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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연재

[신앙과 시 121편] 〈길, 진리, 생명〉 - 존재의 귀향

작성자리멤버|작성시간26.06.13|조회수5 목록 댓글 0

[신앙과 시 121편] 〈길, 진리, 생명〉 - 존재의 귀향- 길을 잃은 존재가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는 가장 오래된 구원의 이름
- 이현용 목사 (바이블아카데미 원장, 임불교회 담임, 『목사고시 종합문제집 리멤버』 저자)

 기자명거창기독신문 (webmaster@gcc20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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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진리, 생명 - 존재의 귀향(歸鄕)〉

 

사람은 길을 잃어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잊어서 헤맨다.

 

평생 수많은 문을 두드리지만
정작 자신이 들어가야 할 집은 알지 못한 채.

 

제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스승의 부재가 아니라
자신들이 홀로 남겨질 미래였다.

 

밤은 깊어졌고
십자가의 그림자는 다가왔으며
인간의 마음은 불안이라는 안개 속에 잠겼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길이라.

 

그것은 방향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통로라는 선언.

 

길은 발밑에 있는 흙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이 끝까지 동행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진리라.

진리는 논쟁에서 이긴 명제가 아니라
마침내 벗겨진 실재의 얼굴.

 

인간은 평생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지만
사랑은 끝내 감추어진 영혼의 문을 연다.

 

나는 생명이라.

생명은 단지 심장의 박동이 아니라
죽음조차 소유할 수 없는 어떤 빛.

 

그래서 삶의 가장 깊은 절벽에서도
사람은 완전히 추락하지 않는다.

 

길은 우리를 집으로 이끌고
진리는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데려가며
생명은 사라지는 것들 너머를 견디게 한다.

 

결국 구원이란
먼 하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길을 잃은 존재가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는

가장 오래된 귀향의 이름이다.

 

- 요14:1~24절 길,진리,생명에 근거하여 - 石花 -

이 시는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단순한 교리적 진술이 아니라, 불안한 존재가 마침내 돌아가야 할 집을 발견하는 귀향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사람의 방황을 길의 상실로 보지 않고 귀향의 상실로 본다. 길을 잃어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잊어서 헤맨다는 첫 문장은 매우 본질적이다. 인간은 평생 많은 문을 두드리지만, 정작 자신이 들어가야 할 집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예수님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은 단순한 종교 문장이 아니라, 집을 잃은 존재에게 건네지는 가장 깊은 초대가 된다.

 

특히 이 시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짚어 낸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단지 스승이 떠나는 사건이 아니라, 그 이후 홀로 남겨질 자기들의 미래였다. 십자가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밤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마음은 불안의 안개 속에 잠긴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길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매우 결정적인 차이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방향만 알려 주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의 통로가 되어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시가 “존재 자체가 통로라는 선언”이라고 풀어낸 대목은 복음의 핵심을 정확히 붙든다. 길은 정보가 아니라 인격이며, 길은 지도보다 동행에 가깝다.

 

“길이란 목적지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걸어 주는 사랑의 동행 안에서 비로소 열리는 귀향의 통로이다.”

또한 이 시는 진리를 매우 따뜻하고도 깊이 이해한다. 진리는 차가운 명제나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마침내 벗겨진 실재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진리를 이겨야 할 주장처럼 생각하지만, 성경이 보여 주는 진리는 우리를 참된 실재 앞에 세우는 빛이다. 인간은 평생 자신을 속이며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랑은 끝내 감추어진 영혼의 문을 연다. 이 표현은 진리가 단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임을 잘 보여 준다. 예수님 안에서 진리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기보다, 거짓과 자기기만 속에 갇힌 우리를 참된 자신에게로 데려가기 위해 다가온다.

생명에 대한 부분도 매우 아름답다. 생명은 단지 심장의 박동이 아니라 죽음조차 소유할 수 없는 어떤 빛이라는 고백은, 생명을 생물학적 지속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영원한 현실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삶의 가장 깊은 절벽에서도 사람은 완전히 추락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은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생명은 상황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고, 죽음 너머까지 우리를 붙드는 빛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길과 진리와 생명은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구원 사건으로 이어진다. 길은 우리를 집으로 이끌고, 진리는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데려가며, 생명은 사라지는 것들 너머를 견디게 한다는 마지막 흐름은 매우 단정하고 힘 있다.

 

“구원이란 멀리 있는 세계로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길 잃은 존재가 마침내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는 귀향의 사건이다.”

결국 이 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존재의 가장 오래된 그리움과 연결한다. 인간은 본래 돌아갈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을 떠난 이후 모든 방황은 그 집을 찾는 몸부림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잃어버린 귀향의 길이 되시고, 우리를 참된 자신에게로 이끄는 진리가 되시며,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생명이 되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요한복음 14장의 메시지를 단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깊은 방황과 그리움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내가 두드리는 수많은 문들 사이에서, 정말 들어가야 할 집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시는 결국 하나의 대답으로 수렴한다. 길, 진리, 생명 되신 주님 안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집에 이른다.

석화(石花) 이현용 목사
국립부산공업대학교 졸업(B.Eng)
대전신학대학교(B.Th) 및 대학원(M.Div)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수료
예장통합 목사고시 전문 강사(20년)
프리칭 성경 연구 및 설교세미나(RPS) 대표
전 대전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임불교회 담임목사
저서: 《목사고시 종합문제집 리멤버》, 《진주노회 고시 종합문제집》, 《프리칭 포커스》
못골 문학상 수상
바이블아카데미 — 말씀과 비전으로 ‘시작 없는 시작’을 준비하는 공동체

 

거창기독신문 webmaster@gcc20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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