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공동체에 강하게 결속된 사람은 생존율이 높은 자녀를 더 많이 두며 고립감과 빈곤의 문제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긴밀한 유대감은 이들에게 더 많은 안정감과 미래를 보장해 준다. 공동체적 노동은 개인이나 가족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중세와 근대 초기 대성당과 큰 교회는 산업화 이전 시대에 이 같은 공동체의 기능으로 매우 인상적인 활동을 펼쳤다.
17. (자연의 선택) 사람은 생존을 위해 종교가 필요한가? 가톨릭 대성당과 이슬람 교회당
종교는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아준다. 세계적인 종교는 인류 평등을 강조하며 종파적 빗장을 푼다.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에게는 종교가 필요한가? 모든 종교가 저마다 (유일하게)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만 빼면 신앙은 사람에게 유용하다. 종교의 출현을 진화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종교사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단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종교 공동체에 강하게 결속된 사람은 생존율이 높은 자녀를 더 많이 두며 고립감과 빈곤의 문제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긴밀한 유대감은 이들에게 더 많은 안정감과 미래를 보장해 준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번식 성공률이다. 한 집단이 다음 세대에 이바지하는 바가 클수록 그 집단의 생존은 더 안정되고 더 큰 의미(영향력, 권력)가 생긴다. 좁은 종교 공동체 안에 있는 구성원은 공동체의 번영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하며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공동체적 노동은 개인이나 가족이 성취할 수 있는 굿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중세와 근대 초의 대성당과 교회는 산업화 이전 시대에 이 같은 공동체적 기능으로 매우 인상적인 활동을 펼쳤다.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때는 합법적으로 허점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불법적으로 횡령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능하면 피하려 들고 마지못해 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가가 이 세금을 ‘갉아먹으면서’ 마구 소비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와는 달리 종교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헌금은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두 가지 지출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지만, 한쪽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한쪽은 당연한 듯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깊이 뿌리박힌 것을 보면 공동체를 위해 일정한 몫을 기부하는 것이 오랜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강한 유대감을 가져
이런 세계를 매개해 주는 것이 바로 ‘종교(Religion)’라는 개념이다. 라틴어에서 나온 이 말(라틴어 Religio는 ‘뒤로 묶는다’는 뜻의 Religare에서 나온 것)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머리를 뒤로 묶듯이 ‘뒤로 묶음’이라는 뜻이다. 공동체에 의존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워준 조상들에게 의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묶이는 것은 과거에 묶이지만 여기서 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과거에 의존함으로써 신뢰가 만들어지고, 이 때문에 현재의 삶이 안정되며, 독특한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능력이 나오게 된다. 공동체에 속한 아이들은 계속되는 삶의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신뢰하게 된다. 공동체 역시 아이들을 신뢰하며 부모들은 언젠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아이들이 자신을 돌봐줄 것으로 생각한다. 공동체는 과거 공동체의 연속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풍속과 의식에 묶이고 공동의 가치에 묶인다.
산업화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그때는 끊임없이 굶주림과 질병의 위협을 받았고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나 자신이 삶에서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최악의 적이 되었다. 경쟁과 적개심이 결합하면 시기와 증오심이 태어난다. 증오만큼 인류와 다른 인류를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도 없다. 증오심을 만들고 부추기는 것은 언제나 선동가나 호전가들의 전략이었다. 출신에 대한 인식(‘혈통’, 즉 조상에 대한 한없는 의미)과 공동의 풍속이 집단 특유의 언어 방식과 더불어 공동체의 특징이 되었다.
모든 종교는 발생 신화 또는 나중에 발전한 창조 신화가 있다. 이런 신화는 후손에게 출신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후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디에 속하는지를 의무적 기억하도록 끝없이 강조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종교는 처음부터 생존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종교 권력이 강해지면서 극단적 갈등을 부추겨
또한 종교는 ‘다른 집단’으로 확대되면서 씨족, 혈통, 민족이라는 좁은 범위를 극복하기 위한 가능성이 되었다. 이 확대 현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했다면 목표는 분명히 고상해 보였을 것이다. ‘다른 집단’을 포용한다면 그들의 위협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집단도 공동의 종교에 의무를 지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동체(점점 커진)의 소속은 이웃에 한한 것이지 ‘진정한 신앙’이 없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배척받은 ‘불신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타성과 위협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고유한 공동체에 의존하는 현상이 다른 종교 집단으로 확대되면서 종교 권력은 계속 확대되었다. 왕이나 황제의 권력도 종교 앞에서는 무너졌다. 오늘날에도 국제적 공동체의 강제 수단은 종교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발생 당시에는 그토록 고상하던 목표가 권력의 유혹을 받고 권력을 확대하고 타 종교를 억압하면서, 인류 사이에 최악의 갈등을 만들어 종교 전쟁을 일으키고 또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이데올로기(공산주의, 나치즘) 전쟁을 일으킨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교 전쟁은 인종주의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류 사이에서 가장 극단적인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목표를 위해서 또는 권력과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서 쉽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생존 프로그램으로서의 종교적 신앙은 종교의 이데올로기화로 인해 이제는 말살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살인 면허’는 과거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이처럼 현재에도 존재한다.
요제프 H. 라이히흘프 지음, 박병화 옮김.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