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성욕은 빛 공포도 잠시 극복할 만큼 강력하다.” - 찰스 다윈,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
(동물 세계사) 027. 지렁이, 세계의 건설자
찰스 다윈은 생애 마지막 몇 년을 지렁이 연구에 바친 후 1881년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깜짝 놀랄 만큼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22년 전 출간된 『종의 기원』보다 훨씬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다윈은 “세계사에서 이 낮고 하찮은 동물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동물이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썼다.
토양은 무수한 수의 박테리아와 엄청나게 다채로운 균류가 살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생태계다. 식물을 자라게 하는 물질인 흙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이 생명 과정을 주재하는 존재가 바로 지렁이다.
지렁이(earthworm)는 엄밀한 과학 용어는 아니다. 지렁이는 표면의 낙엽층과 표층토와 더 아래 하층토에 살고 있는 환형동물 최대 6,000종을 포괄하는 단어다. 지렁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큐레이터이자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 만물의 작용을 담당하는 핵심종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거대한 참나무의 웅장한 외양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면,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어 참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 장대한 외양을 갖게 된 것이 박테리아와 균류, 그리고 아주 신중한 지렁이들의 작용 덕분이라는 결론에 이르지는 못한다.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가 대초원을 돌아다니며 즐겨 먹는 열매와 채소라는 물질은 지렁이의 도움으로 얻은 것들이다. 초식동물을 잡아먹은 인간은 그 동물이 풀과 잎사귀를 먹으며 보낸 수년간의 세월이 쌓은 이득을 흡수한 셈이다. 모든 물질은 지렁이의 작용으로 가능해졌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그 밖의 다른 지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인간이 작물을 길러낸 토양의 양분은 지렁이들이 제공한 것이다. 농작물이 지렁이의 배설물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다. 지구상에서 인간뿐 아니라 온갖 육지 생물은 지렁이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모습이 딴판이었을 것이다. 추정컨대, 우리가 먹는 음식의 약 90퍼센트는 지렁이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해산물과 수경 재배 작물 정도다.
지렁이는 생태계의 엔지니어다. 이들은 물리, 화학, 생물학적으로 토양에 영향을 끼친다. 지렁이는 생명 작용을 통해 비교적 큰 유기물질을 양분이 풍부한 부식질로 바꿔놓는다, 지렁이 똥에는 토양의 표층 23센티미터 내에 있는 다른 무엇보다 부식질이 40퍼센트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화학적으로 지렁이는 부식질을 식물 뿌리 쪽으로 내려보내 식물이 무기물과 식물성 물질을 흡수하게 해준다. 지렁이 똥은 주변의 흙보다 질소는 다섯 배, 인산염은 일곱 배, 칼륨은 열한 배가 더 풍부하다. 지렁이가 마음씨 좋아서 이런 작용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물질은 지렁이가 사는 방식의 부산물이다. 지렁이는 긴 몸의 한쪽 끝에서 흙을 흡수해 통과시킨 다음 다른 쪽 끝으로 내보낸다. 해부학적으로 말해 지렁이는 환상 근육으로 이루어진 긴 소화관인 셈이다.
지렁이는 눈이 없지만 감광 세포가 있다. 납의 햇빛은 지렁이의 적이고 토양 표면은 햇빛에 취약하므로 빛을 피하는 것이 지렁이의 생존에 중요한 전략이다. 지렁이의 청각도 대단한 것이 못 된다. 다윈의 많은 실험 중에는 지렁이에게 음악을 들려줘 반응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있었다. 아내인 엠마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아들 프랭크는 바순을 불었다. 또 다른 아들 버나드는 휘파람을 불고 딸 베시는 소리를 질렀지만, 지렁이는 아무 소리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지렁이는 삽으로 두 동강을 내도 생존이 가능한 두 마리로 똑같이 나뉘지 않는다. 물론 윌리엄 블레이크가 “잘린 지렁이는 쟁기를 용서한다.”라는 말을 쓴 적이 있기는 하다. 잘 모르고 한 말인지 뭔가 좀 당황스러운 묘사다. 지렁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치고는 기막힌 성생활을 한다. 지렁이는 암수한몸인데 그렇다고 혼자서 번식하는 것은 아니다. 짝짓기한다는 뜻이다. 지렁이는 교미가 끝나면 암수 모두 자리를 떠나 알을 낳는다.
지렁이는 한쪽으로 흡수해 쪽으로 다른 쪽으로 내보내는 조용하고 겸허한 과제를 수천 년에 걸쳐 수행해 오면서 천천히 미묘하게 서식 환경을 창조하고 바뀌었다. 다윈은 이렇듯 지렁이 형태의 느린 측면에 매료되어 다운하우스(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시골의 집)의 정원에 다양한 물건을 놓아 지렁이가 이것들을 매장하는 속도를 측정했다. 지렁이는 아주 여유롭고 꼼꼼하며 철저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16장 ‘판다’ 편을 보라)는 다윈이 지렁이에게 매료된 이유 중 하나로 이들이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활동한다는 점을 들었다. 지렁이가 무언가를 땅에 묻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린다. 이것은 지렁이가 환경에 적응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다윈이 수행한 지렁이 연구는 ‘심원한 시간’이라는 엄청난 개념을 표면이나마 살짝 건드린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심원한 시간’의 탐색이란 다윈의 언어로는 ‘자연선택’, 즉 진화가 일어나는 시간을 탐색한 것이다. 지렁이는 오늘날 우리가 막 파악하기에 이른 장대한 시간 개념을 제공한다.
다윈은 그야말로 지렁이에 미쳐 있었다. “이 보잘것없는 동물, 자신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이익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렁이의 작용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농업은 불가능하지 않더라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가 다윈의 진단이었다. 땅에 비료를 뿌리는 전통적인 방법은 지렁이의 작용에 의존한다. 동물의 배설물을 깔짚과 섞어 논밭에 뿌리는 퇴비 살포의 효과는 지렁이의 작용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렁이는 토양 표면에 뿌려진 비료 성분을 더 깊숙이 가지고 내려가 식물이 양분으로 쓸 수 있게 해준다. 전통식으로 관리한 목초지에는 아찔할 정도로 지렁이가 많이 살고 있다. 1헥타르의 땅에 무려 100만 마리의 지렁이가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의 생물량(몸무게를 합친 양)은 이들의 머리 위에서 풀을 뜯는 동물의 생물량보다 크다.
그러나 농업 방식이 바뀌었다. 새로운 농업 방식은 흙을 더 깊게 더 많이 갈아엎는 식인 데다 흙에 화학비료와 살충제와 살균제까지 쏟아붓는다. 이런 방식으로 논밭을 갈면 지렁이의 굴 시스템은 파괴된다. 쟁기질도 늦여름에 하는 쪽으로 방식을 바꾸는 경우 지렁이의 번식이 방해를 받고, 살진균제는 지렁이의 먹이를 파괴하며, 일부 종은 질산염 사용으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를 견뎌내지 못한다.
유명한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양에 서식하는 깁슬랜드거대지렁이는 현대식 농업 방식으로 몰살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깁슬랜드거대지렁이는 평균 길이 1미터에, 최대 길이는 그것의 세 배나 되는 커다란 지렁이다. 현재 이 지렁이는 보호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경작지에 지렁이가 부족하다. 영국에서는 옛날 갈매기 떼가 쟁기 뒤를 따라다니며 쟁기질로 땅 위로 드러난 지렁이를 먹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훨씬 더 보기 힘들어졌다.
현대 경작 방식 때문에 오히려 농업은 곤경에 처한 듯 보인다. 지렁이가 별로 없는 환경에서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면 논밭을 갈 때 더 깊숙하게 갈아엎어야 하고 화학비료도 더 많이 써야 할 것이다. 이렇듯 화학물질의 양과 경작 깊이를 점점 늘려가는 방식을 더 이상 실행할 수 없는 시점이 온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현대적인 방식을 고집할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해 환경과 맞붙어 싸우지 않고 협조하는 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수확량과 비용과 시장의 이윤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버그라이프의 최고 경영자 매트 샤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렁이가 모자라는 현상은 유기물질 흡수, 토양 구조 약화, 토양 침식과 홍수뿐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의 먹이 부족으로 인한 위험이 점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렁이가 서식하려면 토양 표면의 유기물이 충분해야 하고 살충제 오염이 적어야 한다. 경작의 문제는 첨단 여부가 아니라 유기물질이 숨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작 과정을 통해 지렁이가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건강한 토양의 기본 틀을 만들어내는 공간인 표층토의 유기물이 제거된다.
지렁이는 지난 1만 2,000여 년 동안 인간에게 이로운 작용을 탁월하게 수행해 왔다. 물론 그 전 300만 년 동안에도 지렁이는 살고 있었다. 지렁이는 오랫동안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로 간주되었다. 지구가 한 종(인간)을 향한 특별한 관심을 염두에 둔 채 설계되었다는 관념의 소산이 지렁이에 대한 인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지렁이가 없는 미래를 보는 것인가? 그러한 미래는 얼마나 잘 돌아갈까? 이번에도 출발점은 하찮아 보이는 문제다. 우리는 이제 깨닫는다. 인류의 현세대가 내리는 결정이 인간종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의 역사에도 범상치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훗날 우리 후손이 조상인 우리에게 어떤 감사를 전하게 될지 궁금해질 뿐이다.
사이먼 반즈(지음), 오수원(옮김).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현대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