모든 고통은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들입니다. 엄청난 기쁨이 그런 것처럼 고통 역시 살아있을 때 접할 수 있는 체험일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입니다.”
우리 삶에서 고통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고통이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죽하면 어느 종교에서는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정의했을까요. 이렇게 고통이 우리 삶에 붙박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피하기보다 차라리 깊이 음미하는 편이 낫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유명한 속설도 있잖습니까. 실제로 고통을 피하는 대신 이를 음미할 대상으로 여겨 마음을 적극적으로 바꾸면 오히려 고통의 강도가 훨씬 줄어들기도 합니다. 손이나 발이 무엇엔가 부딪쳐 고통을 느낄 때 아프다고 수선을 떠는 대신에 차분하게 아픈 자리를 지켜보고 통증을 느껴보세요. 아마 통증이 덜해지고 훨씬 더 빨리 가라앉을 겁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음미하면 세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네요.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맛보게 하는 효과,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 그리고 통증이 빨리 가라앉는 효과 말입니다. 여기에다 신호 효과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고통은 또한 우리 몸에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없다면 몸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고통을 음미하라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