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레이스의 유래
- 1971년 여름 해가 서산에 넘어갈 무렵, 志賀(시가)島 漁港 구석에 5척의 요트가 어깨를 나란히 계류하고 있었는데,
데크 위에는 10여명의 요트맨들이 빵조각을 씹으면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하고 있었다.
- 당시 큐슈 博多(하카다)港, 가라츠(唐津)港의 여러 어항의 후미진 구석에는 몇몇 요트가 외톨박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요트맨들이 서로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 이 5척의 요트맨 가운데 모리와키氏의 제안으로 “후쿠오카外洋요트동호회”가 만들어 졌다.
그 다음해, 나가사키와 사세보 요트맨이 합동으로 히라도에서 만나 “큐슈外洋帆走協會”를 조직하였다.
- 1973년 동 협회 신년회에서, 한국 크루징이 논의되어 “모두 함께 부산으로 몰려가서, 같은 시각에 돌아오면 레이스가 되잖아!”
라는 의견이 모아졌으며
- 이렇게해서, 같은해 4월 말경 10척이 한국을 방문, 5월 3일 부산을 스타트하는 아리랑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즉, 일본의 몇몇 요트맨들이 의기투합하여 아리랑 레이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아리랑 레이스에는“가타쿠라”賞라는 이름의 독특한 賞이 있다.
- 제 4회(1979년)부터 제 10회(1991년)까지 6회 연속 아리랑 레이스에 출전한 여성 요트인인 가타쿠라氏는
1993년 64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는데
- 그녀는 암 투병을 하면서 요트 활동을 하는 등 강한 정신력으로 바다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 6회 출전한 가운데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것은 제 7회 대회의 4위 기록이다.
가타쿠라氏의 기록을 영원히 기념하고 공적과 투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가타쿠라”賞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