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용서하다는 동사는 희랍어로
<aphiemi/아피에미>란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과거의 허물 죄악 실수가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결과까지
완전히 백지화시켜 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용서는
상대와 관계없이 나 자신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고, 박해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라>는
영생의 복음적 가치관에 따라
내가 하는 것이다.
용서는 용서의 대상과 관계없이
내가 하는 것이고, 피해자의 특권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화해(reconciliatio)는
상대와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서로 무슨
상처를 주고 받았고
오해와 불신과 미움이 있는지를 함께
나누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풀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의 과정 전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분노가 일어나는 장소와
사람과 환경을 피하고,
등산 산책 운전 운동 등으로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과 성체와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낮추고, 교만과 폭력으로
가득찬 자신의 마음을 겸손과 온유의
예수님의 마음 앞에 내려놓고,
예수 성심 호칭 기도를 해 본다.
또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동정심과 연민의 정을 갖고,
그가 하느님의 초자연적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그에게 필요한 회개와 변화의 은총을
빌어주면 된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 마을에
들어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모두 싸우고
불화가 발생한 것을 보고 기도를 하니,
성인의 눈에는 시커먼 마귀들이
다 떠나가는 것이 보였다.
분노와 분렬, 불목과 불화 뒤에는
일치와 애덕과 평화를 깨는 마귀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분노가 일어났을 때, 나 뒤에
누가 있나? 도대체
나를 화나게 하는 세력이 무엇인가?
나를 화나게 해서 무엇을 얻고
어떤 결과를 도출하려 하나?
내가 화를 냈을 때 어떤 결과가
도래하겠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인간 본성과 약점과 죄성을
잘 아는 원수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마귀의 의도를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인간 본성은
우리 자신을 하느님과 이간질시키고,
인간끼리도 갈라 놓으려고
집요하게 끝까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어둠의 영(음영/shadow spirit)에
휘둘리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