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야곡(戰線夜曲) - 염유리(작사: 유호, 작곡: 박시춘)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戰線) 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丈夫)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아~ 아~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총(銃)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故鄕) 내 집에는
정한수(정화수 井華水)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功)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아~ 아~ 아~ 쓸어안고 싶었소
주현미의 노래 이야기
작사가 유호 선생님과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은 함께 콤비를 이뤄서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는데요. 특히,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두 분이 함께 작업한 '진중가요'는 군인은 물론이고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사랑받았습니다. '진중가요'란, 군대에서 군인들 사이에 애창되는 가요를 뜻하는데요. 진중가요는 한국 전쟁뿐만 아니라, 베트남 파병 당시에도 군인들 사이에 애창되었고, 학생과 일반인에게까지 알려지면서 널리 애창된 노래였습니다.
유호 선생님과 박시춘 선생님이 만들었던 '진중가요' 중에 대표적인 곡은 '전우야 잘자라'와 '전선야곡'인데요. '전우야 잘자라'는 우리나라 대중가수 1호로 등록된 현인 선배님이 노래했고, '전선야곡'은 우리나라 대중가수 2호로 등록된 신세영 선배님이 노래한 곡입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와 그 땅에서 살던 모든 사람들을 황폐화시킨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1951년 7월 8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749일 동안의 정전협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동안 장병들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사수하기 위해서 전장에서 목숨을 바쳤는데요. 이 시기에는 낮과 밤에 따라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 빈번했고, 그만큼 하루하루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엄혹한 상황을 그린 영화 '고지전'이 2011년에 개봉했는데요. 영화 '고지전'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꼽히는 명장면은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남과 북이 서로 안개 속에서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며 '전선야곡'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12시간 남은 휴전을 앞두고,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기다리며 각자의 진지에서 국군과 공산군 병사들이 '전선야곡'을 구슬프게 부르는 장면은 전쟁에 대한 회의와 반감을 고조시켰는데요.
대체로 군가는 행진곡풍으로 '나가서 싸우자'등의 내용을 담은 가사들이 많았지만, '전선야곡'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렸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고요. 그래서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호응과 공감을 불러왔고, 군인들이 밤에 보초를 서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부르게 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전선야곡'은 가사 때문인지 전쟁터에서 군가보다 더 많이 불린 불멸의 보초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터진 전쟁으로 어머니나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징집되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절,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부분에서는 모두 소리 내어 울며 불렀다고 하는데요.
1951년 대구에 머물던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은 '전선야곡'이라는 제목을 먼저 떠올린 다음, 가수 남인수 선배님을 염두에 두고서 구슬프고 구성진 멜로디를 작곡했고요. 절친이었던 유호 선생님에게 노랫말을 부탁했다고 해요. 그런데 오리엔트 레코드 사장에게 가수 신세영 선배님을 추천받았고, 결국, 이 노래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신세영 선배님의 절창으로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1947년 오리엔트사에서 주최한 콩쿠르를 통해 전속가수가 되었던 신세영 선배님의 본명은 '정정수'였지만, '신세영'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는데요. '신세영'은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신카나리아' '장세정' '이난영' 선배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은 이름이었다고 하지요.
특히, '전선야곡'을 녹음하던 날, 방음이 되지 않았던 녹음실 사정 때문에 통행금지로 차가 다니지 않았던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녹음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녹음 작업이 시작됐을 무렵 안타깝게도 신세영 선배님의 어머니께서 별세하셨다는 부음이 녹음실에 도착했고, 신세영 선배님은 목이 멘 상태로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녹음을 마쳤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 결과, '전선야곡'은 신세영 선배님의 절절한 감정들이 그대로 녹아있는 곡으로 듣는 이 모두의 심금을 울린 명곡이 되었고, 신세영 선배님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매번 어머님이 그리워 목이 메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이 노래를 부르며 기나긴 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지새운 기억이 있으시겠지요. 이 가을, 언제 어디서나 몇 번을 불러도 그리운 이름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전선야곡' 함께 불러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