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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성경구절말씀-성전실체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때,성소의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음 / 신약시대 이후 성전과 법궤

작성자엘로힘|작성시간23.07.29|조회수182 목록 댓글 0

하나님이신예수탄생 구약성경예언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1021?searchView=Y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고난 구약성경 예언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1009?searchView=Y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찣어짐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1177?svc=cafeapp
구원은 값없이 거저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피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1176?svc=cafeapp
하나님이신 예수님 부활 구약성경 예언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1016?searchVie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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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 이후 성전과 법궤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때 휘장이 아래에서 위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

법궤는 하나님말씀을 상징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죄우선으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회개와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한다
법궤를 앞세우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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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모음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고후5:3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고후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고후5:5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고후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1:2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요1:5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요1:8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요1:9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요1: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요1:11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요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1:13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마1:18 ¶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나매
마1:19 그때에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그녀를 공개적인 본보기로 삼기를 원치 아니하여 은밀히 그녀를 버리려고 마음먹었으나
마1:20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마1: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마1:22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마1: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사53:2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사53: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사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7 그는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끌려가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사53:8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
사53:9 또 그는 사악한 자들과 더불어 자기 무덤을 만들었으며 죽어서는 부자와 함께하였으니 이는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속임수가 없었기 때문이라.
사53:10 ¶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를 고통에 두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로다.


계21:3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계21:4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계21:5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이 말들은 참되고 신실하니 기록하라, 하시며
계21:6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출처 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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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00619&seq=725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성막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사람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늘 느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성막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전으로 연결됩니다.
성막은 땅에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막은 독특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것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겉을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성막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애굽이나 이방의 신전, 신상들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했습니다. 그에 비해 성막은 매우 초라했습니다.

성막을 화려하게 짓게 하지 않으시고 초라하게 짓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겉모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는 우리가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이 예수님 안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진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지상의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이래야 합니다. 세상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비교하면 교회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겉모습은 평범해 보여도, 그 속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말에 기품이 있습니다. 눈빛이 다릅니다. 행동이 다릅니다. 삶이 다릅니다.

성막은 성전으로 발전합니다. 성전은 화려해졌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굉장히 화려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헤롯 성전이 있었습니다. 헤롯 성전 역시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전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 되십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아래에서 위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성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성전은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전 것을 파괴하시고 새 것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성전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중요합니다.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중요합니다.
성막의 겉모양은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성막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이 약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라하지 않습니다.

시인 송명희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몸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굉장히 순결하고 고결하고 아름답습니다.
반대로 몸은 멋지지만, 그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사인이 성막 속에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내딛자 물이 갈라졌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능력이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문제를 향해 돌진해보세요. 정면 돌파할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언약궤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문제를 향해 나아가보세요.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세상 사람들은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신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길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답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벽은 길이 되고, 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을 때를 보세요. 전략이나 전술,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작전도 없었습니다.
법궤를 앞세우고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았을 뿐입니다.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이전의 경험이나 세상의 경험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법궤를 중심으로 하여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았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번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 땅의 진정한 원주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재탈환하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자 안에 갇혀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사람을 축복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쓸 이유가 없습니다. 머리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머리싸움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법궤를 앞세우기만 하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법궤를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합니다. 말씀이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배를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전 영역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모두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가 삶의 중심에 놓여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읊조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에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삶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는 삶의 영향력이 넓어져야 합니다. 뒤로 밀려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법궤와 함께 가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신앙생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법궤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법궤를 뒤에 두어도 안 됩니다. 법궤를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법궤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올 때에 감격해 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타락함으로 인해 에덴을 잃어버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안에서 커져가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가십니다. 아름답게 빚어가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강력하게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배가 살아나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동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하여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을 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성령이 폭포수처럼 우리의 삶에 흘러넘쳐 우리를 충만하게 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충만하게 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머리를 더 많이 쓰거나 전략을 더 많이 세울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배가 예배다울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 어둠이 물러갈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보다 강력한 삶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를 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우주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둠이 떠날 것입니다. 사탄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예배자로 언제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출처 http://www.prok.org/gnu/bbs/board.php?bo_table=c_01&wr_id=38848
법궤 속에 는 십계명 돌판 두개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히9:4) 법궤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이 세가지 물품은 삼위 일 체가 되신 하나님을 상징 합니다. 십계명 돌 판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만나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산 떡이라고 하신 (요6:51)성자 하나님을 싹난 지팡이는 죽은 생명을 부활시키는 성령 하나님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가지 성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내려 주시고 또 역사하신 것들입니다 이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으니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서 성막 안에 있었고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난다고 (25:22) 하십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가능한 것은 속죄소에 뿌려진 대속의 피로 말미암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안해낸 방법이요 전적인 하나님께서 설계 하신 것입니다. 율법아래 있게 되면 모두가 죄 아래 있게 되고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아래 있으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이를 모형을 통해서 보여 주시려고 성소를 짓되 내가 네게 보인 식량대로 지으라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법궤에서 십자가의 대속을 상징하는 곳은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입니다. 이 속 죄 소에는 정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어 속죄소 양끝에 두어 서로 얼굴을 대하고 날개 를 펴고서 그 날개들로 속죄소를 덮었습니다.

두 그룹의 날개가 속죄소를 덮은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속량함 (덮는다) 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속죄소 에서 대 제사장 아론을 만나 그의 속죄를 위해 피 뿌림을 통하여 죄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 속죄소는 율법과 은혜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정죄된 인간이 이 속죄소 에서 은혜를 입어 죄 사함을 받 게 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히9:25-26) 법궤가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것은 그 성소가 법궤를 두는집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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