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존귀하다 1. 놓치지 마라 사람들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멸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수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 생각하며 대중 속에 묻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서 말씀하신 복음을 들었으면 들은 그것에 놀라워해야 합니다. 그것에 더욱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직접 오셔서 말씀하셨는데 어찌 우리가 그것에 무관심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배가 흘러 엉뚱한데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깊이 유념하지 않으면 인생의 목적을 잃고 그냥 흘러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목적지인 항구에 이르지 못하고 흘러가다 난파되는 이미지입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 아마 율법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선지자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을 통해 말씀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통해 받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에 대한 말씀일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큰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 2:3)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자나 천사를 통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전해주셨기 때문에 복음은 '큰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등한히 여기면 그것은 참으로 큰 죄가 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이후로 제자들을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그것을 결코 쉽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확증되어진 복음을 자기 멋대로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을 따라 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나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진 것을 안다면 결코 그것을 등한히 여길 수 없습니다. 어찌 그렇게 위대하고 놀라운 구원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가벼이 여기다가는 자신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난파선이 될 것이 뻔한데 말입니다. 2. 낮음은 비천이 아니다 저자는 사람의 존귀함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히 2:5)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장차 올 세상은 천사들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스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천사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은 사람이 천사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합니다. 당장 현재를 보면 천사가 능력과 존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월등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시편 8:4-6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히 2:6)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라는 구절은 마치 저자가 잘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번역이지만 실상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의역한다면 '다 알다시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면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로서 참으로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창조주께서 '사람'을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사람은 매우 영광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매우 보잘것 없는 사람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것을 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비천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지금은 비천한 모습입니다.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히 2:7)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비천한 것은 '잠시'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분이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에 의해 잠시 그렇게 볻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또한 이것은 이후에 영구합니다. 사람이 존귀하지 않으면 어찌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을 때도 천사보다 못한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것처럼 이 땅에서 사는 사람도 비천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비천하다고 생각하여 비천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매우 큰 잘못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를 명심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광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존재에 합당한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히 2:8)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의 이 구절은 분명히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의견이 나뉩니다. 예수님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물을 복종하게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단지 지금 복종하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창조 때의 그 역할에 맞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첫 열매가 되셨듯이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으로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의 고난까지도 모두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존귀한 것입니다. 고난까지도 비천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비천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수많은 낮음과 고난의 일들은 우리의 영광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 없다고 비천해지지 말고 병들어 고난 받는다고 비천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자는 사람이 존귀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자의 의도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구절입니다. 사람은 바다에서 무의미하게 흘러가다 난파선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참으로 존귀하게 창조되었기에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우리도 존귀의 길을 가기를 기도합니다. 월등한 더 나은 삶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삶을 기약하면서 오늘 당당하게 복음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