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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이땅에 태어나서,정주영 자서전을 읽고.

작성자|작성시간21.03.27|조회수710 목록 댓글 0

사실 나는 정주영에 대하여 잘 모른다. 관심도 별로 없다. 왜냐면, 나는 20대 초반 공직에 입문, 평생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해,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멀기에. 내가 정주영에 대하여 아는 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이란 거대 기업군을 창출한 사람이란 남들도 다 아는 것뿐이다. 나는 퇴직 후 ‘18년5월 은퇴자 사회공헌사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어, 현직공무원들을 상대로 ‘적극행정’에 관하여 순회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 내용인 즉 공직자가 소극적으로 선례나 답습하지 말고, 적극적, 창의적, 열정적으로 일하라 그러면, 설사 일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고, 포상할 터이니, 제발 일 좀 하라, 접시 깨도 좋으니 접시에 먼지 끼지 않도록 하라 뭐 그런 거였다.

 

그러던 중 정부과천청사 모 교육장에 들어가기 직전, 그 부처 교육담당자가 내 귀에 대고, “강사님, 지난 시간에 교육생들이 다 졸았습니다. 이번 시간엔 제발 좀 안 졸게만 해 주십쇼”했다.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수십 년간 공직에 있어 봐 분위기를 잘 안다. 직장교육이 좀 많은가. 또 정년, 신분이 보장된 공직자가 우선 당장 절실하지도 않는 교육을 얼마나 열심히 들을 것인가 나 역시 현역 때 잘 안 듣고, 딴 생각하거나 졸지 않았든가. 내 강의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적극행정’이란 제목만 들어봐도 식상하고 재미없게 들리지 않겠는가. 강사인 내가 들어도 사례가 밋밋하고 재미없는데, 하물며 교육생들에게야. 드라마틱하고 재밌는 실제 사례로 꾸며야 할 텐데...

 

생각 끝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 ‘강의 잘하는 방법’ 책을 사 읽어보고, 써 보고. 그래도 재미없는 건 마찬가지. 내용이 재밌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실제 사례가 피부에 닿고, 공감가고, 감동을 주는 얘기여야 할 텐데... 깊은 고민 끝에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나는 속으로 딱 바로 내가 찾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 실린 사례가 너무나 실제적이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손에 잡힐 듯 하고, 해결방안이 없어 앞이 깜깜한 절벽 같은 난관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단번에 뒤집어 놓는 역전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이걸 적극행정 교재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이 책 중 인상 깊은 장면과 나의 변화.

나는 이 책이 재밌고 너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반했다. 특히 인상 깊은 건 ‘아도서비스’가 불에 홀랑 다 탄 상태에서 다시 돈 꿔 달라고 사채업자에게 간절하게 매달리는 배짱이나 동대문경찰서 보안계장 곤도 집을 한 달간이나 찾아다니며 통사정하는 끈기와 뚝심 그리고 소양강댐을 사력댐으로 변경하러 일본공영 부사장과 건설부 간부에게 갖은 모욕과 수모(정주영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걸 알고, 학교 어디 나왔냐? 전공이 뭐냐? 너의 선생이 누구냐? 죽으려고 환장했냐? 는 등)를 당하던 장면 등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마치 눈앞에서 펼쳐진 것처럼 공감간다.

 

나는 지금까지 강의하던 적극행정 사례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강의야 뭐 원래 강사 마음대로니까 당초 사례를 1/5로 줄이고 그 대신 나머지 4/5는 이 책 사례로 바꿨다. 책 내용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사례를 질의응답 식 문제로 바꿔, 책에 나오는 정주영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지금 여러분이 정주영이라면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건지 물어 본 다음에 정주영이 한 방법을 얘기해 주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는 빈대 이야기부터 시작했는데, 그것만 예외로 이야기 식으로 했다.

 

빈대에게서 배운 교훈

정주영이 인천 부두 노무자 시절에 경험한 빈대이야기다. 합숙소 바닥에 빈대가 많아, 잠을 잘 수 없던 정주영이 책상위로 올라와 자니, 빈대가 책상다리를 타고 올라와 무니, 책상다리 4군데 밑에 양재기를 놓고, 물을 부어, 못 올라오게 하자, 이번엔 빈대가 벽을 타고 천정으로 가, 천정에서 정주영의 배를 향해 툭 떨어져 물었단 얘기로, 빈대도 목적달성을 위해 저렇게 머리를 쓰고, 위험과 난관을 무릅쓰는데, 하물며 사람이 머리를 안 쓰고 아무 생각 없이 살면 그게 사는 거냔 얘기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과 규정을 합리적으로 고칠 궁리를 안 하고, 생각 없이 선례답습하면, 그게 죽은거지 산거냔 얘기다. 두 번째 사례는 정주영의 쌀가게 배달원 얘기로 이어진다.

 

쌀가게 배달원 이야기

지금 여러분이 정주영이라 치고, 정주영이 쌀가게 배달원 할 때, 어떻게 일해서 돈을 벌었는지 말해 보라 했다. 여러분이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면 어떻게 일했을 것인가? 아무도 답이 없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갓 스무 살의 정주영이 일 한 방식을 들려줬다. 그는 쌀 배달원 입장이 아니라, 쌀가게 주인입장에서 새벽 일찍 출근해, 쌀가게 앞마당부터 쓸고, 자전거에 쌀 싣는 방법도 밤새워 배우고, 몇 년 전 가출 때, 경성부기학원서 두 달 배운 부기실력으로 창고의 쌀을 쌀은 쌀 대로 10가마씩, 콩은 콩대로 현물과 장부를 일목요연하게 일치시켰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신용과 성실로 쌀가게주인을 감동시켜, 쌀 배달 3년 만에 쌀가게를 인수해, 돈을 벌었는데, 이와 같이 매사를 머슴 아닌 주인입장에서 생각하고 일하는 태도가 훗날 소양강댐 공사에서도 설계가 철근콘크리트로 되어있어, 설계대로 지을 경우, 철근, 시멘트를 일본서 수입하지 않을 수 없어, 소양강 주변 지천에 널린 흙, 모래, 자갈을 사용하여, 사력댐을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 변경해, 국고 외화를 50%나 절감하면서 오늘날의 명물 소양강댐을 만들었을 것이다.

 

엄동설한에 부산 유엔묘지를 파란 잔디로 조경공사

사례 강의는 계속된다. 6.25.사변 중 엄동설한에 미국 대통령당선자 아이젠하워의 부산 유엔군 묘지시찰을 앞두고, 묘지조경공사를 파란잔디로 하는데, 아무도 응찰한 사람이 없어 다급해진 유엔군 사령부에서는 예정가격을 3배나 올려 재공고했으나 그래도 응찰자가 없자, 정주영이 공사를 맡았는데, 만약 여러분이 정주영이면, 어떻게 엄동설한에 파란 잔디 조경공사를 할 것인가? 질의했다. 아무도 답이 없다. 정주영은 눈 덮인 낙동강 변으로 가, 눈을 쓸어내니, 그 밑에 파란 보리밭이 나와, 그 보리를 떠다가 묘지를 파랗게 덮었단 얘기를 해줬다. 기발한 정주영 아이디어에 교육생들이 기가 질린 표정이다.

 

88 올림픽 유치 위해 꽃바구니 선물

다음 사례는 ’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일본 나고야와 우리나라 서울이 ‘88년 올림픽 유치 경쟁을 위해 표 대결을 할 때 얘기다. 당시 정부는 표 대결에서 이길 승산이 없어보이자, 망신을 당하더라도 정부대신 민간이 당하라는 취지로 정주영을 민간 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정주영이 그 유치활동으로 올림픽위원들 숙소에 장미꽃바구니를 선물했는데, 며칠 후 꽃이 시들자, 새 꽃으로 교체하려 꽃바구니를 사려하니, 꽃가게에서 꽃이 다 떨어졌다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들은 정주영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교육생들은 역시나 답이 없다.

 

이에 대한 정주영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상천외하다. 그는 인근도시의 꽃밭을 꽃가게로 하여금 통째로 사게 해서, 시든 꽃을 싱싱한 꽃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싱싱한 꽃으로 교체된 꽃바구니를 보고 감동받지 않을 여자가 없고, 자기 부인들이 기분 좋아 하니, 그 올림픽위원들도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어, 투표 결과가 당초 예상을 뒤집고, 서울 표가 나고야 표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왔단 얘기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인, 허가를 안 해 줄 생각만 하는 공무원들에게 어떤 난관이든 극복해 낸다는 전제아래 문제에 접근하는 정주영식 문제해결방식을 배우라는 의미다.

 

영국정부 차관 얻으려 선박 주문받기

마지막 사례 얘기다. 정주영이 조선소 건설자금 차관 도입을 위해, 천신만고 끝에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서 대출을 받기로 했는데, 그 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제공하려면, 영국정부의 신용보증을 받아야했다. 그런데, 신용보증을 받으러 간 정주영에게 영국 신용보증 총재가 말하길, ‘당신이 배를 만들더라도 그 배를 사 줄 사람이 없으면, 원리금을 어떻게 갚겠소? 그러니, 배 살 사람이 있다는 증명을 내놓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차관을 승인할 수 없소’라고 하니,

 

정주영은 황량한 바닷가에 초가집 몇 채 뿐인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5만분1지도 그리고 26만 톤급 유조선 사진을 들고,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배를 사 주면, 영국에서 돈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지어, 배를 만들어 줄 터니, 내 배를 사시요’ 라고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인 말을 하며, 배를 수주하러 유럽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과연 정주영은 어떤 묘수로 배를 수주했을까? 그 기법을 각자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교육생들은 마치 마술에 홀린 듯 모든 시선이 나를 따라 움직이며 숨소리 하나 안 내고 내 입만 쳐다보며 아무도 답을 못한다. 온통 침묵이고 고요하다. 나는 정주영이 배를 수주한 비법을 아까운 듯이 들려준다. 배는 오나시스의 처남 리바노스에게 2척 주문받았는데, 그 비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배를 가장 싼 가격에 만들어주겠다. 배에 하자가 있으면, 인수 안 해도 좋고, 계약금에 이자까지 부쳐 은행에서 지불보증해 주겠다.’ 주문한 선주 입장에선 정주영이 배를 만들면 좋고, 못 만들어도 좋고. 선주에게 꽃놀이패를 쥐어주고, 계약을 따내, 그 계약서를 들이미니, 영국정부는 꼼짝없이 차관을 승인 안 해 줄 도리가 없게 되었단다.

정주영이 그렇게 수주했단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교육생들이 우르르 날 따라 나오며, 책 이름이 뭐냐? 고 묻는다. 공감한단 얘기다. 단 한명의 교육생도 조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아산 정신

사격 선수가 표적을 맞추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콩알만한 표적이 보름달처럼 커다랗게 보인다고 한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정주영은 밥풀 한 알만한 생각이 마음속에 씨앗으로 자리 잡으면 끊임없이,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의 노력으로 그것을 키워, 커다란 일거리로 확대시킨다고 했다. 일이 좋아 새벽잠자리에 누워있지 못하고, 일 할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일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만 생각하고, 쫓아 다녔더니 어느 새 부자가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였더라면 이렇게 되지 못 했을 것이라 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테스 형’이라는 유행가에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란 가사가 있다. 나는 테스 형에게 묻지 말고 정주영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주영은 찢어지게 가난해 배고프고 힘들어도 한번도 세상을 힘들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세상사는 게 힘들거나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테스 형 대신 정주영이 답을 줄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와 혁신으로 티끌만한 아이디어를 골똘히 궁리하여 키워 내,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것이 아산정신인 듯하다. 전쟁의 신(神)이 이순신이라면, 이에 필적할 만한 기업경영의 신은 정주영일 것이다. 만약 그가 신이 아니라면, 그는 끊임없이 일할 목표를 찾아내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쉼 없이 전력투구하며, 궁리하고 공부하며 행동하는 천재(天才)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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