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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ㅡ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작성자발해|작성시간26.06.09|조회수13 목록 댓글 0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생지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왜 몰라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남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남자 있겠지

 

싫으면 말어라 너만이 여자더냐
산 넘구 물 건너면 또 여자 있겠지

 


오늘 갔다가 내일 온다면 나는 안따라가지만
오늘 갔다가 모레 온다면 나는 따라가요

 

영감아 홍감아 집잘보고 있거라
잠자리 팔아서 엿사다 줌세

 

원앙금침에 잣비개는 저녁마다 비련만
대장부 긴긴 팔은 언제나 비나

‘제32회 아우라지 뗏목 축제’ 안내 포스터. 정선군 제공

 

혹시 떼돈 번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옛날 군수 월급이 20원일 때 뗏목을 타고 영월가서 팔면 30원 받았던 것이 떼돈이다

 

정선에는 궁궐이나 고관대작의 저택을 지을 때 기둥으로 사용하는 황장목이 많았다. 그 황장목을

 

남한강 1천 리  물길을 따라 서울로 운반하는 뗏목의 시발점이 아우라지였다. 장마철 뗏목을 이끌다가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나무에 부딪혀 허리를 다치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운반한 뗏목이 마포나루터에 도착하면 뗏목꾼들은 큰돈을 만질 수가 있었다. '떼돈'이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구절리에서 내려온 송천과 임계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두 물줄기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물난리를 겪지 않는다.

 

이렇게 '어우러진다'는 말에서 '아우라지'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정선 아우라지 뗏목 제례 봉행(자료사진)

 

오래 전 남한강 상류인 아우라지에서 조선말 대원군의 경북궁 중수시 사용된 많은 목재를 때로 엮어

 

한양으로 보냈다 하며,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멧꾼들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숱한 에환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으로 정선아리랑의 가사 유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달프게 기다리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남아 널리 불리고 있다

아우라지 뱃사공은 배삯을 마을 사람들로 부터 집집마다 쌀이나 콩으로 1년에 한 번씩 받았다고 한다

 

8.15 해방 무렵 아우라지 뱃사공은 지씨였는데 장고를 하도 잘 쳐서 지장구아저씨로 통했다

 

정선아리랑에서 “아우라지 뱃사공아”는 본래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두 아들이 6.25때 인민군에 부역했다고 해서 70년대 정선군청에서 가요집을 내면서

 

뱃사공아로 바꾸어 버렸다 민족분단의 아픔이자 쓴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을 나누던 처녀 총각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간밤에 폭우로 인해 불어난 물줄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자 그립고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하여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 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난 못살겠네"

 

라는 가사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정선아리랑은 500곡이 넘는다고 한다

 

아리랑은 전국에 고루 퍼져 있는 우리 민족의 노래이지만 아쉽게도 정확한 유래와 말뜻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정선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영남의 밀양아리링 등

 

3대 아리랑이 있다고 한다 밀양아리랑은 정자소리조로 씩씩하고 진도아리랑은 육자배기조로 구성지고

 

정선아리랑은 매나리조로 유장하다 그런 중 오직 정선아리랑만이 <강원도 시도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아리랑은 본시 논노래 들노래 베틀노래 뗏목노래 등 민초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노동요가

 

1865년 경복궁 중수 때 팔도에서 모여든 부역꾼들이 각지의 일노래를 주고받는 가운데 보편성과 지역성이

 

동시에 어우러져 민족의 노래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중 흥겨운 가사와 가락은 궁중으로 들어가 고종과 민비가

 

즐기는 바가 되었다고 한다

‘제32회 아우라지 뗏목 축제’ 안내 포스터. 정선군 제공

 

이곳에서 뗏목을 띄우면 영월의 강줄기를 지나 단양을 거쳐 충주호로 흘러들고

 

충주호에서 여주를 거쳐 양평 양수리 쪽으로 흘러들다가 바로 그곳에서 한양 마포나루까지 올 수 있다

아우라지는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삼척시 중봉산에서 흐르는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하여 어우러진다.'

 

고 기재되어 있다.두 하천이 어우러지는, 아우러지는 자리에 발달한 동네가 정선군 여량이고

 

여량이라는 뜻은 토지가 비옥하여 농작물이 풍작을 이루니 식량이 남아돌아 여량이라고 했다

정선시외버스터미널 , 정선아우라지는 "봄날은 간다"영화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님을 기다리는 아우라지 처녀상

 

전해오는 이야기는 40년 전쯤 어느 혼례식날 신랑 신부와 마을 하객을 태운 나룻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신랑만 남고 모두 익사해버린 대형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신부는 강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마채 휩쓸려갔다 그래서 이 동네는 지금도 3월이면 같은 날 제사가 많다고 한다

 

그 후 해마다 익사사고가 잇따르자 22년 ㅡ23년 전 이 동상을 세워 신부의 원혼을 달래주고

 

있다고 하는데 이 처녀상을 세우고 나서는 사람이 빠져 죽는 일이 없어져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의 기원설화는 두 가지로 전해지는데

 

지금부터 약 600년 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무렵  조선창업을 반대한 고려 유신 72명이

 

송도(개성) 근처인 두문동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며  망국의 한을 삭였다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회유와 협박을

 

했지만 요지부동이자  이에 화가 난  이성계가 두문동을 에워싸고 불울 질러 다수의 충신들이 죽고 

 

  그 중 살아남은 일곱명의 충신들은 강원도 정선 고한

 

백이산 골짜기에 두문불출하며 살았던 곳이 현재 정선군 남면 '거칠현동'(居七賢洞)이다

그들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며 여생을 백이산에서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았다.

 

백이산은 수양산에 들어 고사리로 연명했다는 중국 백이, 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곱 명의 고려 유신은 매일 산정에 올라 옛 도읍지에 절하고 한시를 지어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이들이 지은 한시는 ‘정선아리랑’의 시초가 됐다

어려운 한시를 우리말로 푼 뒤 장단을 입힌 것이 구전돼 정선아리랑이 됐다는 것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정선아리랑 가사 중 일부다.'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라는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의미했고,

 

'만수산'은 고려 도읍 개경에 있는 산 이름이다

다른 설화는  아우라지 나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마을, 즉 여랑리와 유천리의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랑을 하였다. 여랑리 처녀는 날마다 싸리골 동백을 따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유천리로 건너가 정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여름 장마로 홍수가 져 물을 못 건너가게 되자 총각을 만날 수 없게 된 처녀가

 

이를 원망하여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최근 정선에 또 다른 볼거리가 생겨났다. 코레일이  아우라지역에서 민둥산역까지 오가는 아리랑 열차를

 

개통했다.태백산 협곡을 1시간가량 달리는 환상적인 코스다. 아라랑 열차 카페 칸에는 여승무원들이

 

부채춤을  추며 정선아리랑을 열창하는 등 각종 이벤트를 진행한다. 그렇게 피로를 풀고 철암역에 도착하면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아우라지역

 

아우라지역은 원래는 이 동네의 지명인 여량역이었는데 2000년 아우라지 역으로 변경을 했다

 

. 아우라지역은 현재는 폐역으로 레일바이크 종착지다

정선 아우라지 주막촌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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