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바보) 44. 숲 지킴이 산새, 생태 건축
옛날에는 제비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집집마다 한해도 빠짐없이 제비가 와서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제비는 암수 한 쌍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집을 짓는다. 날 때부터 아는지 망설이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고 순식간에 지어 버린다. 열흘이나 걸릴까. 재료는 농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흔히 있는 논흙과 풀줄기다. 제비는 건축비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처마 밑에 버팀목 하나 세우지 않고 풀을 섞은 논흙만으로 둥지를 짓는데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다른 새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까치가 아까시나무에 둥지를 트는 과정을 한 달 정도에 걸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다행히 내 작업실에서 바라다보이는 곳이라 달리 시간을 낼 필요가 없었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면 보이는 나무다. 그 까치는 3월 10일쯤에서 3월 말까지 약 20일간(그중 사흘은 황사와 비바람 때문에 일을 못 했다)에 걸쳐서 동지의 외형 공사를 마치고, 그 뒤로 한 열흘에 걸쳐서 내부 공사를 했다. 그 기간에 발견한 까치의 둥지 틀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놀랍게도 부리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자재를 운반할 때도, 그 자재로 둥지를 트는 것도 부리로 했다. 못 하나, 망치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 나무에 앉아 자재로 쓸 나뭇가지를 꺾을 때도 부리로 했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암수 한 쌍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했다. 목수는 물론 일꾼 하나 부르지 않았다.
2) 둥지 틀기에 좋은 자리를 골랐다. 첫째는 둥지 자리인데, 까치는 세 가닥이 진 곳을 찾아냈다. 셋 중 한 가지는 조금 위에서 다시 두 가지로 갈라져 있는 천혜의 자리를 골랐다. 까치는 그 네 개의 가지를 기둥 삼아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 둘째는 주변에 있는 세 그루의 아까시나무다. 까치는 둥지의 바깥 모양을 짜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를 이 세 그루의 아까시나무에서 얻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운반에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세 그루는 마치 살아 있는 목재 창고 같았다.
3) 까치는 암수 구별 없이 일을 했다. 요리를 하지 않고 배가 고프면 여기저기 다니며 날것으로 배를 채우고, 역할 분담도 없이 똑같이 일을 했다.
4)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쓰지 않았다. 그 가치는 대개의 재료를 근처에 있는 아까시나무에서 얻어다 썼는데, 말라죽은 가지만을 썼다. 톱을 쓰지 않는 까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어느 나무고 가지 중의 일부는 말라죽는데 까치는 그것을 잘라다 썼다. 말라죽은 가지는 까치가 부리로 잡고 힘을 주면 둥치와 가지 사이의 접점이 떨어지며 어렵지 않게 꺾이고는 했다.
5) 때로 애써 물어 온 나뭇가지를 떨구는 수가 있다. 그래도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또 상대방을 나무라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6) 나무에 조금도 상처를 내지 않았다. 정말 나무에 손 하나 안 대고, 있는 그대로를 살려서 그 빈 곳에 둥지를 틀었다.
7) 둥지를 트는 시기가 적당했다. 3월이면 풀과 나뭇가지를 재료로 쓰기에 알맞게 말라 있는 시기다.
이것은 까치만이 아니다. 다른 새들도 다 마찬가지다. 새들은 둥지를 틀 때 나무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살아 있는 나무나 인공 소재를 쓰지 않기 때문에(요즘에는 비닐 따위를 가져다 쓰는 새도 있지만) 새의 둥지는 새들이 살다 떠나도 산에 쓰레기로 남지 않는다.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만을 썼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생태 건축(eco-housing)이란 이름 아래 새로운 집짓기가 시도되고 있다. 집을 짓되 자연 생태에 맞는 집을 짓자는 것인데, 아직은 그 시야가 사람에만 맞춰져 있는 느낌이 강하다. ‘몸에 좋은 황토방’이니 ‘향기 나는 나무 건축’이니 하며 그 관점이 사람에게 치우쳐 있다.
그에 비하면 새들은 주변의 생물이나 환경까지 고려한 완벽한 생태 건축을 하고 있다. 둥지를 트는 나무에 흠집 하나 내지 않고, 못 하나 박지 않는다. 짓는 데는 물론 유지하는 데도 석유나 석탄, 땔감, 전기와 같은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도 원래 있는 대로 두고 쓰기 때문에 수질 또한 더럽힐 이유가 없다. 완벽한 생태 건축이다.
제힘으로 모두 제 집을 짓고 사는 새를 보며 어렵게 집 장만을 하며 사는, 수많은 아파트를 지으면서도 평생 제 집 하나 없이 사는 사람도 적잖은 우리네 인간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정작 되찾아야 할 것은 새들처럼 집 장만 정도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그런 사회구조라고 나는 생각한다. 건축방식 또한 새에게서 배울 것이 아직 많다.
최성현.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