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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이길용 목사님)

작성자DumpT|작성시간09.11.25|조회수248 목록 댓글 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리라.” (요한복음 12장 24절)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여러분 이 시간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왜? 그분은 말씀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사랑함으로 그분을 찾고 찾으면,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모든 아름다움을 찾고 찾으면, 우리는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너는 나의 친구라’라는 책에서 밥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새로운 부류(New Breeds)의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혼적인 열망을 온전히 내려놓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혼의 소욕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금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로 일으키고 있고, 찾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자신의 혼의 소욕을 주님을 위해서 포기함으로써 제사장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 하나님이 새로 일으키시는 사람들. 자신의 혼의 소욕을 주님을 위해서 포기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버립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자발적으로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신의 옛 자아인 혼에 대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옛 자아인 혼에 대해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금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로 일으키고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아직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주시지 않는 이유를 이제 확실히 압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많은 열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풀어주지 않는 이유는- 저와 여러분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미성숙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또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풀어서 저와 여러분을 아직 쓰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하셨던 것보다 훨씬 큰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성숙한 단계로 자라가야 합니다.

 

제가 밤이나 낮이나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 생각 때문에 밥맛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밥은 많이 먹어요. (웃음) 근데 늘 속이 허해요. 밥은 먹지만 에너지가 안 나와요. 또 속이 타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죽음입니다. 밥 존스 목사님이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누구냐하면 바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말씀을 그냥 듣고 책에서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말씀을 취했어요. 죽음을 어떻게 한다고요? 자기 자신이 선택한다. 그래서 제가 지금 밤낮으로 생각에 빠져있는 게 뭐냐면 내 자신의 죽음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죽음의 필요성을 너무나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죽어야겠다는 갈망으로 더 죽여 달라고, 그런 갈망을 달라고, 그 갈망을 더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나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보세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나요? 한 알 그대로 있고. 분명히 씨앗인데 그대로 있습니다. 죽지 아니하면 저와 여러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이 열매는 우리의 열매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이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기 때문에 단순히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들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했습니다. 그 많은 열매는 단순히 구원받는 자의 수,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누구와 똑같아요? 그 한 알 떨어진 밀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죽어서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열매입니다. 내 열매가 아닙니다. 나라는 열매가 아닙니다. 내가 죽으면 나는 없어집니다. 예수그리스도만 있습니다. 결국 열매는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에요. 내가 어떤 열매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열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매이다.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이 열매로 나타난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은 온전에서 보좌로의 부르심입니다. 단순히 구원받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이 열매로 맺어져야 한다. 그래서 큰믿음교회에서 외치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단순히 구원의 차원이 아니고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그렇게 온전한 성도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에요. 이러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대속물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신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바로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역하는 것도 물론 이 길에 포함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역하기 이전에 먼저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길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겠다. 선교사로 따라가고 목회자로 따라가겠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그 분이 가신 길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뭐에요? 죽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에요.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통해서 대부흥과 대추수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죽기를 원하고 또 죽음을 통과한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그래서 일으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이디 베이커라든가 케더린 쿨만은 자기 자신이 죽은 것을 정확히 기억하잖아요. 그리고 늘 죽었다. 자주 죽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번 죽은 게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자기를 죽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서 단순히 구원받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예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이들이 바로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맺고자 하는 열매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목회자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함으로 영혼들을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행함 있는 산 믿음으로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예수님과 하나 되게 만드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하면 그들이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고 기대하는 그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뭐냐면 성품적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적으로도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 아니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죽으면 맺어지는 많은 열매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을 포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릭 조이너 책을 통해서 목회자들에게 이제 소망이 없다. 그래서 무슨 운동을 일으킨다고요? 성도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죽는 자, 죽음을 통과한 자, 그들을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들이 바로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단순히 제자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닮은 제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좇았습니다. 이미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실 때 자기를 부인했어요. 하늘에서부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셨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좇았어요.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도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의 본을 보이시고, 자신이 하신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이 했던 그대로를 제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나의 제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모든 소유를 버리고 나를 좇으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제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단순히 제자들이나 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과 똑같은 자들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똑같은 자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자에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부인했죠. 그리고 이 땅에 오셨잖아요.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셨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만 좇았잖아요. 그 예수님처럼 똑같이 행할 수 있는 제자들을 원하신다고요. 그들이 바로 누구냐면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셨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좇는 이 제자의 조건을 왜 요구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실 때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셨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를 좇는 것입니다. “아버지 내가 이 땅에 내려가겠습니다. 죄악의 땅에 내려가겠습니다.” 왜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영혼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버지께 드립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최고로 사랑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았어요.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어요. 실제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드렸습니다. 이 땅에 오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만 좇아 갔습니다. 그게 예수님이었어요.


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가 누구에요? 예수님처럼 되는 사람. 예수님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를 좇는 사람. 그럼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 전까지 저도 이것이 뭔지 몰랐어요. 변승우 목사님의 메시지를 통해서, 또 김옥경 전도사님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고 하니까, "저도 하나님 사랑하고 싶어요"라고 시간만 나면 기도하고 그렇게 했어요. 그것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모르고 기도한 것입니다.


물론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알고 있던 지식이라도 또 들어도 ‘어 저 내용 아는데’ 그렇지만 그 알고 있는 내용이 이제는 내 심령에 레마와 계시로 와질 때 그 때 찔림을 받고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릴 수 있는게 뭐냐? 이미 다 압니다. 아는 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 아는 메시지가 여러분의 심령에 레마로 계시로 와서 여러분의 심령을 뒤집어 엎느냐? 이것입니다. 지식을 주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는게 아닙니다.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레마로 오느냐, 계시로 와서 여러분의 심령에 심겨지느냐, 그래서 자기 자신이 깨지고 얼마나 거짓된 사랑을 했는지를 자기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다시 김옥경 전도사님의 간증을 한 번 더 인용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심령에 계시로 심겨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카페에 올라온 전도사님의 간증을 거의 매일 읽습니다. 읽고 또 읽고. 왜 그러냐면 그렇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저는 이 간증을 한주동안 계속해서 묵상하고 이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싶다고 수없이 기도했는데 그것이 잘 모르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간증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최고의 사랑을 드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또 묵상하고,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내 심비에 또 새기고 또 새기고, 내 심령 안에서 되새기고 되새기고...그래서 저는 믿어요. 나는 반드시 이렇게 될 거라고. 나도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최고의 사랑을 드릴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믿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그것을 원하니까.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간증을 나누기 원하는데요.

 

“얼마 전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고 싶은 갈망으로 마음을 쏟고 울며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 최고의 사랑에 대해 알게 하셨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는 것은 무엇이냐면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세요. 저는 여러분에게 지식,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는데 그 최고의 사랑이 무엇이냐? 십일조요? 아니요. 열심히 봉사하는 거요? 아니요. 기도 많이 하는 거요? 아니요. 전도 많이 하는 거요? 아니요.


그것은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하셨어요? 예수님이 하셨어요. 주님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인간이 되시고 죄인이 되셔서 형벌을 받으신 것처럼 이게 자기를 온전히 비운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어요. 그리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최고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 앞에서 저와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내가 당신께 [지금 마음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했어요. “너희 속에 다만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것을 내가 알았다.”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지금 현시대에 이 교회에 와서 성도들의 심령을 꿰뚫어 본다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너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아니요.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압니다. 대부분은 온전히 자기를 안 비웁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안 비웁니다. 기도는 할지 몰라요. 그것은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이죠. 그 중심에 진짜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원하는 사람, 그것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인데... 저를 비롯해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린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이런 메시지를 들어도 요동치 않습니다. 심상히 여기고 그냥 지나갑니다. 주님이 전도사님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딸아 네가 나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가 나의 형상으로 변하여 나와 같아져야 하느니라. 그것이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니라."

 

이게 사랑이에요.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뭐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도 다하고 힘도 다하고 뜻도 다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뭐냐? 그 사랑이 어떤 것이냐?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서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 그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이런 사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그동안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했고 원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사랑하는 것인지를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차원이 다른 나와 함께 하시면서 고통에서 고통으로 지내오신 주님의 비애가 제 가슴을 후비며 아팠습니다. '주님! 주님의 형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이제는 너무나 절실히 저의 생명을 걸고 원합니다. 이제는 주님과 같아져 아버지와 주님이 하나이셨듯이 저도 아버지와 주님과 제가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피맺힌 절규가 나왔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서 이러한 절규가 동일하게 나오기를 원합니다. 진짜 절규입니다. 그런데 이게 모든 사람에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똑같이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과 하나 된다는 것은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저와 여러분이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라고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아진다는 것은 온전히 자기를 비우는 겁니다. 은사 받고 능력 받아서 병고치고 축사하는 그런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또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이 땅에 오셨다는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선이요 정결이요 거룩 자체이신 그분이, 영광이신 그분이 죄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인간들 속에 오셨다는 것, 저와 여러분 속에 오셨다는 것 그 자체가 그분께는 고통입니다. 그것이 그분에게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기 자신을 다 비웠습니다. "만왕의 왕"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만주의 주"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죄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게는 죽음이에요.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전에 죽음을 경험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으로 오셨다는 그 자체가 이미 예수님은 죽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딸아 네가 나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네가 나의 형상으로 변하여 나와 같아져야 하느니라. 그것이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니라."


다시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딸아 나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네가 원하느냐?"


"주님, 원하고 원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향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임을 알았기에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 순간 저에게 주님이 무엇인가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는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은 통곡으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셨습니다!! 만신창이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일그러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시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이 만신창이가 된 주님 자신의 시신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생각할 때 좋고 화려한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닮아야지 예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지. 그래서 환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은 그렇게 말씀 안합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네가 원하느냐? 원합니다. 그런데 주님 자신이었어요.


만신창이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일그러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시신이었습니다.


"딸아 나의 최고의 아름다움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그 뜻이 이뤄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다 비우고, 다 드리고, 다 쏟고, 다 없어지고 대속의 제물이 된 이 모습이니라. 네가 나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추구하고 나처럼 너를 비우면 내가 이것을 이루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반드시 회복해야 됩니다. 우리 속에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형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상은 그런 형상이 아닙니다.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를 사랑해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다 비우고 드리고 다 쏟고 다 없어지고 대속의 제물이 된 그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졌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아버지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마음을 다해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목숨을 다해서 내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다 비우고, 결국 십자가에서 물과 피까지 다 쏟아서, 그리고 여러분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형상이다!


그걸 받기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다 높아지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요. 갈기갈기 찢긴 예수님의 그 형상을 받기 원하는 자가 누가 있을까요? 자기를 비운다는 게 뭐에요? ‘나를 비웁니다.’ 이게 비우는 건가요? 아니요. 그 비움의 실체는 예수님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에요. 이 땅에서 핍박을 받는 겁니다. 고난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채찍은 맞지 않지만 진리 때문에 수많은 모욕과 고난과 고통 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우리 심령이 찢깁니다. 상합니다. 그게 바로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형상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의 시신을 과연 몇 사람이나 원할까요?


특별히 큰믿음교회는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과연 이 큰믿음교회 안에 진짜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의 시신, 자기 자신을 비우고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만신창이가 된 그 예수님의 시신을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걸 진짜 원하세요? 그게 우리가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지요.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사랑한다고 수없이 기도하지요. 그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게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비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시겠어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비웠는데 어떤 모습이 된지 아시겠어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아름다운 형상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까요. 예수님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너무나, 너무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주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그저 종교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우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겁니다.


내가 나의 가장 아름다운 형상을 추구하고 나처럼 너를 비우면 내가 이것을 이루리라. 전도사님에게 주신 메시지인데요. 우리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간증을 많이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비웠어요. 그러니까 열매를 맺잖아요. 어떤 열매요?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열매.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성도들의 열매로 맺어지잖아요. 신부로. 왜요? 자기 자신을 비우니까. 가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남편과 자녀들을 올려드립니다. 자기의 육체의 생명까지도.


제가 중보 사역자들한테 가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 집회는 그래도 쉽대요. 외국 집회 가보게 되면 일단은 사역자들이 적기 때문에 그리고 전도사님이 그냥 대충 해드리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 영혼이 깨질 때까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까지 끌어안잖아요. 저도 사역을 조금 섬겨봐서 알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녹초가 됩니다. 심지어는 안수 사역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강하게 임하면 이 팔이 돌아갑니다. 온몸이 쑤십니다. 그런데도 그 영혼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어요. 끝까지 끌어안고 주님의 사랑이 들어갈 수 있도록. 그럴 때 그 심령은 어떻게 되요?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 단단한 심령을 깨뜨리기 위해서. 주님의 사랑을 간구하게 됩니다. 실제로 전도사님의 심장과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이 사람의 영혼이 열리게 해달라고, 마음이 주님을 향해서 열리게 해달라고 타들어갑니다. 그게 뭐에요? 주님의 심장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비워지는 겁니다.


저나 여러분들이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외식하고 가식적인 모습인지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됩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요"라구요? 아니요. “하나님, 나는 나를 비웠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를 써주세요”라구요? 아니요. 비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만신창이가 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만신창이가 될 각오가 되어있어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지금 좇고 있어요?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써요?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말씀하실 때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이 있기에,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죽기를 선택하라고요. 죽기를 선택하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이에요. 모든 면에서 비우는 것이에요. 그리고 중요한 건 왜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 주님을 몰라요.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기 위해서 매달려야 됩니다. 은사나 능력 받기위해서 매달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알아야 주님처럼 돼서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죠. 주님이 어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어떤 과정을 지나면서 자기 자신을 비웠는지 내가 모르는데... 그 일이 나를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그 사실을 내가 모르는데...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사랑해요? 지식적으로 배웠다고 들어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

 

여러분 이 시간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세요. 말씀을 통해서 찾으세요. 지금 말씀을 통해서 사랑함으로 주님을 찾으세요. 어느 한 사람의 간증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피맺힌 절규에요. “너희들이 나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기 원하느냐? 나처럼 되어야 된다. 나처럼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심장 속에 저와 여러분이 거하기를 원하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에게 붙어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에게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아버지께 붙어있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이 가지는 무엇이 됩니까? 여러분 잘 기억하세요. 그 가지는 가지가 아닙니다. 뭐가 되나요? 포도나무가 됩니다.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으면 그 가지는 더이상 가지가 아닙니다. 그 진액은 어떤 진액이에요? 포도나무의 진액이에요. 그러면 그 가지는 무슨 진액을 얻게 되요? 포도나무의 진액을 얻게 되요. 그러면 그것이 가지입니까? 아니요. 그것은 이제 포도나무에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워지고 다 없어지면 예수님으로 채워집니다. 곧 우리는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되나요? 이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님의 신성을 가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진액이 뭔데요?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 안에 있는 그 모든 것이 가지인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래 가지였습니다. 가지였는데 포도나무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에서 가지에게로 진액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면 이 가지에는 그대로 그 진액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제 그 가지는 가지가 아닙니다. 포도나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지의 열매를 맺는 게 아니고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어요. 저와 여러분들이 비워지고 우리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되요? 예수님처럼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달리신 이 목적이 뭐냐? 단순히 구원이 아닙니다. 누구처럼? 나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목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 나는 가지이기 때문에 그냥 붙어있어야지.’ 아니요. 여러분이 자신을 비우고 자신이 없어지고 예수님의 진액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겁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네가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예언사역자, 중보사역자?” 아닙니다. “너는 내 아들이 맺은 열매를 똑같이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가 되어야 된다.” 네가 처음에는 비록 가지였지만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단순한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가 되면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어요? 절로. 우리가 예수님으로 채워지면 우리가 비워지면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해서 자기 나라가 아니고 자기 왕국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다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것으로 자기 속을 채웁니다. 그러면 절로 과실을 많이 맺게 되요. 이 열매도 다른 열매가 아니라 무슨 열매요? 예수라는 열매, 예수님을 닮은 똑같은 열매를 맺는다.

 

담임 목사님이 말씀하셨지요. 사도가 누구를 만들어요? 사도를 만듭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만들어요? 예수님과 똑같은 제자를 만듭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 철저하게 우리는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요.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버려야 되요. 다 비워야 되요. 그래서 선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나를 비우고 나를 드리고 나를 없애야 되요. 내 안에 내가 없어야 되요.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울어도 여전히 나를 비우지 않고 울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위해서 울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나를 비우고 나를 드리고 나를 없애는 것... 이게 뭐에요? 죽음을 경험하는 것. 이게 죽음이에요.


예수님이 죽음을 경험하신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내 왕국이 아니고, 내 뜻이 아니고, 내 야망 내 비전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나라만 있는 것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서 그냥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다 비우는 것입니다. 계산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계산적으로 했나요? 아니요.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담당했습니다. 그게 죽음이에요.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죽어야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죽어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죽어야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자기 자신을 비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자기 왕국을 이루겠다고요? 백날 기도해 보세요. 그러다 죽습니다. 그러다 인생 끝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철저하게 사랑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드리고 자기를 없애세요. 이 두 가지를 한마디로 말하면 뭐에요? 죽음이에요.


저는 이것을 너무나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구합니다. 내가 이렇게 되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이제 사랑하되 진짜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제 알았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사랑이 아닙니다. 조금 사랑한다고 해서 울고불고, 1시간 2시간 울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에요. 나를 온전히 비우고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그냥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아버지를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사지만 이제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최고의 사랑을 드리고 싶어서. 내가 죽어야 예수님의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에.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주인 되심을 완전히 인정합니다. 주님께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다 항복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결코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그 방법 그대로 행합니다. 누구처럼요? 예수님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어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왜 이곳에 불러 모으셨을까요? 깨지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곳에서 죽으라고 부른 것입니다. 사역하라고 부른 것이 아니고 지교회를 잘 담당하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저를 대전으로 보내셨는가? 권위에 순복하는 가운데 왜 대전으로 가도록 하셨는가? ‘지교회를 잘 담당하세요.’ 아니요. ‘거기 가서 죽으세요. 깨지세요.’ 라고 보낸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깨지고 죽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성령의 불과 성령의 권능으로 태워지고 없어져버리라고 저와 여러분을 이곳으로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다 그 종교적이고 교리적인 교회들에 놔두지 않고 왜 하나씩 하나씩 큰믿음교회라는 이름 아래 불러 모으셨을까요?


하나님이 보실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러 모으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령을 꿰뚫어 보시고 "너희들은 만물이 고대하고 기대하는 나의 아들들이다". 그래서 종교적이고 교리적인 교회에서 여러분들을 불러낸 겁니다. 그리고 뭐하라고요? 진리의 말씀으로 여기서 먼저 깨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광야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광야 가운데 있습니다. 무슨 광야요? 죽고 깨지는 광야. 무엇으로요? 진리의 말씀으로 깨지라는 것입니다.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과 성령의 권능으로 사랑의 능력으로 깨뜨려지고 불로 연단하고 그래야 내가 너희들을 쓸 수 있다. 왜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뜻이 무엇입니까? 죽는 겁니다. 죽으세요. 죽기를 선택하세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지금 찾고 있어요. 여러분을 향한 부르심이 뭐라고요? 죽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깨지는 것입니다. 녹아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예수만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죽여야 됩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죽여야 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한다고 운다고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왜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말씀 앞에서 깨지기를 원합니다. 담임 목사님이 말씀하셨죠.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것을 보세요. 그래야 부끄러워 할 줄 압니다.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여기 나와서 울고 철야한다고? 아니요.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또 땅의 지체를 죽여야 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고 위의 것을 찾으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끌어당길 수도 있고, 악의 세계를 끌어당길 수도 있어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땅의 것을 원하면 귀신들을 끌어당겨요. 그래서 뭘 추구해야 된다고요?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 탐욕, 정욕, 음란, 탐심, 교만, 혈기, 분노, 미움, 용서하지 않는 마음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죠. 이런 것들을 다 죽여야 됩니다. 성령의 빛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내 안에 하나하나 찾는 것입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만 막 기도하고 집에 가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성령님 내 안에 빛을 비춰 주세요. 빛이신 당신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속에 어둠이 드러납니다. 내 속에 이기심이 더 극도로 드러납니다. 탐심과 탐욕이 더 극도로 드러납니다. 조금 있는 게 아닙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 용서하지 않는 마음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하나 다 구체적으로 찾아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게 죽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닮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열매를 줄 수 없어요. 제 인격으로는 여러분의 인격으로는 제 성품으로는 여러분의 성품으로는 어느 누구도 한영혼도 예수님께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여야 되요. 내 속에 있는 옛 자아, 혼, 옛 타락한 본성, 여전히 남아있는 그 이기심, 나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것. 이것을 철저히 죽여 달라고 기도해야 된다고요. 결국 내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이게 다 없어집니다. 이런 것들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내가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기 쉽지 않죠? 그러나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님처럼 온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아직 생명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아직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포기할 마음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들이 우리를 고대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또 하늘의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격려하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실망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실망하는 대신에 성장하고 자라가야 합니다. 더 거룩해지고 더 성결해지면 됩니다. 더 철저하게 깊은 회개 가운데 들어가서 깨지고 부서져서 거룩해지고 온전해지고 예수님과 하나 되고 성결의 영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주세요. 무슨 은혜요? 죽는 은혜요. 깨지는 은혜요. 부서지는 은혜요. 성령의 불로 녹아지는 은혜요. “나를 써주세요. 나를 써주세요.” 그런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고 “주님 나를 죽여주세요. 내가 죽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를 주세요.” 그리고 내 안에서 죽어야 될 것이 어떤 것인지 성령의 빛으로 말씀의 조명으로 더 분명하게 보여 달라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밤을 새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왜요? 만물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때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풀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여러분 선택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때 강제로 밀어서 떨어뜨렸을까요? 사람의 모양으로 네가 내려가라 그리고 떨어뜨렸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예수님을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십자가에 억지로 올라가도록 했을까요? 아니요. 예수님은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자신을 비운다는 게 두려우세요? 진리 때문에 욕먹고 핍박받고 고난 받는 게 두려우세요? 아니요. 예수님은 이미 이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혼자 이 길을 오라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함께 하겠다 그랬어요.


여러분이 이 말씀을 기억하세요. 누가복음 22장 42-44절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스스로 선택했어요. 아버지의 뜻이거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육신을 가졌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하나님이 사자를 보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돕게 합니다. 힘을 돕더라. 그래서 어떻게 해요?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달릴 수 있는 결단을 하도록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더니 여러분 그냥 오늘 말씀 들었으니까 ‘아 죽어야 되는구나.’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왜요? 저와 여러분은 혼과 육이 살아있기 때문이에요.


밥 존스 목사님 글을 서론에서 말씀드렸죠? [하나님께서 새롭게 일으키시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옛 자아의 혼의 죽음을 선택했다.] 타락한 우리의 혼과 육은 내 자신이 죽기를 비워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다. 자발적으로 내가 죽기를 원해야 됩니다. 그런데 내 타락한 혼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처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 직분 받았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길을 가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이마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비웠습니다.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왜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죽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은혜를 달라고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십시오.” 실제로 옮겨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어떻게 해요? 자기 자신을 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주의 천사를 보내서 힘을 도와요. 여러분이 기도하다가 지치죠? 포기하고 싶죠? 여러분이 진짜 죽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돕습니다. 죽음을 진짜로 선택한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요? 많은 열매를 맺어요. 예수님과 똑같은 열매. 죽은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죽은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를 닮은. 그래서 그들을 통해서 대부흥과 대추수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선택하세요. 결단하세요. 내일 또 넘어질지라도 오늘 선택하세요. 그리고 주님께 매달리세요. 그리고 또 주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또 죽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또 나오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비워지고 죽을 때까지 내 안에서 내 뜻을 이루겠다는 자기 왕국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의 심령이 만신창이가 될지라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해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되요. 저와 여러분들이 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서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되느냐 안 되느냐 그거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이루실 테니까요. 제가 부인만 하지 않으면 타협만 하지 않으면 그것이 빨리 되느냐 더디 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반드시 이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요? 저는 제 욕심이 아니고 아버지가 나에게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기를 원해요.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아들과 같이 되어라.” "예! 그런데 제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말씀으로 깨뜨려주시고 영적 권위자들을 통해서 책망해주시고 깨뜨려주십시오. 제가 그냥 받고 그 말씀에 무너지겠습니다. 깨지겠습니다. 죽겠습니다. 내가 때로는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내 힘으로 능으로 죽을 수 없으니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니 죽여주세요."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길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선택하고 결단하고 주님께 매달립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의영] 님이 받아쓰기 해서 올려주신 이길용 목사님의 설교를 [큰믿음설교 받아쓰기 카페]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cafe.daum.net/gf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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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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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ispoet | 작성시간 10.01.04 주님.............
  • 작성자maruha | 작성시간 10.03.21 저도 주님의 고난을 함께 참여하고 싶어요..
  • 작성자GodVoice | 작성시간 12.10.17 아...이걸 봐버렸네요. 이젠 못봤다고, 못봐서 나는 모른다고 못해~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 제게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것이군요. '죽어라, 아들아. 자신에 대해서 죽고 내 아들 예수로 다시 살아라' 제 힘으로는 못 합니다. 관건은, 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진심으로 간구할 수 있느냐, 이거네요. 아...내가 죽어야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내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다니...내가 죽어야 조국을 구원할 수 있다니...(내가 죽으면 구할 수 있나?? 이 나라를?) 근데 이길용 목사님. 아...진짜 정직한 영을 가진 귀한 하나님의 종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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