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뱍물관에 있는 죽계제월교비
영주 소수서원 앞 ㅡ제월교
경북 영주 하고도 순흥 부석사 가기전 소수서원 근처에 자그마하게 볼품없는
나무 다리가 하나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 다리를 "청다리"라 부른다
지금은 비록 시멘트 다리로 번듯하게 놓았지만 예전에는 두 해마다 새로 놓는
나무다리였다고 한다 일반 다리와 별차이가 없다보니 오늘날에는 무심히 사람들과
차량만이 오갈뿐이다 하지만 이 다리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재미있고도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 밑에서 줒어왔다"
어릴때 어머니와 이웃동네에서 놀러온 어른들로부터 가끔 이런 놀림을 받고
참으로 많이도 울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이말의 유래가 어디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
현재 제월교(청다리)
하지만 나중에 부석사 답사를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을수가 있었다
그 다리가 바로 소수서원 앞에 있는 "청다리(제월교)라는것을 ......
죽계천을 건너는 다리 제월교(霽月橋) 청다리이다.
옛날 순흥에는 나그네, 선비, 관원들이 많아 청루주사라 일컫던 기생집, 술집도 즐비했다
. 눈이 맞아 기생들이 아기를 낳게 되면 모두 청다리 아래에 버리고 대신 아기 없는 사람들은
청다리 밑에서 아기를 주워다 길렀다 한다. 청다리는 소수서원 뒤편 죽계 냇물에 놓인 다리이다.
이퇴계가 이름한 제월교 비석이 다리목에 있다.
새로 만든 제월교비
단종 복위사건으로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자
그에 동조했던 이 지역 수백명의 선비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몰살 되었다
그 처형을 했던 장소가 소수서원 앞 제월교다
그때 어렵사리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키운데서 '청다리 밑에서 줒어온 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전해온다 암울하고 참담했던 역사가 끝나고 훗날 선비들은
""개성 송도에는 선죽교요 순흥에는 "제월교""라 했듯이 청다리는 충절이 배어 있는 다리입니다
하지만 일제때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통치에 걸림돌이 되었던 유림들을 없애고자
유생들이 연애하여 낳은 자식들을 버린 다리라고 왜곡시켰다
1550년에 풍기 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임금께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자
, 소수서원에 공부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은 주로 젊은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이
그 지역의 처녀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부터 정이 들어 임신을 하였는데, 양쪽 모두 아이를
기를 형편은 안 되었다 그런데, 유교사회였던 조선조 사회에서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당사자 집안에서는 비밀리에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갓 태어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한 밤중에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 밑에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버려진 아이는
누군가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이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비라면 최고의
신분이고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핏줄을 데려가 기르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 없는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도착한 다음날 새벽에 아이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운이 나쁘면 몇 달씩을 기다려서 아이를
얻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유래가 생겨났다
효불효 전설(살아있는 부모에게는 효도지만 죽은 부모에게는
불효가 되는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의 일이었다.
소백산에서 내려온 물이 죽계구곡을 지나 지금의 청다리 부근으로 흘러오는데,
그 때까지 이곳에는 물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다고 한다.
죽계천의 남쪽 마을에는 아들을 하나 둔 과부가 있었는데,
이 과부는 청춘에 홀로 되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키우면서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죽계천 북쪽에는 짚신을 삼아서 파는
짚신장수 홀애비가 살고 있었다.
이 짚신장수 홀애비가 순흥 시장에 짚신을 팔러왔다가
과부와 눈이 맞아서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연애가 금지되었던
옛날 사회에서는 두 연인이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인지
밤중이 되면 과부는 죽계천의 물을 건너서 짚신장수를 만나곤 하였다.
봄이나 여름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추운 겨울에 발을 적셔가며 물을 건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돌다리를 놓아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돌다리도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건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순흥 고을로 중앙에서 높은 분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은 높은 분이 지나갈 때를 기다려서
그 앞에 나가 어머니의 일을 고하고
다리를 놓아달라고 청을 넣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정을 들은 높은 사람은
아들의 효성이 지극하여 다리를 놓아주게 되었는데,
청을 넣어서 놓은 다리이기 때문에 청다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다리는 돌아가선 아버지를 위해서는
불효를 저지르게 된 다리이고,
살아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효도를 하게 된 것이니
불효라고도 하기 어렵지만 효도라고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이 다리를 효불효다리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