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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사람을 ㅡ 아시는지요?

작성자발해|작성시간26.06.11|조회수51 목록 댓글 2

대구 우륵마을

<대구 우륵동 녹동서원>

 

<들어가는 글>

 

나라의 땅이 조금씩 바다에 가라 앉으므로 정신이 혼미해 중국 땅 일부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다

 

그도저도 아닌 정신에  독도망언을 주절대는 너희 나라   일본

  

그것도 모자라 정신대 소녀상에 일개 한나라 국회의원이  독도망언을 적은

 

나무 말뚝을 박고 역사왜곡 날조의 한심스러운 작태와 가증스러움의 극치를 보면서

 

 이 글을 남긴다

그대 나라에 묻는다

 

혹시 이분이 누구신지  알겠는가 ?

 

존재조차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현재 대구 우록동 녹동서원에

 

모셔져 있고 그대 나라에서 온  모하당 김충선장군이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그대 나라 풍신수길의 오른팔인 가등청정의  우선봉장으로

 

참전했던 왜장 사야가 장군이기도 하시다 애시당초 명분없는 전쟁에 회의를 품고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조선에 귀화한 후 경상도병마절도사로

 

  8차례  왜군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이괄의 난으로 공을 세워

 

조선에서 심란공신이라는 칭호를 얻으신 분이다

 

그동안 오래도록 그대 나라  역사학자의 증오의 대상이었고 조선이 꾸민 조작극이라던 했던

 

바로  그 분이기도 하시다

그대 나라 소설가 시바료타로가 한나라기행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왜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소개하였고 1992년 임진왜란 400주년을 맞아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NHK방송에서

 

 출병에 대의없다- 히데요시에게 ㅡ등돌린 사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 되면서

 

존재조차 부정되거나 매국노로 치부되던 사야가는

 

이때부터 명분없는 침략전쟁을 거부한 인도주의자로 다시 살아나

 

학생 /주부/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본인들이

 

현재까지 대구 우륵마을을 찾아 오고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그대 나라의 위정자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아직도 잠꼬대처럼 독도망발을   주절대는데 그런 논리라면

 

역사적으로 대마도가 조선땅이ㅡ아니던가

.
본디 그대 나라의 아키토천황도 2001년 12월23일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지 않았던가

 

아직도 독도를 그대 땅이라 잠꼬대하는가?

 

ㅡ   2012년 7월 7일 녹동서원 답사에서 ㅡ

ㅡ향양문-

 

태양을 그리워한다는 뜻

 

김충선은 바람부는 날이면 고향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옛조국 일본에 대한  그리움을 알 수있으며

 

김충선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 대구 우륵동 녹동서원 전경>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여 춘추로 재향하는 녹동서원은 충절보국의 삶을 산 김충선 장군의 위업을 기려

 

영조 말년 부터 삼도유림이 한 뜻으로 합소하고 정조(1789년)에 다시 유림들이 공의를 모아 간하여

 

정조(1794년) 준공 봉안 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패령으로  훼철 되었다가 고종(1885년)에 영남유림과 

 

사성김해김씨 문중이 합심하여 재건 하였으며 ,1971년 국고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모하당김공유적비(慕夏公金公 遺蹟碑)

ㅡ신도비-

 

임진왜란 4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 5월에 세웠다

한일 우호관 내부모습

김충선 장군에게 선조 임금이  성과 이름을 하사 할때 바다를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金)을 얻었다고 해서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성과 충선(金忠)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원래의 김해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사성(賜姓)김해김씨라 불렀는데 사성(賜姓)이란 임금이 내려준 성씨를 말한다 사성김해김씨는  우리나라에

 

귀화한 여러 귀화 성씨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계 성씨로 김충선 장군이 사성(賜姓)김해김씨(金海金氏) 

 

조가 되었고 전한다

그 후손으로는

 

김치열 : 제13대 검찰총장, 제27대 법무부 장관, 제37대 내무부 장관이 있고 

 

사성(賜姓) 김해김(金海金氏) 김충선장군의 후손은 약 8,000여명이다

모하당문집

 

"나는 섬오랑캐다. 임진년에 청정(加藤淸正·가토 기요마사)이 의리 없이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치려

 

 할 때 나를 선봉으로 삼았다. (나는) 변방의 비루한 세속에 마음이 없고 중하(中夏·중국)의 빛나는

 

예속(禮俗)에 뜻이 있었다." 시바 로타료의 사야가 취재는 모하당문집에 적힌 이런 일련의 문장에서

 

시작한다. 임란에 참전한 일본 장졸 16만여 명의 신상기록에 사야가란 인물이 없는 점을 미루어

 

사야가는 본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본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보복을 뻔히 알면서 본명을 밝히고

 

 조선에 귀화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는 1998년 한일 양국 교과서에 실렸다

충절관

 

후손과 그를 추모하는 일본인 그리고 대구시의 후원금등으로 건립된 충절관에는

 

 임진왜란 사용되었던 조총을 비롯하여 모하당 선생의 유품 유물과 한일 양국의 역사 문화

 

임진왜란 관계도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충절관 내부모습

조총

 

일본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에 귀화한 사야가는 조선군에 조총제작기술과 철포대(일본 조총부대) 전술을 전수했다

 

사야가는 경상우병사 김응서 장군과 함께 경주와 울산 등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충과 선을 행하라’는 의미로 김충선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고(賜姓),

 

광해군 10년 정헌대부(정2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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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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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물바람 | 작성시간 26.06.11 발해님 덕분에
    김충선에 대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발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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