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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성경인물/ 교회사인물 본디오 빌라도

작성자tjsal|작성시간22.03.05|조회수166 목록 댓글 0

#교회사인물,성경인물

 

사익을 챙긴 총독 본디오 빌라도(Pilate)의 최후(1)

 

이름 속에 ‘창을 가짐’ 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본디오 빌라도는 주 후 1세기 유대와 사마리아 및 이두매를 약 10년 동안 다스린 제5대 로마 총독이다(주 후 26-36년 재임). 그는 로마 제국을 위해 몸과 마음과 물질을 모두 바쳐 적극적으로 일하며 싸우다 큰 공적을 세우고, 황제에게 인정을 받아 무관(武官)인 기사(騎士)가 됐다.

 

본디오 빌라도는 원래 갈라디아 지역 출신으로서 독일군 제 22군단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본도에 거처하는 중 기회가 돼 로마 황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하며 열심히 싸운 인물이다. 그 후부터 로마 사람들은 빌라도가 충성을 바쳐 일한 ‘본도’ 지역 명을 따 그를 ‘본디오’'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또한 투창(Pilum)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빌라도’라는 별칭도 부여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황실의 임명으로 유대 총독으로 부임할 때 예외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동반했다(마 27:19). 1세기 당시 로마법은 유대 같은 위험한 지방을 다스릴 총독은 아내나 가족을 동반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아구스도 시대 이후 일시적으로 동반이 허락되자, 빌라도는 아내와 같이 유대 땅에 총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임 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주 후 14-25)는 가이사랴에 안주(安住)하면서 대제사장 직임을 돈을 받고 파는 등 사복(私腹)을 채우는데 급급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처음부터 전임 총독의 잘못된 처사와 식민통치 정책에는 반대했다.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부 본영을 새로운 도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막 15:16)으로 옮겼다. 빌라도는 야밤중에 병사를 시켜 이스라엘의 성도(聖都) 예루살렘으로 군기를 보냈다. 독수리 그림의 군기와 황제의 상이 그려진 기를 성전 안에 세우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제2계명을 어기는 것이 됐다.

 

흥분한 예루살렘 군중들은 총독부에 민족 대표를 보내 비난과 더불어 탄원을 올리게 됐다. 유대 군중들은 5일 동안이나 총독의 관저를 둘러싸고 데모하며 소란을 피웠다. 엿새째 되는 날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군중을 법정으로 불러, 만일 해산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유대인들은 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로마 군사들 앞에 자신들의 목을 내놓았다. 본디오 빌라도는 마침내 그들의 탄원을 들어 군기를 성 내에서 철수시켰다.

 

빌라도 총독은 솔로몬의 연못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水道)를 끌기 위해 성전고(聖殿庫)에 있는 금을 함부로 사용했다. 하나님께 헌물로 바친 거룩한 금을 세속적 목적을 위해 도용(盜用)하는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분노하며 생각했다. 총독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또다시 소란을 일으키며, 그를 공격하기 위해 둘러쌌다. 빌라도는 그런 일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으므로 흉기를 가진 사복 차림의 부하를 군중 속에 몰래 잠입시켰다. 유대 군중들의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빌라도의 신호에 따라 폭도들을 습격하므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총독 빌라도는 주 후 29년 유월절에 민중들의 소동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일 때 총독도 상경해서 헤롯의 궁전에 묵는 것이 관례였다. 빌라도가 민중 폭동을 일으킨 갈릴리 사람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피를 희생의 피에 섞게 됐다(눅 13:1,2). 그는 자신에게 큰 희생이나 손해가 될 경우 올바른 결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나의 의무는 무엇인가?”가 아니고, 항상 “나의 이해 관계는 무엇인가?” 였다. 전임 총독의 정책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총독 업무를 수행한 것은 동일했다.

 

본디오 빌라도의 마지막 과실은 그의 실각 원인이 됐다. 사마리아 출신의 어떤 사람이 빌라도를 찾아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주전 15세기 모세가 성막의 황금 기구(器具)를 숨긴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거짓말했다. 사마리아 사람은 폭군 빌라도가 그리심 산에 올라오면 제거할 심산이었다. 수많은 유대 군중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그리심 산 기슭에 모였다.

 

빌라도는 무장한 군인들을 두려워하여 죄 없는 민중들을 급습하고 모두 살해하고 말았다. 사마리아 인들이 자신들의 억울한 사실을 로마 황제에게 탄원하자, 본디오 빌라도를 총독 직에서 면직시켰다(36-37년). 평민으로 돌아간 빌라도는 여러 모양으로 고통을 당하게 됐다. 결국 칼리쿨라(Caligula/12-41년 생존/로마의 3대 황제/재위 37- 41) 황제로부터 사형 집행 통보를 받고 스스로 자살하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국가를 위해서 일해야 할 공복이 사심을 마음 속에 품고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힌 죄악은 결코 묵과될 수 없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이 땅에 세우신 국가 또는 다양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과 생각대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지도자를 선택한다. 본디오 빌라도처럼 국가 및 공동체의 통치 원리를 오직 사익에서 찾는 사람은 이 땅에서조차 밝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하나님 세우신 공동체를 해치는 사악한 행동을 하고도 정죄가 없는 것은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큰 사랑에서 비롯된다. 지난날 백성들을 괴롭혔던 전세계 독재자들의 비참한 죽음과 퇴보는 그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다.

 

 

 

#교회사인물,성경인물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나약한 빌라도(2)

 

주 후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 애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린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그의 아내는 오래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정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주 후 27년-30년) 대부분의 유다 지역은 예수 그리스도가 일으킨 불치병 치유 등의 놀라운 이적 사건으로 인해 매일 들썩이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형 허락을 받기 위해 총독 빌라도의 집무실로 찾아 갔을 때, 처음에 그는 뜸을 들이면서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식민 백성 유대인들에 대한 법적 사형 집행권을 가진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으로서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실지로 나약한 자들의 표지인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총독 빌라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제국 유대 총독부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참람죄로 기소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참람죄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종교적 범죄로서, 로마 총독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 항목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량한 백성들을 미혹했고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으며, 유다의 왕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등 백성들을 거짓으로 속였다는 정치적 죄목(형사범)을 뒤집어 씌워 다시 기소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석방하지 않고 내적으로 법정 죄인 취급했다. 그는 신으로 보이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광장에서 분노하여 불법으로 기소한 유대 군중들을 더욱 무서워했다(마 27:2, 11-14/막 15:1-5/눅 23:1-5/요 18:15-18, 25-27).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실에 따라 법과 정직한 양심으로 재판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관할구역 분봉왕 헤롯에게 정치범으로 넘겨 조롱과 심문을 받게 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 행위를 발견하지 못하고, 유다 총독 빌라도에게 또다시 돌려보냈다(눅 23:6,12).

 

나약한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제2차 심문을 위해 산헤드린 공의회(公議會) 회원들과 유대 백성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를 증명해 석방하기 위해서는 유대 백성들의 절대적 동의와 협조가 필요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무죄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사악한 시기로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일반 백성들은 최소한 동정할 줄 알았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매우 시기해서, 거짓으로 죄를 뒤집어씌워 잡아온 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꿈을 꾸고 남편에게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소서’ 라고 두려워하며 조언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체포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너는 어디로서냐’ 라고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므로 마음이 나약한 빌라도는 몹시 겁이 났다. 석방할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총독인 자신에게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은근히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죄로 판단할 만한 근거를 직접 입으로 말해주길 바랬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엉뚱하게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죄로 심판할 만한 변명을 빌라도는 주님으로부터 듣지 못했다. 매우 당황한 총독 빌라도는 공포심에 끌려 그를 석방하려 애썼지만, 분노한 백성들에게 밀려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를 범인 신분으로 넘겨 주게 됐다.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당할 범죄를 전혀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때려서 석방하겠다고 재차 선언했다. 나약한 본디오 빌라도는 매를 맞아 비참한 모습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주기도 했다.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심히 매질하면 분노한 유대인들의 마음이 석방 쪽으로 돌아설 줄 알았다. 사악한 대제사장의 지휘를 받은 유대의 일반 군중들은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정치범 바라바(열심당원)를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라고 소리쳤다.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고 세 번이나 말했으나, 크게 소리지르는 무리들이 두려워 바라바를 대신 놓아줬다(마 27:26-30, 15:15-19/요 19:13). 유대 백성들이 들고 일어서 민란을 일으키면 로마 총독으로서 자신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계산했다. 유대인들의 동정을 얻어 석방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고 크게 외치므로 작전상 착오가 생겼다. 본디오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대답했다. 본디오 빌라도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2차 석방운동도 그의 나약한 리더십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요 19:1-8).

 

총독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죄수 패를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린 십자가 틀 위에 붙였다. 대제사장이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항의했으나, 그는 불응했다(요 19:9-14, 19, 21, 22). 총독 빌라도는 하나님의 교회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풀이하는 동안 사악한 존재요 나약한 리더로 규정됐다.

 

그의 아내 글라우디오 프로클라(Claudia Procla)는 ‘문의 개종자(Proselyte of the gate)’로 숨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다고 전한다. 희랍 정교회에서 그녀를 성도로서 성렬(10월 27일)에 가입시키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백성들의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 지도자는 백성들의 의견을 낱낱이 청취하되, 법과 양심에 따라 바른 결정과 심판을 정직하게 내려야 한다. 개인적 유익이나 입지를 수호하기 위한 심판이나 결정은 이미 리더십을 상실한 처사가 된다. 총독 빌라도가 백성들의 의견을 자주 청취한 것은 지도자로서 옳은 것이었다. 다만, 권한을 위임 받은 정치 지도자로서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법에 따라 심판하지 못하고, 사익에 치우친 그의 행동은 총독의 임무를 해태(懈怠)한 위법행위가 됐다.

 

공동체의 바른 지도자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온다고 할지라도 법과 양심에 따라 올바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나약한 빌라도는 알지 못했다.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및 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총독 빌라도를 반면 교사로 사용해 바른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오늘날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나약한 빌라도의 리더십을 거울삼아 바른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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