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 참 권위의 힘
2026.1.13.연중 제1주간 화요일 사무상1,9-20 마르1,21ㄴ-28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하느님은 멀리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엊그제 주님 세례 축일시 레오 교황의 강론중 한말씀입니다. 늘 함께 계신 하느님이시기에 아주 가까이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삶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교황청에 속한 직원들의 아기들 20명에게 세례를 주면서 교황의 강론중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이 이제 아기들의 삶의 의미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미 이런 세례 전통은 1981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시작됐으니 45년 역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바로 교황의 이런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권위의 힘, 권위있는 삶입니다. 갑자기 떠오른, 언젠가 인용했던 어느 형제가 부인에게 남겼다는 임종어가 세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1.미안하다, 2.고맙다, 3.사랑한다.”
이 세 말마디에 마음의 앙금은 눈녹듯 사라지고 죽은 남편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자매의 고백입니다. 이런 임종어를 남긴 형제님 필시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 충실했음이 분명합니다. 이런 진솔한 고백이 신뢰와 더불어 권위를 보장해 줍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이웃들에게 또 하느님에게 고백할 말마디는 이 셋뿐일 것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 참 권위의 힘”입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살아있는 권위는 인간 삶의 필수입니다. 사람이 신뢰의 상실로 권위가 추락하면 신뢰도 권위도 회복 불능입니다. 크든 작든 신뢰와 권위를 잃으면 자신은 물론 공동체도 무너지고 위태해집니다. 권위는 무엇입니까? 아주 오래전 신학교 희랍어 시간에 들은 권위란 뜻을 잊지 못합니다.
희랍어 “엑스 오우시아(ex-ousia)”, 바로 '존재로부터 나온' 권위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나온 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런 참된 권위는 재물이나 명예, 지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권위있는 사람은 초라한 의상속에서도 내면으로부터 빛나는 권위입니다. 이래야 권위의 힘입니다.
우리에게 참 권위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이런 참 권위의 중심이 없으면 개인도 공동체도 곧 무질서로 무너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예수님의 참 권위를 알아 본 카파르나움의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몹시 놀랍니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말그대로 이런 권위는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권위는 악령 추방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본 더러운 영, 악령에 대해 예수님은 권위있는 명령으로 그를 제압합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은 다음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갑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 고백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예수님의 참 권위가, 참 권위의 힘이 악령을 쫓아낸 것입니다.
진정 권위의 힘, 권위있는 삶을 원하십니까? 답은 하나 예수님처럼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 지극히 충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권위의 힘, 권위있는 삶이요, 누구나 승복하는 참 권위입니다. 그러니 섬김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믿고 사랑하면서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질 때 주님을 닮아 참 섬김의 삶, 참 권위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엘카나의 아내 한나가 불안에서 벗어나 중심을 잡고 안정을 찾는데 엘리 사제의 섬김의 권위가 큰 역할을 합니다. 한나의 기도가 응답되어 엘리가 권위있게 섬김의 역할을 훌륭히 해냄으로 한나도 안정과 평화를 찾습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한나의 겸손하고도 한결같은 기도를 통해 그녀가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에 지극히 충실했음을 봅니다. 오늘 미사중 화답송은 한나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찬미가입니다. 그 어머니 한나에 그 아들 사무엘입니다. 때가 되자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한나는 “내가 청을 드려 얻었다.”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니, 이런 한나 어머니의 하느님 중심의 삶도 장차 사무엘의 기도와 섬김, 권위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고, 노인은 많으나 어른은 없는 시대라고 개탄합니다. 신뢰와 권위도 보고 배웁니다. 보고 배울 스승이나 어른이 없어 날로 신뢰와 권위를 잃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인공지능 AI만능시대라 해도 AI가 인격을 지닌 스승이나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정작 회복하여 지켜내야 할 하느님 중심의 신뢰와 섬김의 삶이요 권위있는 삶입니다. 바로 이런 <섬김의 권위>의 빛나는 모범이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인 예수님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삶의 중심인 예수님을 닮아 날로 하느님 중심의 섬김의 삶, 권위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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