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시간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시간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개인의 영혼이 다윗의 장막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개인의 영혼의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면 그 사람이 무너지는 겁니다. 주님 앞에 보내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주님과의 친밀감. 이것이 무너져 내리고 시간이 자꾸 가면 세계적인 교회 목사도 무너지는 것이고 세계적인 부흥사도 무너지는 것이고 세계적인 선지자들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는 지탱시켜주지 못합니다. 은사가 우리를 지탱시켜주지 못합니다. 깊은 예언이나 계시나 영적체험이 기름부음이 우리를 지탱시켜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세우고 지탱시켜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과의 친밀감만이 우리를 지탱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과의 친밀감만이 우리를 지탱시켜 줍니다.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밀감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과의 친밀감 자체가 지혜입니다. 예수님과의 친밀감 자체가 능력입니다. 예수님과의 친밀감 자체가 권위입니다. 모든 것이 친밀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모든 것이 친밀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제일 무너지기 쉬운 것이 다윗의 장막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적으로 쓰임 받는 목사나 세계에서 가장 놀랍게 쓰임 받았던 폴 케인이나 또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샨 볼츠의 예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대형교회 목사나 우린 어떤 교회를 지금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샨 볼츠가 예언한 것이고 어떤 교회를 지목해서 예언한 것이 전혀 없고 그냥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릭 조이너가 예언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전 세계적으로 주의 종들의 죄가 드러나고 폭로되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전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용서하고 그것을 덮을 것이지만 회개치 않는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교회를 정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회복시키고 그래서 교회를 새롭게 할 것이다. 이것이 벌써부터 있는 예언입니다. 샨 볼츠가 새롭게 이런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에 대한 예언이 주어진 것뿐입니다.
주의 종들이나 세계적으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까지라도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면 결국 그 사람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사역이나 명성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다윗의 장막인 줄 알고 내 영속의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찬양 중에 “생명 주께 있네, 능력 주께 있네, 소망 주께 있네.” 전 그 찬양 들으면서 정말 찬양 잘 만들었다 생각했습니다. 진짜입니다. 생명이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성령의 기름부음이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주께 있습니다. 능력도 주께 있습니다. 소망도 주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 있습니다. 내 영혼 속에서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될 때 그때만 우리는 영적 생명력이 넘쳐날 수 있고 그때에만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만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만 내 영혼이 살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릴 수 있고 주님이 우릴 통해 하시고자 하는 어떤 일이든지 넉넉히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진 않았는지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기도의 단이 무너진 건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내 기도생활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기도 시간에 시간이 너무 줄어들었다든지 아니면 기도시간에 주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소위 기도 줄이 잡히지 않는다든지 이것은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고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다윗의 장막은 건재한가. 내가 기도할 때 과연 주님은 내게 말씀하시는가? 주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없이 내 영이 주님과 교통하고 있는가? 내 영속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하나님을 향한 내 영의 노래가 있는가? 내 영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는가? 살펴보셔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내게 있는가? 주님의 임재가 내게 있는가?
다윗의 장막을 교회에 잘 짓는 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막은 단순한 천막입니다. 그 천막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주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주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과 내 삶속에 주님의 임재가 있는가. 내 영과 내 삶속에 주님의 영광이 임해 있는가. 살펴보셔야 합니다.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면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다윗의 장막을 점검하고 자꾸 보수해야 합니다. 보수를 안 하고 내버려두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내 직위 이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사람들의 명성이 흔들리나 안 흔들리나. 이런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내 영에, 다윗의 장막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회개하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보수해서 다윗의 장막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일 무너지기 쉬운 것이 다윗의 장막이며 제일 세우기 어려운 것이 다윗의 장막입니다. 그냥 교회 나와서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그냥 제자훈련하고 성경공부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냥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구제하는데 어려운 사람 돕는데 김장 담글 때 동참하는 이런 일들은 쉽습니다. 심지어는 나가서 전도하는 것까지도 쉽습니다. 다윗의 장막을 세우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장막은 자신을 죽인 자아의 죽음의 터전 위에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아 있으면 돈에 관심이 있고 명예에 관심이 끌리고 쾌락에 관심이 끌리고 세상 것에 관심이 자꾸 집중되고 그런 것들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과의 친밀감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정말 주님에 대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장막은 다윗과 같이 모든 것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아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자아의 죽음의 터전 위에서만 다윗의 장막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우기 제일 힘든 것이 다윗의 장막입니다.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봉사하고 은사 받고 사역하고 전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정말 회개하고 정말 정결해지지 않고도 다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막을 세우는 것은 회개가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담이 되기 때문에 다윗의 장막은 휘장이 없는 것이 다윗의 장막 안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담이 되는데 어떻게 내 영혼의 다윗의 장막이 세워지겠습니까? 철두철미한 회개가 있어야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친밀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철두철미한 회개가 있어야만 다윗의 장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해져야만 다윗의 장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막은 다 거룩했습니다. 다윗의 장막 이전에 모세 성전도 거룩하고 솔로몬 성전도 거룩했습니다. 거룩해야만 다윗의 장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기병들은 다 기름을 뿌리고 거룩하게 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모든 것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거룩하지 않고 노래만 부른다고 어떻게 다윗의 장막이 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지 않고 찬양만 잘한다고 그게 바로 루시퍼입니다. 루시퍼가 원래 찬양 인도자입니다. 찬양인도자들 중에 제가 볼 때 루씨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찬양 인도자 보면 껄렁껄렁하고 기타나 치고 노래나 부르다가, 사실 술도 안 끊고 담배도 안 끊고 뒤에서 담배피고 앞에서는 찬양지휘 한다고 이런 사람들 참 많았습니다. 지금도 교회들 그런 사람 제법 많을 겁니다. 음악이 제대로 가지 않으면 록, 헤비메탈 이런 것이 사탄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사탄하고 제일 친해질 수 있기 때문에 찬양과 경배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제일 예민하게 영성관리 해야 될 사람들은 물론 설교자도 그렇지만 찬양과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영을 투명하게 관리를 해야만 이 찬양과 경배가 정말 하나님의 임재를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제일 끌어당길 수 있는 건 설교가 아니고 찬양과 경배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에 내가 임한다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했기 때문에 거룩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다윗의 장막이 되는 것입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2007년도 즉흥설교 "진짜 다윗의 장막"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