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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성경인물 - 아삽은 누구인가? (시편73편~ 83편) .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찬양대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윗과 동시대

작성자엘로힘|작성시간23.09.24|조회수375 목록 댓글 0

출처 https://likumc.org/cp/?p=596
하나님은 누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고 어떠한 자들이 성가대(찬양대)원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역대상 6장 찬송하는 일을 맡은 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헤만(33장), 아삽(39), 에단(44)

이들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입니다.(대상15:17)에단의 이름은 역대상 16장에서 빠지고 대신 여두둔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많은 성서학자들은 에단과 여두둔이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헤만-겸손한 음악가(영성, 모든 찬양대원, 피아노반주자)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입니다.(대상6:33).

즉 헤만은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무엘의 손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왕조시대에 사무엘의 위치는 절대적…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선지자로, 초대왕과 둘째왕에게 기름을 부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전통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헤만은 어쩌면 다윗의 행적에 손가락질하며 비난할 수있었을 것입니다. 내 할아버지가 세운 자 즉 내 할아버지보다 인간적으로 못한 자…라는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다윗왕의 임명을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네가 나를 정치적, 행정적위치에 앉히지 않고 겨우 노래하는 자에 앉혀”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이 아삽과 그의 자손에 주의를 집중시킵니다.(7절)헤만과 여두둔은 42절에 잠깐 언급되어 다윗의 관심이 헤만에게서 아삽에게로 옮겨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 후부터는 세 음악가의 이름 중 아삽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ex)아삽-헤만-여두둔(대상 25:1) 아삽 여두둔 헤만(대상 25:6) 아삽 헤만 여두문(대하35:15) 그러나 헤만의 이름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등장합니다. (겸손한 음악가)

처음에 아삽은 헤만의 우편에서(대상 6:39) 에단은 좌편에서(대상 6:44) 찬양하던 자들이었지만 아삽의 선두위치에 대하여 헤만은 불만을 갖고 찬양자의 위치를 이탈하지 않은 것입니다. 끝까지 그들과 함께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헤만은 하나님의 전에서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권위에 순종할 줄 알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한 분..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해도 성전의 한 구석에서 하나님을 찬양만 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헤만은 겸손한 하나님의 찬양자였습니다.

2) 아삽-솔직한 음악가(영성, 성가찬양대장)

아삽은 헤만의 오른쪽에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임명받음. 그러나 점차 아삽의 위치는 찬송업무를 도맡아 하던 모든 레위인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의 위치가 왜 그렇게 중요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에 나와있는 12편(시50편, 73-83편)의 아삽의 시를 통해 그가 단순한 음악가만은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성가대장)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니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니라“(시73:1-3)

아삽은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하는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오는 진정한 고민을 하나님께 털어놓을 줄 아는 선지자 하박국과 같은 자였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 완벽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영적인 투명성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투명성은 영적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원망-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신데 정직한 사람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할 텐데 나쁜 사람들이 더욱 잘 되고 착한 사람들은 못사는 것을 보았을 때 아삽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함… 아삽은 거의 실족할 뻔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 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게 깨달았나이다(시73:16-17)”

아삽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제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고민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서 생겨나기도 했지만 그래서 실족할 뻔하기도 했지만 그는 성소를 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소를 찾습니다. 성소를 가까이 하고 어느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길 원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됩니다.

다윗은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앞에서 섬기게”합니다.(대상16:37)

3. 여두둔-뛰어난 음악가(지휘자)

에단과 여두둔은 동일인물

시39, 62,77편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여 한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에단의 손의 지휘에 의하여 부른 노래’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여두둔은 모든 지휘자의 조상이 되는 셈입니다.

다윗이나 아삽도 뛰어난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법칙, 아삽의 법칙에 의하여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음악가로서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당시의 시편 찬송은 모두 새롭게 작곡되어 불리어진 것이 아닙니다. 친숙한 대중적인 멜로디에 의해서 불리워짐.. 예를 들어 시편 57, 58, 59, 75의 찬송은 유대인들이 포도를 따면서 부르는 75편의 ‘복이 담뿍 들었다 터뜨리지말아아(엘다스헷)라는 민요곡족에 맞춘 것이며 56편은 ’떡갈나무위의 비둘기(요낫 엘렘르호김)의 민요에 맞추어 69편은 ‘백합화(소산님lilies)라는 곡족에 맟주어 찬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가 가운데 338장“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챨스 웨슬리가 붙인 가사에 “오래전에”라는 스코틀랜드의 민요에 맞추어 부른 것… 546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도 영국 민요

엔니 로리‘에 맞추어 부른 것입니다.

시편이 세속적인 선율에 맞추어 노래한다는 것을 여두둔같은 천재적인 음악가는 원치 않음..‘여두둔의 법칙에 의지하여’부르는 찬송이라면 아마 여두둔이 스스로 작곡하여 부른 찬송이었을 것입니다.

선율이 자연 발생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시대에 새로운 선율을 작곡하여 하나의 법칙을 만들 정도라면 여두둔은 아삽이나 헤만보다도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삽-헤만-여두둔의 공통점

1. 전문적인 찬양자 (공교히Skillfully 찬양)

그들에겐 찬양하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헤만-아삽-여두둔에게 찬양하는 일이 맡겨졌다는 사실은 하나님 찬양에 책임과 질적인 향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찬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알고 헤만과 아삽과 여두둔을 세워 찬송하는 일을 맡기고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마음이 섭섭하다고 찬양을 쉬지 못합니다. 친구에게 억울한 소리를 들었다고 찬양을 그칠 수 없습니다.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를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찬송은 우리의 상황에 관계없이 꾸준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9:33)

이스라엘 음악은 가나안 원주민들이나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등의 제국들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골방에서 주야로 찬송을 연구하던 아삽, 헤만, 여두둔의 전통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음악은 질적으로 향상하게 되었고 노래 잘하는 민족으로 소문나게 되었습니다.

2 선택된 찬양자

아삽, 헤만, 여두둔은 레위의 자손들..

레위는 야곱과 레아사이에서 태어난 3째아들로 게르손,고핫,므라리 3아들을 낳습니다. 아삽은 게르손의 후손이요. 헤만은 고핫자손이며, 에단은 므라리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민족들에게 있어서 레위인들은 특별한 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그 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역사하신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십니다.(출19:4-6)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택하신 이유는 제사장 나라로 만드시기 위함..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로 선택되었지만 실제 제사장직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중 레위인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레위인들을 제사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고핫자손중 아론의 후손만을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그 중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을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레위인, 제자장, 대제사장들을 이스라엘의 제사장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을 완전하고 순수하게 보존하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합니다.

아삽, 헤만, 여두둔은 일생을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계획이나 꿈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남들처럼 돈을 마음껏 번다든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살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지루한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 제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특권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택에는 나의 반응과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나를 구속하시고 제한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야야 합니다.(독수리 두 날개)

아삽, 헤만, 여두둔의 후손들도 자신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위해 선택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 사람들이 레위인들에게 찬양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수금을 나무에 걸어두고 슬피 울었습니다.(시137:1)



3. 말씀을 받드는 찬양자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은 선견자였습니다.

“이는 다 헤만의 아들들이니 나팔을 부는 자며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대상 25:5)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로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니라”(대하29:30)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대하35:15)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컫었더라‘(삼상9:9)

다시말해 아삽, 헤만, 여두둔은 전문적인 음악가였던 동시에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사람입니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음악인으로서 뜨거운 마음과 선지자로서의 냉철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Head Heart Hand)-요4:23 “신령과 진정(말씀)

백성들가운데 문제를 가지고 오면 상담자의 역할도 했습니다. 국가의 통수권자인 왕의 상담또한 맡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침입하자 급해진 사울왕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 물어보는 것과 같이 왕들은 선견자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에게 나라의 문제에 대하여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이야기는 국적에 깊이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음악가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성경의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음악적인 기술만을 갖춘 딴따라가 아닙니다. 음악은 하나님이 말씀을 최대한 돕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 최대의 목표이기에 성서음악의 비중은 진과 선에 있고 일반종교음악은 진과 선의 기초가 없으므로 미에 그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과 선의 바탕이 없는 미의 방향은 항상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그의 백성인 우리에게 맡겨진 최고의 임무요 특권인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보다 음악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취하도록 합니다. 음악자체는 부드러운 포도주와 같은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은 하나님말씀의 분명한 선포가 있어야 합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jswoo001/221058568711
아삽 (Asaph)
아삽 (영-Asaph; 히-아샆; "모으는 자",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해 모으셨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왔을 때 헤만, 에단과 함께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던 레위인이다(역대상6:39;15:19). 또한 그는 언약궤가 적절한 처소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과 감사를 드리도록 임명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16:4-6). 그는 '아삽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시 50편과 73-83편을 지은 저자로 믿어진다. 대하29:30에 나오는 선견자 아삽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참조. 느12:46).
다윗의 통치 때에 아삽의 아들들은 음악을 통해 예언을 하였으며(대상25:1`2), 후에 그 자손들은 요시야 왕 아래에서 노래하는 자들로 나타나 있다(대하35:15).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참조. 스2:41;느7:44)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하여,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노래를 부르는 자로 또는 연주자로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스3:10). 그들은 후에 여호와의 전에서 레위인들을 감독하고(느11:22), 성벽을 낙헌할 때에는 나팔을 부는 직무를 맡았다(12:35). 아삽은 게르손 자손으로 베레갸의 아들이었다(대상6:39). - 『아가페 성경사전』발췌



1. 출생과 역사적 배경
1) 아삽은 게르손 자손이며 베레갸의 아들이다. 계보는 다음과 같다.
야곱(이스라엘) - 레위 - 게르손 - 야핫 - 시므이 - 심마 - 에단 - 아다야 - 세라 - 에드니 - 말기야 - 바아세야 - 미가엘 - 시므아 - 베레갸 - 아삽 (역대상 6:39~43)

2) 게르손은 레위의 맏아들로(출6:16), 게르손 자손은 광야 시절부터 회막의 휘장들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었다 (민4:21~28).



2. 활동 - [참조] '헤만', '에단'
1)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노래하는 자(musician,singer)'로 평가 받고 있다. 아삽 역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는 역사적인 순간에 등장하게 된다. 레위 사람의 '어른들'은 노래하는 자로 헤만, 아삽, 에단을 다윗에게 천거했다. (대상15:16~17)

2)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찬양대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다. (대상15:19;참조. 느12:46)

3) 언약궤를 성막으로 들인 후, 다윗은 그 앞에서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감사 찬양을 하도록 했는데 아삽은 그 때 두목으로 발탁되었다. 아삽은 제금으로 찬양대를 인도하였는데, 그 찬양대의 구성은 비파와 수금이 합쳐서 9대, 나팔 2대 규모였다. 그 찬송하는 일은 날마다 계속되었다. (대상16:4~6,37)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 (대상16:7)

4)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아삽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가운데 위치한 헤만의 우편에서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 (대상6:31~32,39)

5)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다윗의 수하에서 왕을 돕던 '선견자'였다. (대상25:6;대하29:30)

6)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언약궤를 들여놓던 때까지도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 때의 찬양대 규모는 제금, 비파, 수금, 나팔 등의 악기가 동원된 120명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였다. (대하5:12)

7) 아삽은 악기뿐만 아니라 작시의 소질이 뛰어났던 것 같다. 시편에는 그의 시가 12편이 수록되어 있다(시 50, 73~83편). 아삽의 이러한 소질이 다윗의 신임을 받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대상16:7~36),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시'는 다윗의 시와 함께 여호와께 부르는 찬송으로 널리 권해졌다(대하29:30).

그가 지은 시편에는 '마스길', '알다스헷', '영장', '현악', '여두둔의 법칙', '셀라', 소산님에돗', '깃딧' 등의 음악용어가 풍부하게 나타나있다.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로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니라 (대하29:30)



3. 후손들과 역사적 평가
1) 아삽의 아들들 중 삭굴, 요셉, 느다냐, 아사렐라 네 사람은 헤만, 에단의 자손들과 함께 그 아비들의 수하에 속하여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직분을 맡았다. 그 중 요셉은 첫째로 제비뽑혀 직임을 얻었다. (대상25:1~2,6,9)

2) 성경에서는 특히 아삽의 자손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일컫는다. (대하35:15;스2:41;3:10;느7:44)

3) 여호사밧 왕의 때에 모압과 암몬의 위협을 물리치는 데 압장섰던 레위 사람 야하시엘은 아삽의 자손이었다. 야하시엘은 무력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호와를 찬송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대하20:14~30)

4) 히스기야 왕의 성전 중건을 돕던 레위 사람들 중에는 아삽의 자손 스가랴와 맛다냐가 있다(대하29:13).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다(대하29:30).

5)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1차 명단에는 '노래하는' 아삽 자손이 128명이라고 한다. (스2:41;느7:44)

6) 아삽의 자손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양식을 정하여 주는 일을 맡았다. (느11:22~23)

7) 아삽의 6대손 스가랴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의 낙성식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에스라의 인도를 따라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였다. (느12:35~36)

※ 느헤미야 11:17과 12:8에 언급되는 아삽의 증손 맛다냐는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었고, 그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바벨론 귀환 이후(다윗 약 500년 후)인 것을 감안하면, 맛다냐의 증조부 아삽은 '노래하는' 아삽과는 다른 인물이다. (참조. 11:22)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 (시81:1~2)


자료출처/창골산 봉서방
http://cafe.daum.net/cgsbong



헤만 (영-Heman; 히-헤만; "진실한")요엘의 아들이자 사무엘의 손자이다. 다윗 시대에 성전에서 노래하였으며, 놋제금(Cymbals)을 연주한 그핫 계열의 한 레위인이다(대상6:33;15:19). 그는 성전 찬양대의 지도자였으며(대하35:15), 그의 무리는 기브온의 성막과 번제단을 모시는 일에 참여하였다(대상16:39-42). 그의 아들 열 네 명은 모두 그의 지도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성전에서 봉사하였다(25:4-6). 헤만은 또한 솔로몬 성전 봉헌식에도 참여하였다(대하5:12). 역대상 25:5에서 그는 "왕의 선견자"로도 불리고 있다(참조. 대하35:15). - 『아가페 성경사전』발췌
1. 출생과 역사적 배경

1) 그핫 자손 요엘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그 유명한 사무엘이다. 계보는 다음과 같다.

야곱(이스라엘) - 레위 - 그핫 - 이스할 - 고라 - 에비아삽 - 앗실 - 다핫 - 스바냐 - 아사랴 - 요엘 - 엘가나 - 숩 - 도아 - 엘리엘 - 여로함 - 엘가나 - 사무엘 - 요엘 - 헤만 (대상6:33~38)

2) 그핫(고핫)은 레위의 둘째 아들로(출6:16), 그핫 자손은 광야 시절부터 회막 내의 모든 기물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었다(민4:1~20).

3) 아론과 모세는 아므람의 아들들로 그핫의 손자이다(출6:18,20). 아므람은 그핫의 장자이고(이스할은 아므람의 둘째 아들, 출6:18),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계보가 되었고(출29:9), 그 중에서도 아론의 장자 엘르아살의 아들들이 대제사장의 계보를 이었다(민20:26).

4) 레위의 증손 (그핫의 손자) 고라는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리는 반역을 주도했었다. 고라의 무리들은 제사장 직분을 요구했던 것 같은데,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고라와 그 가족들은 산 채로 갈라진 땅이 삼키게 되었고, 원망하던 백성들에게는 염병이 임했다. (민16:1~50)
※ 고라 자손은 레위 사람들 중 찬송하는 일에 있어서 '아삽 자손' 못지 않은 신분이었다(대하20:19). 시편에서 '고라 자손의 시'라고 명시된 시는 모두 11편이다(시42, 44-49, 84, 85, 87, 88편).

5) 헤만의 조부 사무엘은 초기 이스라엘 왕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던 영적 지도자였다(삼상3:19~21). 사울과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10:1;16:13). 사무엘의 죽음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도하였다(삼상25:1;28:3).

6) 헤만의 부친 요엘은 동생 아비야와 함께 브엘세바에서 사사(Judge)로 지냈지만, 그들은 사무엘과는 달리 자기 이익을 위해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삼상8:1~5)

2. 활동 - [참조] 아삽, 에단
1) 역대기 저자는 헤만을 가리켜 '찬송하는 자(musician,대상6:33)', '노래하는 자(singer,대상15:19)'라고 칭했고, '찬송하는 일(the service of song/ministry with music,대상6:31,32)'을 맡았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문 찬양사역자', 혹은 '음악목사' 정도로 부를 수 있을라나... (대상 6:31~33)

2) 다윗 당시 찬양 사역의 '3총사'라고 할 수 있는 헤만과 아삽, 에단 세 사람은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드디어 역사의 중앙에 서게 된다. 다윗은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노래하는 자들을 세우라고 명했고, 그리하여 그 세 사람이 가장 먼저 추천되었다. (대상15:16~17)

3) 헤만을 비롯하여 아삽, 에단 세 사람은 '노래하는 자'였을 뿐만 아니라, '놋제금(the bronze cymbals)을 크게 치는 자'였다. 그 당시 제금은 악장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는데(대상16:5), 세 사람은 찬양대를 이끄는 지휘자나 악장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대상15:19;참조. 느12:46)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대상15:19)

4) 헤만은 '노래하는 자'임과 동시에 악기를 연주하는 자였다. 찬양대를 지휘하기 위해 제금을 쳤을 뿐만 아니라,나팔 등의 여러 가지 악기 역시 연주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대상16:42)

5) '3총사' 세 사람의 이름이 함께 거명되는 부분이 많은데, 언약궤가 입성한 후로는 오히려 헤만보다 아삽이 더 비중있게 보여지고 있다(대상16:5,7,37;25:1..). 그런데 다윗은 성막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길 때에 헤만을 가운데에 세우고 그 좌우에 각각 에단과 아삽을 세웠다. (대상6:33,39,44)

6)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the king's seer)'였다. 선견자는 선지자의 옛말인데(삼상9:9), 이런 명칭은 헤만뿐만 아니라 아삽과 에단에게도 붙여졌다(대하29:30;35:15). 항상 왕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권하는 책임이 당시 '찬송하는 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대하33:18).

이는 다 헤만의 아들들이니 나팔을 부는 자며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 하나님이 헤만에게 열네 아들과 세 딸을 주셨더라 (대상25:5)

7) 헤만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아삽, 에단과 함께 왕의 수하에 속하여 성막 앞에서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다. (대상6:32;25:6;대하5:12)



3. 아삽의 후손들
1) 아삽의 아들들 중 삭굴, 요셉, 느다냐, 아사렐라 네 사람은 헤만, 에단의 자손들과 함께 그 아비들의 수하에 속하여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직분을 맡았다. 그 중 요셉은 첫째로 제비뽑혀 직임을 얻었다. (대상25:1~2,6,9)

2) 성경에서는 특히 아삽의 자손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일컫는다. (대하35:15;스2:41;3:10;느7:44)

3) 여호사밧 왕의 때에 모압과 암몬의 위협을 물리치는 데 압장섰던 레위 사람 야하시엘은 아삽의 자손이었다. 야하시엘은 무력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호와를 찬송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대하20:14~30)

4) 히스기야 왕의 성전 중건을 돕던 레위 사람들 중에는 아삽의 자손 스가랴와 맛다냐가 있다(대하29:13).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했다(대하29:30).

5)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1차 명단에는 '노래하는' 아삽 자손이 128명이라고 한다. (스2:41;느7:44)

6) 아삽의 자손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양식을 정하여 주는 일을 맡았다. (느11:22~23)

7) 아삽의 6대손 스가랴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의 낙성식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에스라의 인도를 따라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였다. (느12:35~36)

※ 느헤미야 11:17과 12:8에 언급되는 아삽의 증손 맛다냐는 '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었고, 그 형제와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바벨론 귀환 이후(다윗 약 500년 후)인 것을 감안하면, 맛다냐의 증조부 아삽은 '노래하는' 아삽과는 다른 인물이다. (참조. 11:22)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 (시81:1~2)​



4. 헤만의 후손
1) 헤만은 14명의 아들과 3명의 딸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 중 구별된 자들은 역시 헤만과 함께 성전에서 악기로 찬송하며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북기야, 맛다냐, 웃시엘, 스브엘, 여리못, 하나냐, 하나니, 엘리아다, 깃달디, 로암디에셀, 요스브가사, 말로디, 호딜, 마하시옷 14명인데, 나팔을 불었다. 그 당시 찬송하는 자 중에 제비뽑혀 직임을 얻었던 24인 중 헤만의 아들들이 14명이었다. (대상25:1,4~6,8~31)

2) 히스기야의 성전 중건을 돕던 레위 사람들 중에는 헤만의 자손 여후엘과 시므이가 있다. (대하29:14)

3) 다윗과 헤만을 비롯한 '3총사'들이 세운 찬양의 규례들은 유다가 망할 무렵까지도 성전의 찬양사역자들에게 전해 내려졌다. (대하35:15)



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시88:9)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5. 에단의 후손
역대상 6 : 19. 므라리의 아들들은 말리와 무시라 그 조상에 따라 레위의 종족은 이러하니

6 : 41. 말기야는 에드니의 아들이요 에드니는 세라의 아들이요 세라는 아다야의 아들이요

6 : 44. 그들의 형제 므라리의 자손 중 그의 왼쪽에서 직무를 행하는 자는 에단이라 에단은 기시의 아들이요 기시는 압디의 아들이요 압디는 말룩의 아들이요

6 : 47. 세멜은 말리의 아들이요 말리는 무시의 아들이요 무시는 므라리의 아들이요 므라리는 레위의 아들이며



역대상 15장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레위의 아들로(창 46:11), 마홀리와 무시를 낳았으며(출 6:19) 므라리 가족의 조상이 되었다(민 26:57).

2) 시편 중에는 헤만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 찬송시가 하나있다. 시편 88편의 저자 '고라 자손의 에스라인 헤만'이 '3총사' 헤만과 동일인이라면, 시편 89편의 저자 '에스라인 에단' 역시 '3총사' 에단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럴 경우에 '에스라인'이 성전의 어떤 음악사역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명칭일지도 모르겠다. 시편 89편에는 '마스길', '영장', '마할랏르안놋', '셀라' 등의 음악용어가 사용되었다.

3) 왕정 시대 때 므라리 자손들은 찬송을 맡아서 봉사했으며(대상 6:29, 44, 47), 히스기야 왕(대하 29:12), 요시야 왕(대하 34:12) 때의 성전 청결 작업에 동참했다.​



므라리(Merari)
레위의 아들로(창 46:11), 마홀리와 무시를 낳았으며(출 6:19) 므라리 가족의 조상이 되었다(민 26:57).

광야 생활에서의 므라리 가족은 6,200명이었으며, 수리엘이 이들의 족장이었다(민 3:34-35). 이들은 장막의 북편에 진을 쳤으며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받침, 뜰 사면 기둥과 그 받침, 말뚝, 줄 등을 맡아서 관리하는 일을 했다(민 3:36-37). 가나안 땅에서는 제비뽑기로 스불론, 르우벤, 갓 지파로부터 각각 네 성읍을 받아 열두 개의 성읍을 차지했다(수 21:7, 34-40; 대상 6:63).

왕정 시대 때 므라리 자손들은 찬송을 맡아서 봉사했으며(대상 6:29, 44, 47), 히스기야 왕(대하 29:12), 요시야 왕(대하 34:12) 때의 성전 청결 작업에 동참했다.



에단(Ethan)
1. 지혜로운 사람으로 알려진 예스라 사람이다(왕상 4:31).

시편 89편은 ‘예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고 제목을 적고 있다.

2. 레위 사람 아다야의 아버지이며 아삽의 선조 중의 한 사람이다(대상 6:39, 42).

3. 레위 사람 기시의 아들로(대상 6:44) 다윗 시대에 놋제금을 쳤다(대상 15:17, 19).

4. 유다가 다말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라의 아들이며 아사랴의 아버지이다(대상 2:6, 8).



헤만(Heman)
1. 유다 지파 마홀의 아들로 지혜로웠던 사람이다(왕상 4:31).

2. 요엘의 아들로 다윗 시대에 제사장 사독을 도와 찬송과 놋제금 연주로 봉사한 사람이다(대상 6:33).



베레야(Berekiah)
다윗 시대에 회막에서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던 사람으로 아삽의 부친이며 시므아의 조부이다(대상 15:17). 역대상 6:39에는 베레갸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대상 15:23)와 동일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요엘(Joel)
소선지서의 두 번째 책인 요엘서를 기록한 선지자이다. 브두엘의 아들로‘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졌다(욜 1:1). 브두엘이‘하나님의 설득자’, 또는‘하나님의 성실성’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가문이 경건한 가정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브두엘은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요엘은 다른 구약 선지서들과 마찬가지로 오직 회개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욜 2:12-14). 요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장 지금”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고 외치면서 “그때에 여호와께서 … 그 백성을 긍휼이 여기실 것이다”(욜 2:18)라고 선언하였다.

성경 속의 또 다른 요엘들 : 1. 사무엘의 아들로 악한 사사이다(삼상 8:2; 대상 6:33).

2. 레위 자손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아버지인 엘가나의 선조이다(대상 6:36; 삼상 1:1).

3. 르우벤의 자손으로 스마야의 아버지이다(대상 5:4-8).

4. 시므온의 자손으로 그 지파의 족장이다(대상 4:35).

5. 바산에 살던 갓 자손의 족장이다(대상 5:12).

6. 잇사갈의 자손이며 족장이다(대상 7:3).

7. 다윗의 용사 중 나단의 형제이다(대상 11:38). 사무엘하 23:36에는 이갈로 되어 있다.

8. 브다야의 아들로 다윗 시대 므낫세 반 지파의 관장이다(대상 27:20).

9. 히스기야 왕을 도와 성전을 청소한 사람으로 레위인이며 그핫 자손이다(대하 29:12).

10. 에스라 시대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자이다(스 10:43).

11. 느헤미야 시대에 베냐민 지파의 감독이다(느 11:9).

12. 게르솜의 자손으로 족장이며 다윗 시대에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기념식에 형제 130명과 참석하였다(대상 15:7-11). 신명기의 언약과 요엘서 요엘은 그의 메시지의 기본적인 초점을 신명기 32장 모세의 노래(언약)에 의존하고 있다. 언약의 저주는 민족의 불순종의 결과로 생긴다. 응징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회복시키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내용 신명기 32장 요엘 1:1-2:17 귀를 기울이라 1-2절 1:2-3 공의의 하나님 3-4 2:13-14 과거를 기억하라 7 1:2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 8-12 1:17 과거의 농업의 하사품 13-14 1:5-20 여호와의 거절 19-21 1:15 ;2:11, 17 분노의 불 22 2:3 해함 23 2:13 화살 23 2:8 기근 24 1:4-20 해로운 짐승 24 1:4-6 침입 25 1:6; 2:1-11 적의 비웃음 27 2:17 여호와의 거절 26-30 1:15; 2:11, 17 심판의 날 34-35 1:15; 2:1-2, 11 용서 36-38 2:12-14, 17 적들로부터 해방 39-43 2:20-27 땅의 보상 43 2:18-27



출처 http://firstkoreanchurch.org/Home/MessageDetail/40
아삽은 다윗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다윗이 기원전 약 1,000년 경 사람이니까 아삽도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삽은 다윗이 아꼈던 세 사람의 음악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뛰어난 음악가였던 다윗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노래 잘 하는 사람과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들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때 추천 받은 세 사람이 헤만 (Heman)과 아삽 (Asaph)과 에단 (Ethan)입니다 (역대상 15:16-17). 이 사람들은 비파 (lyres)와 수금 (harp)과 제금 (cymbals)을 연주했던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이 중 아삽은 악장 (the chief musician)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아삽이 연주하는 제금에 맞춰서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역대상 16:5).

시간은 흘러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로 내려 갑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역사 중에 몇 명 안 되는 하나님께 인정 받는 왕이었습니다. 25살에 왕 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다윗을 자기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형식화된 제사 (예배) 의식을 개혁했습니다. 그리고 제사 의식에 음악을 도입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히스기야가 성가대의 찬양이 끝난 후에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아삽의 시편을 낭독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29:30).

아삽은 단순한 음악인이 아니라 뛰어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아삽을 가까이 곁에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삽이 쓴 시편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시편들이 아니라 히스기야가 예배 의식을 개혁 하면서 아삽의 시편에서 영감 (靈感)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것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히스기야가 아삽을 가리켜 ‘선견자 아삽 (Asaph the seer)’이라고 한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역대하 29:30)

시편 50편을 읽어 보면 곳곳에 참된 제사 (예배)는 어떤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참된 제사 (예배)는 제물 중심의 제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삽의 입을 통하여 “나는 너희들이 드리는 제물을 탓하지 않는다(8절)”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슨 제물을 드리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삽은 제물 중심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 (those who forget God, 22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계 보다는 좋은 제물, 값비싼 제물만 드리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사역 중심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가대원들이나 오케스트라 대원들은 참 조심해야 합니다. 찬양을 하고, 연주를 함으로써 나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만, 제가 BU 박사과정에 있을 때 외국어 시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약성서 해석학을 전공했습니다. 보통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국어를 두 개를 요구 합니다. 저는 영어와 독일어를 선택했습니다. 다행히 영어를 외국어로 간주해 주었습니다. 물론 영어 시험을 봤습니다. 한국어 텍스트를 주고 영어로 번역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신약학을 전공했으니까 헬라어 (Greek)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헬라어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신약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헬라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어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히브리어는 외국어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가대에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는 거의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노래와 연주입니다. 이것을 하면서 내가 충분히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성가대에서 봉사하니까, 나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니까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잘못하면 사역 중심의 생각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주일 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역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heart)’을 기뻐하십니다. 사무엘상 16:7에 이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여호와는 마음을 본다 (For the Lord does not see as man sees; for man looks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마음을 보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겉모습이나 형식, 우리가 하는 사역보다 관계를 중요하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아삽이 살고 있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물 중심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물 중심의 제사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아삽은 제물 중심의 제사는 반드시 형식화 되고 타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형식화된 예배를 통해서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런 아삽을 다윗은 그의 곁에 '선견자 (the seer)'로 두고 있었고, 다윗을 모델로 삼아 제사 (예배) 의식을 개혁하려고 했던 히스기야 왕은 아삽이 쓴 시편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참된 제사 (예배)는 어떤 제사입니까? 아삽은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참된 제사라고 합니다 (14, 22절). 제물이 중심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를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worship in spirit and truth)’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예배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배자의 마음이 신령과 진정으로 준비되어야 그 예배가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참된 예배자들을 찾고 계신다 (The Father now seeks the true wor-shipers).” 어쩌면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아삽의 시를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탁월한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1900-1980)을 아시지요? 그가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중에서 1976년에 나온 "To Have or To Be (존재냐 소유냐)?" 이 책이 가장 중요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프롬은 이 책에서 삶의 두 가지 양식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하나는 ‘존재양식 (Being Mode)’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양식 (Having Mode)’이라고 했습니다. ‘소유양식의 삶’은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삶의 방식입니다. 반대로, ‘존재양식의 삶’은 무엇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나의 것을 나누어 주고 베풀면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삶의 방식입니다.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재양식의 삶은 자기를 새롭게 하는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 모든 관계를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삶의 양식을 의미한다.”

지금은 크리스천의 삶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크리스천의 책임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는 때입니다. 소유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 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말하고, 행복과 불행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자기가 이미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평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삽의 말을 빌린다면, 소유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제물 중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제물 중심의 제사가 결국은 형식화 되듯이, 소유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고 맙니다.

그러나, 존재양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프롬은 이 관계를 ‘aliveness and authentic relatedness to the world (세계와의 살아 있고 진실한 관계성)’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올리브 나무에 거둘 것이 없고, 밭에 거둘 곡식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겠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겠습니다.” (하박국 3:17-18) 하박국 선지자의 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글이 존재양식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마지막 남는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부인할 수 없듯이, 나는 구원의 하나님 때문에 기뻐합니다.” 이것이 존재양식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삽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은, 그를 통해서 존재양식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3절)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giving thanks is a sacrifice that truly honors me. If you keep to my path, I will reveal to you the salvation of God." 직역하면, "감사를 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높이는 제물이다. 너희가 나의 길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길 (my way)’은 감사로 하나님게 나가는 것입니다. 감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하나님의 길'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이 '길'이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올바른 행위입니다. 감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인정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사야말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최고의 제물입니다. 꼭 형식이 갖춰지지 않았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할지라도, 예배자들의 마음 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최고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사는 보스턴은 감사의 본고장입니다. 우리가 사는 보스턴에서 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92년 전, 1620년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May Flower를 타고 도착했던 플리머쓰 (Plym-outh)가 불과 보스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12월에 도착한 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가까스로 살아 남았습니다. 이렇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그 이듬 해에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던 것이 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말 중에 "Think and Thank God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자)"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thank라는 말은 “akin to think (think와 유사한 어족)”라고 나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들입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도, 힘들었던 시간들도, 절망의 순간들도, 생각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언젠가 이런 기도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환자의 기도 (The Creed for the Disabled)”라고도 알려져 있고, “어느 무명 용사의 기도”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그 기도의 원본을 찾았습니다. “A Soldier's Prayer (written by an unknown confederate soldier, US civil war)”

I asked God for strength, that I might achieve (출세를 위해서 힘을 구했지만),

I was made weak, that I might learn humbly to obey (겸손하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를 약하게 하셨습니다).

I asked for health, that I might do greater things (큰 일을 하기 위해 건강을 구했지만),

I was given infirmity, that I might do better things (하나님은 더 좋은 일을 하라고 나에게 병을 주셨습니다).

I asked for riches, that I might be happy (행복하게 살려고 돈을 구했지만),

I was given poverty, that I might be wise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I asked for power, that I might have the praise of men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권력을 원했지만),

I was given weakness, that I might feel the need of God (하나님만 필요로 하라고 나에게 약함을 주셨습니다).

I asked for all things, that I might enjoy life (나의 삶을 즐기기 위해 모든 것을 원했지만),

I was given life, that I might enjoy all things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주셨습니다).

I got nothing that I asked for (내가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but everything that I had hoped for (내가 소망해야 했던 모든 것을 받았고),

Almost despite myself, my unspoken prayers were answered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말하지 않은 기도들이 응답되었습니다).

I am among all men most richly blessed (나는 그 누구보다도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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