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성모님께 배우는 세가지 가르침 “제자리, 성소, 순종”
2025.12.8.월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창세3,9-15.20 에페1,3-6.11-12 루카1,26-38
"두려워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이사43,1)
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대림시기 성모님께 귀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참 경사스런 날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를 낳을 몸으로 예비되었기에 하느님으로부터 원죄없이 태어나는 특은을 받았다’는 교리입니다. 초기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을 1854년 12월8일 교황 비오 9세가 발표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회칙을 통해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는 확정적으로 선포되고 믿을 교리가 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자기의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 은총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되셨다.”
한국교회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수호자로 정해줄 것을 청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이 요청을 허락함으로 명실공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성모님은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비단 한국교회뿐 아니라 대한민국-한반도의 수호성녀 마리아 성모님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외치는 “성모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기도입니다.
“어머니!”란 호칭보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가까운 호칭도 없을 것입니다. 노년에 쓸쓸히 요양원에서 병고중에 특히 치매로 말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어머니들을 대하면 참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에게는 네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마리아 성모님, 어머니인 교회, 이미 타계하신 육신의 어머니, 그리고 구암리카페로 변한 고향집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저절로 고향집을 찾게 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찾았습니다. 영원한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 다음 고향집과 더불어 육신의 어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선종 3개월중 써놨던 시, <어머니를 그리며> 중반부 내용입니다.
"그 흔한 종교나 신앙없이도
웃음은 없으셨어도
한결같이 사셨던 내 어머니
삶자체가 기도였고 신앙이셨다
이리저리 감정에 연약하게 흔들렸던 분이셨다면
그 험한 세상 세월에
다섯 남매 어떻게 키웠을 것인가
'외롭다'거나 '그립다'거니 감정 표현 없이도
따사로운 남편 사랑 없이도
흔들림없이 꿋꿋이 가정을 지켜오신 내 어머니”<2005.3. >
이제는 육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오로지 어머니인 교회 사랑으로, 마리아 성모님 사랑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특히 말씀을 바탕으로 신망애의 모범인 영원한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께 배우는 세 가르침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제자리에 충실하라!”
오늘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실패를 일거에 만회하는 마리아 성모님의 활약이 참 통쾌합니다. 하느님이 아담에게 묻던, “너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화두처럼 우리의 제자리를 확인하게 합니다. 죄를 지음으로 제자리를 상실한 아담은 두려워 숨습니다. 제자리에 충실한 무죄한 삶이었다면 “예, 여기 있습니다!”응답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아담이요 하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완전히 분열된, 파괴된, 회복불능의 관계들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실패를 만회한, 제자리의 정주에 충실했던 나자렛 시골의 마리아 성모님이였습니다. 겸손한 하느님 아버지의 인내가 놀랍습니다. 아담과 하와이후로 얼마나 장구한 세월을 기다렸겠는지요! 마침내 눈밝은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 마리아를 찾아 만나게 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제자리의 정주생활에 충실했던 마리아를 발견한 기쁨에 환호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약여합니다. 새삼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 몫의 사명에 묵묵히 충실할 때 찾아 축복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배웁니다.
둘째, “성소에 충실하라!”
마리아 성모님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 하나하나가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불림받은 유일무이한 고유한 성소자들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맞습니다. 이래야 존재감 충만한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에페소서의 하느님 찬가가 참 깊고 아름다우며 은혜롭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매주 월요일 저녁기도때 마다 바치는 찬미가입니다. 오늘 전례에서는 일부 생략됐지만 3절에서 14절까지 한문장으로 단숨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노래하는 찬미가입니다. 이 찬미가에서 하느님은 모든 동사의 주어로 나옵니다. 마리아 성모님은 물론 우리의 복된 신원이, 성소가 그대로 환히 계시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주어로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할 때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요 우리의 성소입니다.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신의 한 수>와도 같은 섭리적 존재임을 확인한다면 도저히 함부로, 되는대로, 생각없이, 영혼없이 막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 성모님은 물론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은총의 성소에 충실할 때 진짜 참나를 사는 참기쁨에 참행복의 삶일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사회교리주간입니다. 사회교리를 잘 배워 인권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 불림받은 고귀한 유일무이한 성소에 충실하는 것이 우선적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순종의 여정에 충실하라!”
산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요, 순종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아드님처럼 평생 비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 순종의 여정에 충실했던 <예스맨> 성모님이셨습니다. 침묵과 경청, 관상과 렉시오디비나의 대가! 마리아 성모님을 하느님은 얼마나 신뢰하셨는지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속내를 다 밝히는 하느님입니다. 마침내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의 응답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응답이 나오기전 산천초목이 침묵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주석합니다. 하느님도 얼마나 조마조마 초조했겠는지요! 마리아의 응답에 인류구원의 역사가 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혼자서의 일방적 노력이 아니라 인간의 협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의 순종에 주님의 천사는 마리아를 떠났고, 후에 마리아가 영원한 영적도반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엘리사벳의 칭송을 받습니다. 이렇게 그의 순종이 응답이 옳았음을 확인받았을 때 마리아 성모님은 하늘을 나르듯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라고 믿으신 분!”
탓할 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부족입니다. 순종의 삶으로 검증되는 믿음이요 순종과 더불어 깊어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순종의 여정, 믿음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좋은 도움을 주시며 신신당부하십니다.
“1.제자리에 충실하라!
2.성소에 충실하라!
3.순종의 여정에 충실하라!”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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