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ちょんまげ : 촌마게」는 투구를 쓰기
위해 앞머리를 밀어올린 것.
일본의 시대극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를 보면 앞머리를 밀어 올리고 머리 뒤쪽에 상투를 튼 모습이 많다.
오늘날에는 머리를 뒤로 묶어 상투를 한 스모 선수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명치 유신 직후 외국에 나간 정부관리들은 서양인들이 촌마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 돼지고리 」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창피했다고 한다.
그들이 들아와서 「 이런 머리 스타일로는 서양인들에게 바보 취급당하기 십상이고 그들과 대등하게 사귈 수도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1871년에는 상투를 잘라내고 서양식으로 짧게 깎도록 단발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랜 전통과 관습이 행정명령만으로는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자 「촌마게」에 대한 50전의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고 한다.
농촌을 포함해전국적으로 「개화 머리」가 보급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889년경이었다.
에도 시대까지의 사무라이들이 앞머리를 밀어내고 촌마게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상투를 한 이유는 투구를 쓰기 위해서였다.
투구를 かぶと라고 하는데, 앞에 있는 머리숱이 뭉쳐 투구를 쓰기에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구의 챙 위에 양쪽으로 활처럼 세운 금속 장식은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한 위엄의 표시였다고 한다.
한편 에도 시대의 사극에는 여성들이 이빨을 까맣게 염색한 징그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을 はぐろ라고 한다.
염료는 술과 초에 쇳조각을 담가 만든다고 한다.
해이안 시대 말기에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풍습이 행해졌으나 에도 시대에는 결혼한 여자들 사이에 주로 유행했다.
또한 まゆずみ라하여 눈썹을 밀어내고 먹으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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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광주경신여자고등학교 일본어교사 최영탁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