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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생존전략) 29. 미국 것은 풀도 크다, 강아지풀

작성자정중동|작성시간25.12.03|조회수99 목록 댓글 0

(잡초의 생존전략) 29. 미국 것은 풀도 크다, 강아지풀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큰 야망을 품은 잡초가 있는가 하면 소박하게 작은 크기로 살기를 꿈꾸는 잡초가 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크게 성공하기도 하고, 밑바닥을 기면서도 행복한 잡초도 있다. 경쟁이 싫어서 사람의 발에 밟히는 고생을 참아가면서 홀로 사는 잡초도 있다.

 

강아지풀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길가에 흔히 나는 잡초다. 그 때문일까, 강아지풀은 아이들의 들놀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풀이기도 하다. 강아지풀의 꽃말은 놀이이다. 털이 많이 난 강아지풀의 이삭은 수염이나 털벌레 대신으로 쓸 수 있다. 몸에 닿으면 그 느낌이 꼭 털벌레 같다. 반으로 쪼개 코에 붙이면 영락없이 수염 모양이다. 그런 강아지풀을 갖고 이런저런 장난을 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으리라.

 

강아지풀은 다른 보통 풀들이 가진 ‘C3’ 회로가 아니라 ‘C4’ 회로라 하는 고성능 광합성 시스템을 갖고 있다. 보통 광합성 회로는 햇빛을 받는 잎 속에 있지만 이 C4 회로는 줄기 속에 배치돼 있다. C4 회로는 이산화탄소를 농축하여 C3 회로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 따라 광합성 능력을 대략 2배까지 높일 수 있다. 압축한 공기를 대량으로 보냄으로써 출력을 올린다는 이런 발상은 터보 엔진과 같은 방식이다.

 

C4 회로는 광합성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어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볏과의 잡초 대부분은 이 C4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은 여름이 되면 한층 세 좋게 자랄 수 있다. 더욱이 이 C4 회로 광합성 시스템은 물의 양을 절약할 수 있어서 C4 회로의 잡초는 건조한 장소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터보 엔진이 연료를 많이 필요로 하듯이 실제로 C4 회로도 높은 광합성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점이 있다. 강한 햇살과 높은 온도가 있으면 C4 회로를 가진 광합성 시스템은 높은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햇살이 부족하거나 온도가 내려가면 기능이 떨어진다. 마치 터보 엔진으로 움직이는 포르쉐가 굼벵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보물을 갖고 있을 뿐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열대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C4 회로를 가진 식물도 동아시아처럼 사계절이 있는 기후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강아지풀이란 이름은 이삭의 부슬부슬한 털의 느낌이 강아지의 꼬리와 비슷하다는 데서 비롯됐다. 영어로는 여우 꼬리(Fox tail)’라 한다. 한자 이름은 구미초(狗尾草), 곧 개 꼬리라는 뜻이다.

 

강아지풀은 열대로부터 온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온갖 장소에서 볼 수 있다. 문화나 인종, 언어가 달라도 강아지풀을 볼 때의 이미지는 세계 어디나 같다는 것이 나는 기쁘다.

 

최근 늘어난 강아지풀의 무리에 가을강아지풀이라는 것이 있다. 강아지풀은 이삭이 작아 한창 더운 여름에는 꼿꼿이 이삭을 세운다. 여름에 어린이들이 풀 놀이에 쓰는 것은 이 종류의 강아지풀이다. 이것과 달리 가을강아지풀은 이름 그대로, 가을이 되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이삭이 길고 이삭 끝이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특징이다. 비유하자면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여름에는 꼿꼿이 서 있고, 가을바람이 불게 되면 힘없이 늘어지는 것이다. 물론 남자의 음경 이야기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강아지풀 이야기다.

 

가을강아지풀은 동아시아 잡초인데, 언제부터인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번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졌던 가을강아지풀이 다시 동아시아로 역수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퍼진 것이 수입 곡물 등과 함께 계속해서 동아시아로 들어와 퍼지고 있다. 동양계 미국인의 얼굴처럼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아시아로 들어온 가을강아지풀은 언뜻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되지만, 크기가 눈에 띄게 큰 것이 다르다. 동양계 미국인도 동양인과 비교하면 몸이 큰데, 강아지풀도 이와 같다. 역시 먹는 것이 다른 탓이리라.

 

 

이나가키 히데히로(著), 최성현(譯). 풀들의 전략. 도솔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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